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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평온한 침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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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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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최순실 사태로 온 나라가 충격에 빠져서인지 지난주 외부 필진이 집단적으로 마감을 넘겨 신문지면용 원고를 보내왔다. 평소 칼같이 시간을 지키던 정신과 전문의 두 명도 예외가 아니었다. 누구인들 이 와중에 일이 손에 잡히겠느냐마는 남의 마음 읽기가 특기인 정신과 전문의들은 특히 여기저기서 대통령 심리에 대한 질문을 받는 모양이었다. 그들도 다른 보통 사람들처럼 그저 놀라고 답답하고 화가 나기는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최순실의 등장으로 그간 이해하기 어려웠던 많은 일의 퍼즐 조각이 한꺼번에 맞춰지는 동시에 여전히 알 수 없는 지점도 있다. 바로 대통령의 평온함이다. 대통령의 2분짜리 짧은 사과 이후 오히려 여론이 들끓고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고 있는데 정작 대통령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의례적 일정을 소화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한밤에 청와대 수석비서관의 일괄 사표를 지시하고 새누리당 상임고문단과 회동하며 정국 수습 행보를 보여주기는 했지만 분노한 국민을 달래는 말은 들은 기억이 없다.

 국민을 향한 대통령의 이 평온한 침묵은 뭘 의미하는 걸까. 18세기 프랑스 사제가 쓴 『침묵의 기술』은 ‘침묵보다 나은 말이 있을 때만 입을 열라’며 침묵을 칭송한다. 대통령의 침묵도 그런 신중함으로 읽힐 수 있으면 좋으련만 여론은 그건 아닌 것 같다. 이 책에선 경계해야 할 몇 가지 침묵을 언급하는데 그중 하나가 ‘무시의 침묵’이다. 반응을 기대하는 사람을 상대로 아무 대응 없이 입을 닫는 건 상대를 무시하기에 가능하다는 얘기다. 사르트르와 계약결혼했던 프랑스 사상가 시몬 드 보부아르도 『모든 사람은 혼자다』(1944)에서 “모든 말과 모든 표현은 상대방에 대한 호소”라며 “진정한 경멸은 침묵”이라고 규정했다. 침묵은 반박이나 분노까지 제거해 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스스로가 우스꽝스럽거나 혐오스러운 대상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통령의 침묵이 설마 국민을 향한 무시나 경멸을 담은 침묵은 아닐 것이다. 차라리 나약해서 차마 입을 열지 못하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많은 국민은 전혀 다르게 느끼는 게 현실이다. 사실 대통령이 진작에 무시의 침묵을 행해야 할 대상은 따로 있었다. 아부를 일삼고 이해득실을 계산하기 바쁘면서도 대통령을 위해 헌신한다고 떠벌리며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무리들 말이다. 이제라도 부디 무시의 침묵을 행할 대상을 잘 골라냈으면 한다. 농락당한 국민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라도.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