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착륙·무급유 비행 신기록 세운다|4만3천km 대장정 나선 미「보이저」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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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모험심 많은 미국의 중년 남녀 파일러트가 세계기록에 도전하는 이번 보이저 호의 무착륙·무급유 세계 일주 비행은 1927년 「찰즈·린드버그」 가 무착륙으로 대서양을 횡단, 「저것이 파리의 등불이다」로 세계에 널리 알려진 이래 최대의 모험 비행으로 꼽히고 있다.
보이저 호가 미 갤리포니아 에드워드 공군기지를 이륙한 것은 지난 15일 상오1시5분 (한국시간). 귀환 예정은 크리스머스인 25일이었으나 하루 앞당겨진 24일 상오에 귀환할 것으로 보인다.
21일에는 대서양 상공에서 대단한 폭풍우를 만나 성공여부가 불확실해진 때도 있었지만 이를 극복, 오히려 하루를 당기게 됐다. 보이저 호는 22일 상오 남아메리카의 가이아나 상공을 지나 북미 대륙으로 들어섰다.
약4만3천2백km의 대장정에 나선 보이저 호의 전모를 살펴본다.
보이저 호는 장거리 비행을 위한 실험용 비행기다.
길쭉하고 작은 동체, 긴 날개가 특징이다. 동체에는 두 사람의 승무원이 앉고 누울 수 있는 공간과 엔진이 달려있다.
날개의 길이는 33·8m로 보잉·727의 32·9m보다 더 길다. 날개는 완전히 기름탱크와 같다.
연료의 양은 약4천3백kg.
엔진은 2개가 달려있는 데. 밀고 당기는 역할을 한다. 앞쪽의 엔진은 연료절감을 위해 이·착륙이나 특별한 조작이 필요할 때에만 사용된다.
2개 엔진의 총 출력은 2백40마력. 앞쪽의 것이 1백30마력이며 동체 뒤쪽에 달려 있는 엔진은 1백10마력이다.
기체는 중량을 줄이기 위해 금속을 사용하지 않고 모두 탄소섬유를 썼다.
탄소섬유는 골판지처럼 2개의 층으로 되어있고 그 안에는 벌집모양의 구조가 들어있어 가볍고 충격에 강하도록 만들어졌다.
기체만의 무게는 소형 자동차와 비슷한 8백36씨이며 여기에 연료와 음식물 등을 실으면 5천96kg이 된다. 그래서 착륙시의 중량은 이륙시의 5분의1 수준인 1천24kg밖에 안 된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보이저 호를「날으는 연료 탱크」라고 부르기도 한다.
평균 비행고도는 2천4백∼4천6백m이며 속도는 시속1백∼2백10km다.
보이저 호의 설계자는 「버트·루탄」으로 이번 시험에 탑승한 「딕·루탄」(48)의 형이기도 하다.「버트」는 세계적인 비행기 설계 권위자로 비행기의 혁신에 관심이 높다. 이번 비행도 기부자, 47개회사들의 도움으로 차세대의 비행기 설계를 위해 시작됐다.
실험 팀은 미래의 비행기를 염두에 두어 재질과 구조를 기존 비행기와는 전혀 다르게 만들었다.
즉 엔진·케이블 등을 제외하고는 금속을 쓰지 않았으며 날개의 속구조도 벌집모양으로 특수 고안, 금속보다 강하지만 무게는 5분의1에 불과하도록 설계했다.
한편 보이저 호의 앞쪽 작은 날개는 수평안정을 주고 비행속도가 크게 떨어져도 급강하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착륙 시 보이저 호는 역 추진 프로펠러의 도움을 받는다. 날개에 보조익이나 하강 장치 등이 일체 없어 날개의 표면은 매끈하다.
이번 시험비행을 계획한 연구팀은 말한다. 『보이저 호처럼 복합재료로 점보제트 비행기를 만들면 2분의1의 경비로 3배를 날 수 있다』
앞으로 깃털처럼 가벼운 비행기가 세계의 하늘을 누빌지 보이저 호의 성공이 그 해답을 줄 것이다.
보이저 호의 무착륙·무급유 세계일주는 지난 20여 년간 계속되어 온 깨어지지 않은 기록에 도전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무착륙· 무급유의 세계기록은 지난 1962년 미 공군의 B-52 폭격기가 수립한 2만1백68km. 이때 B-52는 오키나와 기지에서 스페인의 마드리드까지 비행했었다.
보이저 호의 탑승자는 공군장교 출신 「루탄」 과 여성비행사 「지나·예이거」 (34) .
「루탄」 은 전투기 조종사로 베트남 전선에서 3백25회의 출격 경험이 있다. 그는 노련한 비행사로 형이 설계한 각종 시험 비행기의 테스트 파일러트 이기도 하다.
그는 경비행기 조종 분야에서 6개의 최고속도·거리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예이거」 와는 6년 전 에어쇼에서 만난 사이. 「예이거」 는 제도전문가로 탁월한 경비행기 조종사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65회의 시험비행을 계속해왔다.
원래 비행예정은 9월 중순. 이맘 때 비행코스 지역의 날씨가 가장 좋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계속 드러나는 문제점으로 실제전이 연기돼왔다.
따라서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기상조건이다.
기상이 나쁘면 연료소비가 많아지고 예정코스를 벗어나야 되므로 부담이 크다.
보이저 호 연구팀의 대변인「피터·리바」 씨는 『최악의 경우 에드워드 공군기지를 65km 앞두고 연료가 떨어질지 모른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커다란 날개로 활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고 밝혔다.
지난20일 보이저 호는 아프리카 상공에서 심한 기상변화를 만났다. 조종사들은 폭풍우로 인해 조종석 주위에 부딪쳐 멍이 들기도 했다.
좁은 공간과 장기간의 비행에서 오는 피로와 체력 소모도 큰문제로 꼽히고 있다. 가능한 연료를 많이 싣기 위해 조종실은 한사람이 겨우 앉는 조종석과 한사람이 누워 휴식과 잠을 취하는 터널모양의 휴게실이 있다. 휴게실이라야 길이 2m25cm, 폭 60m로 비좁다. 음식은 우주비행사들이 먹는 것처럼 튜브 식으로 짜먹는 우주식을 실었다.
이런 조건에 견디기 위해 두 조종사는 냉장고 만한 공간에서 12일간을 지내는 경험을 쌓기도 했다. 자세도 조종석 같이 눕거나 앉아서 지냈으며 음식은 말린 과일 등으로 지냈다. 그들은 베개도 패러슈트로 대신했다.
두 조종사는 이런 훈련을 받아 체력에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지만 지난 7월 4일간의 시험비행에서「예이거」 의 체중이 2·3kg이나 줄었다.
전문가들은 좁은 조종 공간에서 오는 운동량 부속과 피로가 날씨 못지 않은 위험요소라고 평가했다.
또 엔진 등에서 나오는 극심한 소음도 조종사를 괴롭힌다.
소음을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장치가 뉴잉글랜드의 스피커 회사에서 고안됐다.
조종사는 특수한 헬미트를 쓰고 소음을 차폐한다. 부드러운 실리콘으로 된 소음차단 헬미트는 장시간 쓰고 있어도 착용감이 좋도록 개발됐다.
이번 보이저 호의 시험비행은 또 순수한 민간인들의 모험·창조활동의 소산이라는데 의의가 있다.
사업을 주관한 보이저 사는 30만 달러의 빚을 지고 있다.
그러나 무착륙 비행에 참여한 모든 사람은 경비에 대한 걱정보다 내일을 향한 새로운 도전에 부풀어있다.

<장재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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