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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Behind & Beyond] 다시 뭉친 ‘들국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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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들국화, 그들을 만난 건 2012년 7월이었다.

자그마치 23년 만의 재결합이었다.

지하의 연습실로 들어섰다.

주찬권·전인권·최성원, 그들이 거기 있었다.

각자의 음악을 찾아 헤어졌던 그들이 들국화로 다시 뭉친 게다.

인터뷰 중 그들이 말했다.

“셋은 같은 종족이다. 들국화가 했던 일을 하려 다시 뭉쳤다.”

결국 들국화의 길은 혼자서는 못 가는 길이라는 의미였다.

그들의 인터뷰를 들으며 머릿속에 산이 그려졌다.

그래서 그들에게 말했다.

“셋이 뭉치니 산으로 여겨졌다. 들국화를 산으로 표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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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그들이 선뜻 호감을 보였다.

일단 한 명이 의자에 앉고,

그 뒤에 한 명이 서서 얼굴을 포갠 다음,

그 다음에 한 명이 의자에 올라서서 얼굴을 포갰다.

최성원·전인권·주찬권의 순으로 그렇게 했다.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중년의 몸으로 얼굴을 포개는 일,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특히 제일 윗자리,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고 했다.

그 자리,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당연히 주찬권의 몫이었다.

의자 위에서 뒷짐 지고 허리를 굽힌 자세, 젊은이도 만만치 않았을 터다.

그는 그래도 웃으며 해냈다.

그 다음 해 10월 20일.

주찬권, 그가 돌연 쓰러졌다.

그날의 인터뷰에서 그들이 말했다.

“주찬권으로 인해 재결합이 이루어졌다.”

23년 만에 재결합한 들국화의 연결고리가 바로 그였다.

그가 떠난 후 ‘들국화 4집’ 앨범이 발매되었다.

앨범 중 ‘들국화로 必來(필래)’란 곡이 있었다.

주찬권, 그는 떠나기 전날까지 이 곡의 코러스를 녹음했다고 했다.

그가 떠난 후 최성원과 듀엣으로 재구성해 세상에 나온 곡이었다.

들국화의 재결합을 주도하고,

떠나기 전날까지 ‘들국화로 必來(필래)’에 매달렸던 게 주찬권이었다.

그가 떠난 후 세 번째 가을이 왔다.

여태 ‘들국화는 必來’하지 않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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