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른「사고」곳곳에 도사려|여천 가스참사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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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3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주민 3천여명이 대피한 럭키소재 여천공장 가스폭발사고는 가스취급업체들이 얼마나 안전관리에 소홀했는가를 보여주었다.
이번 폭발사건에서도 낡은배관시설, 보잘것없는 재해예방장치, 형식적인 산재예방규정, 무관심한 근로자 산업안전의식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가스사고는 일단 발생하면 피해지역이 삽시간에 확산된다는 점에서 예방대책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당장의 시설투자와 관리운영에 드는 부담 때문에 안전대책이 형식에 그치거나 무시되고 있어 큰참사를 빚을 시한폭탄을 안고있는 셈이다.
이번사고의 경우도 안전기준이 어느 수준까지는 지켜지는 화학공단에 입주한 대기업의 계열업체라는 점에서 영세업체에서 발생할수 있는 제2, 제3의 사고발생 가능성에 경종을 울려준다.
84년 인도보팔시 가스누출사고를 계기로 노동부등 관계부처와 산업안전단체등이 합동으로 조사한 산업안전종합진단 결과를 보면 럭키소재여천공장의 사고는 사고발생가능성을 보여준 빙산의 일각임을 알수 있다.
◇안전시설=주식회사 UN화학, D시멘트등 화학물질을 다루는 국내유수업체들이 배관의 부식, 고온부위등 시설의 노후화에 대한 종합점검과 기록이 없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업체들이 저장탱크나 파이프에 대한 부식도 측정을 정기적으로 실시하지 않고 누적된 측정 자료가 없기 때문에 언제, 어느부분에서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상태라는 것.
이와 함께 위험물탱크의 칸막이설치 위험물표시를 하지않았고 안전장치가 설치된 곳에서도 안전판이 열렸을때 유독가스등을 중화시킬수 있는 중화처리설비가 미비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K반도체등은 가스누출에 대비한 흡수저해장치와 가스누출경보기가 설치돼 있지않아 대형사고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또 이번에 사고가 난 공장의 계열회사인 럭키여천공장등 보수나 증설이 계속 이루어진 사업장은 대부분 기기배치가 밀집돼있어 안전작업이 어려운 상태라는 점도사고를 부르는 또다른 요인으로 지적됐다.
한국화인케미컬을 제외한대부분의 사업장은 위험물이나 유독물질이 누출됐을때 주변에 미칠 영향에 대한 사전조사를 하지않아 대부분의 업체둘이 산업재해가 주변에 미치는 피해에 무방비상태.
이번 사고의 경우도 럭키소재공장과 인근주택과의 거리는 불과 1백여m밖에 안되는 반면, 피해반경은 3백m나 됐다는 점에서 피해의 극소화를 위한 정확한 사전조사의 필요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안전규정=염소 암모니아등 특정고압가스와 저장량이 1t이상인 유독성 희귀가스는 고압가스 안전관리법의 규체를 받고 있으나 저장량이 1t미만이거나 치명적 피해를 주지 않는 가스는 규제대상에서 제외돼있다.
이번사고의 무수황산(SO₃)의 경우 정부에서 보팔시 사고이후 유독가스 취급업소에대한 일제점검을 실시하면서 과학기술처에서 지정한 관리대상 위해가스 9개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럭키소재공장을 제외시켰다.
이와함께 사업장에 대한 안전점검등 감독을 11개 정부부처에서 38개 개별법의 규정에 의거해 실시한다는 점도 실질적인 산업안전보다는 형식에 치우치게 하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기업측 입장에서는 연간70여회에 걸친 점검을 받고 1백20여회에 걸쳐 관계기관에 보고하도록 되어있어 사고를 막기위한 산업안전보다는 점검 보고를 위한 준비에 치중하게되고 정부의 점검행정을 전문인력에 의한 조장행정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법규정 집행을 위한 규체행정으로 받아 들여 허점을 감추는데 급급하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다.
또 화학공업장치의 점검은 고도의 전문지식에 의한 정밀검사를 실시해야하지만 현행법 (고압가스 안전관리법및시행규칙) 에는 형식적인 재검토기간만을 규정하고 있어 내실있는 점검을 하는데 어려움이 되고있다.
특히 현재 국내에서 생산 또는 외국에서 수입한 내수용 화공약품류는 인간의 보건과 환경에 미치는 평가과정을 거치지 않은채 사용되고 있어 법규의 보완이 검토되어야할 것이다.

<주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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