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1TV 『TV문학관 만추』|심리묘사 두드러진 수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한번 영상화됐던 작품을 재극화할때 제작진들은 우선 과거의 작품이 준 감동을 기억하는 시청자들을 실망시키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특히 전작이 훌륭한 것이었을수록 이같은 강박관념은 「재창조적인 시각」을 억압하기 일쑤여서 『한번 만들어진 작품을 다시 만드는 것은 대부분 실패한다』는 불문율은 강한 설득력을 지닌다.
그러나 KBS제1TV가 13일밤 방영한『TV문학관-만추』는 이같은 우려를 말끔히 씻어준 수작이었다.
지난 66년 고이만희감독이 영화화했던 김지헌원작 시나리오『만추』(신성일, 문정숙주연)는 우리 영화의 고전으로 꼽힐만큼 뛰어난 작품이었고, 81년 김수용감독에 의해 리바이벌했을 때 (정동환, 김혜자주연)도 마닐라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감동과 화제를 모은 작품이었다.
따라서 TV극으로서는 첫시도되는『만추』가 전작콤플렉스를 씻고「제3의 감동」을 줄 수 있느냐 하는 우려는 자못 흥미로운 것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TV극『만추』의 성공은 탄탄한 원작시나리오에도 크게 빚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그보다는 대형 스크린과 달리 영상공간이 비좁은 TV특성을 역이용, 쫓기는 범죄자 청년과 여죄수간의「구속된 사랑의 심리」에 초점을 맞춰나간 맹만재PD의 치밀한 연출감각에서 비롯됐다.
즉 자칫 신파조로 떨어질 수도 있는 회상장면은 토막난 흑백필름으로 처리하는 등 스토리와 대사를 단순화하는 대신 열연한 두주인공 정운용, 김교순의 눈빛에서부터 손놀림 하나하나(특히 라스트신에서 남녀의 얽힌 손이 풀리는 장면은 압권)까지를 섬세하게 포착한 『만추』는 모든 장면 전환이나 동작들마다 절제된 심리적 상징을 이입함으로써 영화와는 또 다른 서정적 감동을 전달해준 탁월한 심리드라머였다. <기형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