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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동호의 직격 인터뷰

“연해주 개발부터 고속철도까지…지금이 러시아에 투자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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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장진영 기자 중앙일보 사진기자

러시아 전 상원의원 루슬란 카타로프

러시아는 가깝지만 먼 나라다. 극동 지역 연해주는 비행기로 1시간30분 거리에 있지만 북한을 피해 서해로 돌아가면 2시간 반이 소요된다. 북한과는 육로가 연결돼 있어 자동차로 오갈 수 있는 이웃이다. 하지만 한국과 러시아는 지리적으로 먼 나라가 된 지 오래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한·러 간 경제협력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거리감이 좁혀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기업의 러시아 진출이 활발하고 양국 간 경제협력 논의도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 러시아가 더 적극적이다. 이 시점에서 러시아의 속내가 궁금하다. 2014년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 합병을 계기로 서방의 제재를 받으면서 어려움에 빠져 있으니 급한 대로 한국에 접근하는 것은 아닐까. 최근 J글로벌·채텀하우스·여시재 포럼에 참석한 루슬란 카타로프 첼랴빈스크주(州) 부지사를 만나 허심탄회한 얘기를 들어봤다. 카타로프는 정원 170명의 러시아 연방의회 상원의원을 지낼 때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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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연방의회 상원의원 출신인 루슬란 카타로프 첼랴빈스크주 부지사. 지난 10일 J글로벌·채텀하우스·여시재 포럼에 참석해 한·러 경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한국에 올 때마다 국내 주요 정보기술(IT) 기업을 방문하고 있다. [사진 장진영 기자]

주 정부 부지사의 역할은 무엇인가. 주에 대해서도 소개해 달라.
“첼랴빈스크는 2013년 운석우(隕石雨)가 대량으로 쏟아져 세계적으로 지명도가 높아진 곳이다. 모스크바 남쪽 방향 우랄산맥 근처에 있는 이곳에서 부지사로 일한다. 경제 개발과 정보통신기술부를 관장하면서 물류·중소기업·인프라 분야까지 책임지고 있다. 첼랴빈스크는 러시아 85개 주 가운데 인구와 경제 규모 9위에 달해 규모가 크다. 현재 개발 붐이 한창 일어나고 있다.”
한국은 몇 번째 방문인가. 주로 무엇을 보고 가나.
“이번 포럼 참석을 포함해 여섯 번째 방문이다. 러시아는 한국의 정보기술(IT) 발전 현황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방문 목적 역시 한국의 경험을 배우는 것인데 가장 처음 방문한 곳은 꼭 가보고 싶었던 삼성전자였다. 대형 온라인 교육업체인 시공미디어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많은 정보를 파악했다. 안랩도 방문해 IT 보안에 대한 경험도 공유했다.”
한국은 북한과 연해주를 연결하는 나진- 하산 프로젝트 참여를 추진해 오다 중단했다.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 때문이다. 러시아는 이 사업이 앞으로도 추진돼야 한다고 보나.
“이 프로젝트는 모스크바에서도 논의되고 있고, 내가 상원의원으로 일할 때 직접 이 문제를 다루는 위치에 있었다. 한반도는 통일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 사업은 북한과의 소통을 추진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고 본다. 러시아에서 출발한 가스관이나 철도가 북한을 통과한다면 한국까지 혜택을 볼 수 있고, 북한은 통과 지역으로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인프라 투자는 국가 간 협력을 크게 증진할 수 있다.”
한국과의 경협은 어느 분야가 유망하다고 보는가.
“러시아에는 현대·기아·삼성·롯데·LG, 옛 대우 등 주요 대기업이 줄줄이 들어와 있다. 이런 모습 자체가 한·러 경협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기업이 들어오면서 공장이 들어서고 일자리가 많아지고 있다. 한편 한국에는 어떤 러시아 상품이 관심을 끄는지 궁금하다.”
러시아에서 가스와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와 수산물을 들여오는 것 외에는 현저한 제품이 없다. 지금 대기업이 러시아에 진출해 공장과 일자리를 만드는 것처럼 앞으로도 양국의 경협 방식은 한국이 주로 투자를 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 투자처 가운데 하나가 연해주라고 할 수 있다. 연해주 개발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추진하는 신동방정책의 핵심 사업이다. 그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2012년 아시아·태평양경제공동체(APEC) 정상회담을 연 데 이어 2015년부터 올해까지 2년 연속 동방경제포럼을 개최한 이유 아니겠나. 결국 극동 개발을 위해선 외국 자본의 투자가 필요할 텐데 한국에 거는 기대는 무엇인가.
“지금 러시아에는 인프라 투자 사업이 사방에 널렸다. 경협을 하게 되면 양국 간 협력을 크게 증진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면에서 러시아는 연해주 개발뿐만 아니라 러시아 고속철도 프로젝트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과 독일은 이미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이번 방문 기간 중 현대로템 사장과도 협의를 했다. 한국도 고속철도 사업에 적극 참여해주길 바란다.”
북한에서 가까운 연해주 자루비노항만 개발은 한·러 사이에 20년 전부터 얘기가 오갔다. 러시아가 운영하면서 한국이 자본을 투자하고 북한 근로자가 고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에선 관심이 많다.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낼 수 있는 지렛대가 되기 때문이다.
“긍정적으로 본다. 러시아도 북한을 협력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프로젝트에는 관심을 갖고 있다. 자루비노에 북한 사람이 와 일하는 것은 좋다. 북한 사람이 다른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 간 대화가 우선이다. 정부 간 대화가 깊어져야 실현 가능성도 높아진다. 갈등이 있는 국가 간에는 중재자가 있는 게 중요하다. 러시아가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연해주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북극항로가 출발하는 지역이다. 그런데 최근 연해주~사할린~쿠릴열도~홋카이도를 연결하겠다는 얘기가 러·일 간에 오가고 있다. 일본은 쿠릴열도 반환을 기대하고 경협을 추진 중이어서 러시아가 부담을 갖는 것 같은데 만약 실현된다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러·일이 철도로 연결되는 한반도는 전략적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 모스크바의 분위기는 어떤가.
“동북아시아 전체의 안정을 위해서는 TSR이 일본보다는 한반도를 통과하는 게 긍정적이라고 본다. 한국에도 도움이 되고 북한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어서다. 실천을 위해서는 한국의 적극적인 노력과 러시아의 협력이 필요하다. 경제 프로젝트 역시 증가시켜야 한다. 철도를 연결한 뒤 경제적 효과를 높이려면 수출입 물량을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도 실크로드 경제벨트와 연해주 개발에 관한 협력이 진행되고 있다. 중국은 동북3성의 인구가 1억 명에 달해 중·러 경협이 활발해지면 러시아 인구가 적은 연해주가 실질적으로 중국에 좌우되는 땅이 될 것이란 우려가 있다.
“러시아는 외국 자본의 연해주 투자 참여를 환영한다. 파트너가 많을수록 제도가 안정화된다. 이런 면에서 국적은 가리지 않는다. 중국의 연해주 투자는 이미 활발하다. 하지만 일본과 비교하면 (쿠릴열도와 관련한) 영토 문제가 없는 한국이 가장 좋은 파트너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 기대하는 인프라 투자는 고속철도 이외에 무엇이 있을까.
“다리를 놓고 고속철도를 까는 인프라 투자 수요는 얼마든지 있다. 러시아는 알다시피 현재 미국의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데 한국은 정치보다는 경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러시아에는 농업과 수입대체 산업에 많은 기회가 있다. 기회를 선점하면 한국은 러시아에서 식품 가공뿐만 아니라 수입대체가 가능한 제조업에서 큰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옛 소련 위성국가까지 파급효과가 미칠 수 있으니 이런 기회를 놓쳐선 안 될 것이다.”
그런데 현실도 봐야 한다. 한·러 무역 규모는 한국의 전통적인 교역국가와는 비교가 안 된다. 러시아 시장에서 기회를 찾는 것은 너무 비용이 크다는 의견이다. 더구나 사회주의 영향 때문에 투자 보장이 불명확하고 규정이 불확실하다는 걱정이 있다. 개선될 가능성이 있을까.
“투자 판단은 기업이 한다. 현대차가 공장을 짓고, LG와 삼성이 전자제품을 들고나와 판매하기 시작한 것은 그만큼 러시아 시장의 잠재력이 크다는 점을 의미한다. 더구나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유럽 국가와의 협력이 많다. 옛 소련 국가와의 교류도 많다. 이런 상황은 러시아가 이미 시장경제이고 규정도 잘 지켜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이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북한의 태도 변화 없이는 TSR이나 가스관 연결 사업 같은 한·러 경협도 진전되기 어렵다. 어떻게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낼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는 남북 간에 신뢰가 많이 부족하다. 사실 한국은 미국의 입장을 많이 받아들이고 있는데 이것이 북한과의 관계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은데, 한국은 국제 무대에서 좀 더 독립적이고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또 하나는 공동 프로젝트가 북한을 끌어들이는 효과적인 지렛대라는 점이다. 한·중 프로젝트, 한·러 프로젝트까지 뭐든 좋다. 이런 것을 하게 되면 이들 국가가 남북 관계에 어떤 형태로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의미 있는 지적이라고 본다.
“공동 프로젝트를 하면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예컨대 러시아 고속철도 프로젝트에 한국이 참여했으면 한다. 러시아는 지금 모스크바에서 베이징을 연결하는 고속철도 사업을 추진 중인데 독일과 중국이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나는 전체 구간 가운데 첼랴빈스크에서 예카테린부르크 구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과 독일은 이미 참여 의사를 밝히고 있는데 한국도 참여했으면 좋겠다. 한·러 경협의 상징적 프로젝트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현대로템은 곧 태스크포스를 보내기로 했다.”
주 부지사인데 철도에 직접 관여하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나는 주 발전부를 담당하고 있으니 미래를 향하는 프로젝트를 함께 담당하고 있다. 철도 프로젝트가 실현되면 지역의 경제성장률을 30% 끌어올릴 수 있다. 이와 함께 경제적·문화적 교류가 촉진되면서 러시아 경제 개발을 크게 촉진할 수 있다. 일단 앞으로 1년간 계획을 구체화하고 건설 비용이 얼마나 들 것인지, 교통량은 얼마나 될지, 어떤 길로 노선을 놓을지를 좀 더 연구해 내년 말께 정부에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제출할 예정이다. 내년까지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자를 찾는 것이고 그 이후에는 고속철도가 건설된다면 30년간 투자자들에게 어떤 혜택을 줄지를 결정해야 한다.”

루슬란 카타로프는

러시아 연방의회 상원의원 출신으로 초고속 엘리트 코스를 밟아 지금은 첼랴빈스크주 부지사가 됐다. 주 정부의 경제 개발을 총괄하고 있다. 1977년생. 1999년 남우랄국립대 자동차·트랙터 공학부를 나와 같은 대학 생물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모스크바국립대 등에서 교수와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첼랴빈스크 주의회 청소년 문화스포츠 위원회 의장을 거쳐 러시아 공공기관 청년 정치협의회 의장을 역임하고 2010~2014년 러시아 연방 상원의원을 지냈다. 연방의회에서 정보사회진흥위원회 의장을 했다.

글=김동호 논설위원
사진=장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