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여명(제1부)하늘과대지(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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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덕>이와 아름은 아직 같이 지낼 수는 없었지만, 언제나 집안에서 서로 마주치면 웃음을 지었고 밥 먹을 때에는 아름이가 덕이의 시중을 들어 주었다. 덕이가 말모루 마을에 온지 사흘이 지나서 젊은이들이 그를 찾아왔다.
우리 마을의 규칙에 따라서 자네를 두레에 들이는 시험을 하러 왔네. 준비는 하고 있었겠지? 덕이는 본가에서 준비해 왔던 술과 장가에서 내는 떡과 고기를 아름이를 통하여 그들에게 내주었다. 그들은 술과 떡을 지고 덕이를 데리고 마을 동구 밖으로 나갔다. 두레의 머리 되는 젊은이가 다른 청소년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덕이를 가운데에 세워두고 빙 둘러 샀다. 덕이의 옆에는 돌 세개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제각기 크기가 다른 것들이었다. 덕이도 두레에 들어가야 비로소 장가들 자격이 생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대개 색시 동네의 젊은이가 골탕을 먹인다는 습관도 잘 아는 터였다. 집사를 맡은 젊은이가 엄숙하게 말하였다.
그 돌은 땅신님의 밥이요 똥이다. 그걸 사람으로 만들어라.
사람으로 만들어 놓으라는 것은 들어올리라는 것이니 대거 하늘 땅 사이에 사람이 있음으로 써다. 덕이는 두 손에 침을 퉤퉤 뱉고 나서 돌을 하나씩 잡아보았다. 작은 돌에서 큰돌에 이르기까지 차례로 들어 보는 것인데 두 개까지 들어 올리면 삼은 못되는 하이지만 합격이 되는 것이요, 세 개를 모두 들어올리면 상으로 두레에 들여지는 것이며 한 개만 성공하고 나머지 둘을 들어올리지 못하면 다음 해로 미루어지는 법이다. 두레에서 받아 주지 않으면 그는 예비전사로서 어린아이 취급이나 받을 뿐이요, 두레에 들어야 비로소 싸움과 사냥과 농사를 어른 한 몫어치 할 수 있는 성인으로 취급받게 되는 것이었다. 덕이는 이미 자기 마을 갈래에서 이런 식을 치렀건만 이제 또 다시 장가의 낯선 곳에서 두레 들이를 치러야만 올바른 성인의 대접을 받게 될 모양이었다.
덕이는 작은 돌을 들어보았다. 제법 묵지근 하기는 했지만 그정도면 힘을 저서 머리 위까지 들어올릴 자신이 있었다. 덕이는 일부러 돌을 잡고 몇번이나 추스려 보다가 힘겨운 듯이 상을 찡그리고 가슴에까지 들어 올렸다가 멀찍이 내던졌다. 젊은이들은 덕이의 쩔쩔매는 꼴을 보고 픽픽 웃고 있었다.

<이>번에는 보다 더 큰 두번째의 돌을 들 차례였다. 덕이는 두번째의 돌을 잡고 몇번 얼러 보았다. 아까보다 더욱 묵지근하고 땅에서 당기는 힘이 제법 팽팽하였지만 이 정도라면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덕이는 심호흡을 깊숙이 하고 나서 끙 하며 들어 올렸다. 덕이는 역시 가슴 높이까지 들어 올렸다가 다리를 벌리며 땅바닥에 쿵 하고 떨어뜨렸다. 벌써 두레들이에는 일차 통과가 되겠지만, 그저 두번째 것으로 만족해야 나이든 사람들 심부름이나 하고 세번째의 것을 들어올릴 때까지 마을의 중요한 일에는 제외될 것이라 아우 노릇이나 하며 지낼 모양이었다. 덕이는 더구나 아름이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텐데 여기서 웃음거리가 될 수는 없다고 이를 악물었다. 마지막 돌을 부여안으니 거의 제 몸뚱이만 하였고, 두 손을 양쪽으로 벌려서 끌어안고 가늠해 보는데 좌우로 뒤뚱거리기는 하여도 땅바닥에서 떨어질 것 같지 않았다.
덕이는 숨을 고르고 나서 두 손바닥을 돌의 옆구리에 꼭 붙이고는 끙 하면서 힘을 썼다. 온통 두 다리가 덜덜 떨리고 얼굴이 시뻘겋게 되었으며 눈앞이 노래졌다. 겨우 무릎쯤의 높이까지 들어 올렸는데 덕이는 그만 눈앞이 아득하여 돌을 놓아 버리고 말았다. 아직도 두번 더 기회가 있었다. 덕이는 돌에서 저만큼 떨어져 서서 딴전을 피우며 잠시 숨을 돌렸다. 덕이는 머리 속으로 궁리해 보았다. 다리를 조금 더 벌리고 자세를 낮춘 다음에 돌을 끌어안아 가슴에 대어 순간적으로 보여준 다음 그대로 두 팔을 벌리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면 될듯하였다.
덕이는 한참이나 서성거리다가 다시 돌에 달라붙었다. 좀 다리를 아까보다 좀 더 벌려 딛고 배에 힘을 주었다. 두 팔로 돌을 꼭 끌어안고는 숨을 끊으며 위로 상체를 들었다. 눈앞에 별이 보이고 온 몸의 핏줄이 곤두섰다. 덕이는 돌을 부여안고 상체를 간신히 엉거주춤 쳐들었다가 뒤로 성큼 물러난다는 것이 그만 보기 좋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돌은 바로 코 앞에 떨어져 무른 땅 바닥을 짓누르고 있었다. 덕이는 잠깐 그대로 앉아서 부연 하늘로 고개를 쳐들고 숨을 헉헉대며 기다렸다. 집사 맡은 젊은이가 두레의 머리와 다음 머리를 향하여 물었다.
들입니까?
예.

<한>사람이 말하였고 다른 사람도 예 하고 대답했다. 젊은이들은 아까 처럼 웃지 않았다. 덕이가 제법이었던 것이다. 다음에는 새 날리기라고 하여 돌팔매를 시험하였고 마지막으로 씨름의 순서가 되었다. 서로의 목을 상대편에 엇갈려 붙이고 상체를 기댄 다음에 허리를 잡고 넘어뜨리는 사내들의 힘 겨루기인데 이번 들이에는 덕이 동갑 나기가 상대가 되었고 그 다음에는 덕이보다 나이가 위인 사람을 꺾어야 하였다.
덕이는 동갑 나기에게는 날렵하게 몸을 빼어 딴죽을 거는 재간으로 이겼지만 그 다음의 나이 많은 상대에게는 패해서 결국은 씨름만은 비긴 셈이었다. 둘 들어가고 하나 비겼으니 두레에는 일단 무난하게 들어간 셈이었다.
다음은 술 먹기, 다음은 캄캄한 밤에 산에 올랐다가 내려오기 등등으로 며칠동안 들들 볶더니 덕이는 드디어 마지막 순서를 남겨두고 말모루 마을 젊은이의 한사람으로 받아들여졌다.
덕이가 장가들고 합방하여 아름이와 첫 밤을 지내고 말모루 마을을 떠난 것은 수확철이 가까와진 때였다. 하늘은 언제나 높게 갰으며 밤에는 별들이 모두 떨쳐 나왔다. 물론 덕이는 마지막 시련으로 발바닥을 무수히 맞았고 말을 탈적에도 장가의 친척들이 부축을 해주었을 정도였다.

<이>틀동안 집으로 돌아오던 길은 매우 아름다웠다. 밤에는 제법 쌀쌀했지만 불을 피운 야영지에서 아름이는 떡을 굽거나 덕이의 잠자리를 돌보았고 나란히 누웠을 적에는 고운 목소리로 노래하였다.
저 많은 별들은 누가 지었나
큰 별 작은 별 어둡고 밝아
이 세상 꽃들은 어디서 왔을까
피고 지고 또한 싹이 트나니
이 모두가 하늘의 지음이라지
우리도 집안 이루어
하늘의 별 같은 식구 될거야
덕이는 누나 같은 안해의 손을 만지작거리면서 그 노랫소리에 잠이 들곤 했다.
이틀째의 오후가 되었을 때 미리 마중 나온 새불과 젊은이들이 그들의 앞에서 떼 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색시에게 꽃과 왕골로 엮은 관을 머리에 씌워 주었고 두 사람을 가운데에 세워 환호를 하면서 갈래마을로 들어갔다. 아버지 큰돌은 인근 부락 모임의 다른 우두머리들을 모두 손님으로 불렀다. 그들은 마을 가운데에 있는 회장으로 쓰이는 큰 움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나란히 앉고 좌우와 양옆으로 인근 부락의 주요한 사람들과 친척들이 벌려 앉았다. 덕이 부부는 부모님께 절하였고 젊은이들은 마당에다 소나무와 잣나무 가지를 꺾어 세워두었다.
그래 강하다.이제 우리 덕이도 어른이 되었고 한 안해를 거느린 가장이 되었구나. 위로 조상님과 어른들을 모시고 아래로 아우들과 벗들과 우애 있게 지내며 자식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아름이는 오늘부터 우리 갈래 마을 사람이니 부뚜막의 불씨를 지키고 힘써서 옷을 짓고 그릇과 곡식을 돌보며 우리의 핏줄을 받은 아이를 많이 낳아야한다.

<그>로부터 사홀 동안을 마시고 노래하며 춤 추고 나서 곧 수확으로 들어갔다. 이때에는 어린 아이들까지 나서서 어른을 거들어 나락을 나르고 음식 심부름에서 나무까지 장만하는 등 새벽 별보고 저녁 달 보기가 어려운 시절이었다. 대륙의 겨울은 어물쩡하는 사이에 찾아들기 때문이었다. 수확이 모두 끝나고 나면 하늘과 당에 드리는 큰굿을 벌이게 되나니 이때에는 소를 잡고, 그 머리를 바치고 네 굽으로 불에 태워 내년의 길흉을 점치고 그 굽을 던져서 떨어지는 모양으로 동네와 마을의 운수를 알아 보고는 하던 것이다. 이제 상달 맞이굿을 준비하느라고 소 잡고 돼지 잡고 곡물을 찧어 떡을 찌는 등 온 마을이 그런 야단법석이 없었다.
맞이굿을 벌이기 바로 하루 전날 저녁이었다. 누군가가 갈래 마을 서쪽편 아득한 광야의 저쪽에서 연기가 오르는 것을 보고 달려 들어와 큰돌에게 알렸다. 그러나 큰돌은 금년의 풍작에 흡족한 뒤라 그런 불길한 조짐에 주의를 돌리려고 하지를 않았다.
음, 어느 다른 부족이 여행을 하는 모양이로구나. 별다른 일이야 있겠는가.
하여서 외곽에 나가 있던 전사는 달리 더 알릴 사연이 없어져서 그만 물러나 오고 말았다.
대개 서북방과 초원의 끝과 산맥 기슭의 사나운 유목부족들은 강변과 들에 사는 농경 부족들의 수확철을 노리게 마련이었으니, 이때에는 그들이 얻은 햇곡식과 겨울을 넘길 여러가지 준비물들이며를 고스란히 빼앗을 수가 있었고 그맘때쯤에는 농경마을에서는 방비도 소홀하여 변변히 싸울 여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또한 농경마을에는 일 잘하고 아름다운 처녀들도 많고 젊은이들을 잡아다가 종으로 삼으면 훌륭한 일꾼이 되었던 것이다.
갈래 마을의 북쪽에는 이미 두어군데의 다른 마을들을 습격했던 동호족의 선발대가 당도하여 야습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들은 창과 칼로 무장하고 가죽 방패와 가죽옷을 입었고 날랜 말을 타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사냥과 먼 여행에 단련된 장년의 전사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말발굽에 털가죽을 감아 행군의 소음이나 발자취가 남지 않도록 하였고 낮에는 둔덕 아래나 숲에서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움직였다. 그들이 연기를 올린 것은 갈래 마을을 덮치기 전에 일단 다른 곳으로 흩어졌던 대를 모으고 본대가 있는 곳을 알리는 군호였던 셈이었다.
그들은 갈래 마을의 외곽에 둥그렇게 진을 쳐 두고 매복초를 묻어둔 다음에, 선공대가 마을을 휩쓸고 짓쳐 나가면 놀라서 우왕좌왕 하다가 빠져나가는 자들을 사로잡거나 살해하고, 이어서 대장이 거느린 본대가 맨 뒤에 마을로 들어가 샅샅이 뒤지는 순서로 공격할 작정이었다.
동호족들은 서로 밤새 소리와 짐승 소리로 대를 구분하여 배치를 끝내고 이어서 길다란 뿔 나팔 소리를 군호로 하여 일시에 함성을 지르며 마을로 달려들어갔다. 맨 앞에는 횃불을 밝혀든 자들이 달려나가며 풀과 짚으로 이은 벽이며 지붕에 불을 붙였고 그 다음에 뒤쫓는 자들은 놀라서 농기구와 작대기며 무기를 들고 뛰쳐나오는 남자들을 사정없이 죽였다.

<갈>래 마을은 잠깐 동안에 불과 연기로 가득 찼다. 덕이는 동검을 빼어 들고 집의 돌담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불길 속에서 뛰쳐나온 어린 동생들이 울부짖었고 어머니는 그들을 감싸안고 불길을 피하느라고 우왕좌왕 하였다.아름이 달려와 덕이의 뒤편에 붙어 서며 애원했다.
제발 나가지 마셔요 .이런 때에는 달아나서 숨었다가 뒤에 가족들을 구해야해요. 어서 숨어요.
당신은 어머니를 살펴드려요. 나는 아버지에게 가야겠어.
덕이는 안해를 뿌리치고 불빛이 일렁거리는 마을의 골목길을 향하여 뛰어 갔다. 회장으로 쓰는 큰 집 앞 빈터는 벌써 유목부족의 전사들이 모여 있었고 사방에서 비명 소리가 들러왔다. 덕이는 큰길을 피하여 돌담을 넘고 몸을 낮게 숙여서 회장목으로 다가갔다. 벌써 불길은 기둥에 붙어 붉은 혀를 날름거리며 기어오르고 있었다.
아버지.
덕이는 가슴이 콱 걸리는 것 같았다. 타오르는 불길 저쪽 벽 위에 아버지는 축 늘어진 채 매달려 있었다. 아마도 요란한 함성을 듣고 뒤쳐 나오다가 곧게 날아든 창에 맞은 것 같았다. 창은 아버지의 가슥을 꿰고 뒷벽에 꽂힌 모양이었다. 덕이는 눈물을 흘리면서 불길을 건너뛰려고 했지만 뜨거워서 접근할 수가 없었다. 불길이 더욱 거세게 오르더니 지붕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덕이는 이를 악물고 돌아섰다. 그리고는 이제는 돌담 사이로 쥐새끼처럼 달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덕이는 동검을 세워들고 회장 앞의 마을 빈터로 달러나갔다. 칼을 들고 성난 늑대처럼 달러들었지만 말에 타고 있던 동오족 전사들은 슬쩍 비겨나더니 덕이를 빙 둘러싸 버렸다.
그래서는 길길이 뛰는 덕이를 창대로 밀어 넘어뜨리기도 하고 말 위에서 발길로 걷어차기도 하면서 놀이를 하는 듯하다가 그 중의 하나가 창을 겨누어 높이 치켜들었다.
사로잡아.

<한>쪽에서 그런 꼴을 구경하고 섰던 자가 말했고 다른 전사가 말안장에서 가죽끈을 풀더니 머리위로 휘돌리다가 던졌다. 또 다른 전사들도 끈 팔매를 연이어 던졌으며 덕이는 몸부림을 치면서 슬며시 무너져 땅바닥에 나뒹굴고 말았다. 덕이는 악착같이 몸을 비틀고 소리를 지르고 했지만 그럴수록 가죽끈이 뱀처럼 온몸을 죄어들었다. 표범의 가죽으로 길게 등뒤를 가리고 있던 대장인 듯 한자가 말에서 내려오더니 덕이의 동검을 주워들었다. 그는 칼을 찬찬히 살피고 나서 부하에게 일렀다.
이놈을 내 말안장에 붙들어 매어라. 그들은 우악스럽게 덕이를 잡아 일으켜 두 손을 단단히 묶고는 그 끈의 끝을 대장의 말 안장에 붙들어 맸다.
대장은 덕이를 힐끗 바라보고 나서 말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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