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V 3부작드라머 『젊은날의 초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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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영상화된 문학작품은 성공하기 어렵다. 속성상 익명성을 띠게 마련인 「글」은 해석의 상당한 몫을 독자들의 상상력에 떠맡김으로써 관대한 리얼리티를 얻을 수 있지만 「영상은 글속의 인물이나 사건을 특수하게 고정시킬수 밖에 없기 때문에 불가피한 「왜곡의 절차」(이경우 왜곡이란 보편성을 상실한다는 평범한 뜻)를 밟지 않을 수 없다.
MBC-TV가 1일부터 3일간 창사25주년 특집극으로 방영한 3부작 『젊은날의 초상』(이문열원작·김한영연출)역시 영상이 갖는 불가피한 불이익을 감수해야만했다. 사실상 이 드라머는 소설만이 누릴수 있는「관념적 리얼리티」를 영상으로도 재현시켜 보겠다는 의욕이 2백70분 내내 흐르는 공들인 역작이었으나 결과적으로 관념소설을 충실히 묘사할 때는「관념을 1대1의 영상으로 골라내는 작업」에서부터 난관에 부닥칠 수 밖에 없다는 교훈을 증명해 주었다. 대표적인 것이 연기다.
우선 주인공 손창민은 예상을 뛰어넘는 열연을 했지만 작중 비정상적일 정도로 사변적인 로맨티스트의 역할을 해내기엔 너무도 얌전한 청년에 불과했고, 정선댁(김혜자)·누님(김혜옥)등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출연자들은 열심히는 했지만 자신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스스로도 정확히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가뜩이나 모호한 「보다 확실한 삶의 가치 추구」라는 소설의 테마에 집착하면서도 끊임없이 비현실과 감상쪽으로 날뛰는 작중 관념을 현실속에 붙잡아두기 위해 어려운 장면마다 영상의 힘과 문제의식으로 고비를 넘기려했던 연출의 노련함도 어쩔수없이 무리한 부분을 드러냈다.
예컨대 「혜연과의 실연」에 지나친 비중을 둠으로써 주인공의 추상적이고 복잡한 방황동기를 단순화·상식화시켜버렸다든가, 원작에도 없는「한발짝 먼저 자살한 청년」을 만들어 냄으로써 작위적 결말을 부추긴 점등은 「의욕이 빚어낸 감동의 약화」라는 이율배반을 낳기도 했다.
또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은 제각기 강한 의미를 띠고 있었으나 주제를 향한 유기적인 일관성은 약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머는 그 이상의 극화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될 만큼 애쓴 흔적이 역력했고 촬영(특히 1부「하구」)도 수준급이었다.
한가지 더 꼬집자면 2부 「우리 기쁜 젊은날」중 주인공일행이 여관부근을 배회할 때 「컬러TV방영」이라는 간판이 비친 것은 60년대말의 극배경을 무시한 가볍지 않은 편집의 실수였다.<기형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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