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고승전』에는 신라 진표율사가 12세때 발심한 사연이 실려 있다.
어느날 사냥하다가 논둑에서 쉬며 개구리를 잡아 버드나무 가지에 꿰어 물에 담가 두고 집에 돌아갔다.
이듬해 봄 또 사냥하다가 개구리 우는소리를 듣고 가보니 개구리들이 버드나무 가지에 꿰인 채 울고 있었다.
크게 놀라 뉘우치고 내가 어찌 먹기 위해 해가 넘도록 개구리가 이토록 고통받게 했는가 하고 곧 금산사의 숭제 스님에게 가르침을 청했다는 것이다.
금산사는 원래 백제 법왕때 세워졌으나 그런 인연으로 해서 뒤에 진표율사에 의해 크게 중창되었다.
그 금산사는 여러번 중창되었다. 특히 정유재난때 병화로 불타버리자 1626년 인조 4년에 수문대사가 새로 지었다.
이번에 불탄 대적광전은 넓은 터전에 장중하고 또 차분히 자리잡고 있었다. 산골짜기에 비집고 들어선 여느 산사와는 달리 백제적인 평골함을 보여주는 건물이었다.
고 건축물 중에서도 특히 기능과 장엄미에서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되곤 했다.
금산사엔 이 대적광전 외에 국보62호인 미륵전이 있다. 그 우람한 목조 3층 건물엔 30척이나 되는 금동 미륵불이 안치돼 있다.
대적광전이 불탄 가운데도 미륵전은 안전했던 것이 불행 중 다행이다.
미륵불은 현세불인 석가모니불의 가르침이 지배하는 정법·상법·말법 시대가 가면 이어 나올 부처님이다.
그러니까 석가 부처님이 채 이루지 못한 현세의 중생제도를 위해 오시고 있는 부처님이다. 이른바 미래불이다.
그에 비해 대적광전에 모신 부처님 중엔 비로자나불 외에 아미타불이 있다. 서방정토의 부처님이다. 사바세계에서 죽어 돌아가는 중생들을 극락으로 받아들이는 부처님이다.
하지만 금산사는 미륵신앙의 근본도장이란 점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금산사의 주산인 모악산 주변에 미륵신앙을 빌미로 하는 신흥 종교단체가 번졌던 일도 있다. 서백일 교주의 용화교도 그중 하나다.
후백제의 견훤이 네째 아들 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자 장자 신검이 그 아우를 죽이고 아비를 이곳에 가둔 일도 있다.
그러나 임란때 주묵대사 처영이 이곳에서 승병 1천명을 일으켜 왜병을 친 장거는 길이 역사를 빛낸다.
그 유서 깊은 금산사의 민족문화재가 불타 없어졌으니 마음이 허전하지 않을 수 없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