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제왕적, 끝은 식물대통령’…87년 헌법의 벽 넘기 3번째 시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표가 ‘6·29 선언’을 하면서 현재의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를 골간으로 한 헌법이 개정됐다. 하지만 대통령 5년 단임제하에선 “책임정치가 이뤄질 수 없다”(이종수 연세대 교수)거나 “임기 4년 차부터는 식물대통령으로 끝난다”(전학선 한국외대 교수)는 지적이 현실로 되풀이돼 왔다. 한편으론 5년 단임제 대통령은 임기 초·중반까지는 ‘제왕적 대통령’이라 불리는 이중평가를 받고 있다.

노무현·MB 때 추진했지만 불발

87년 헌법에 대한 대통령 주도의 개헌 시도는 이번이 세 번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집권 마지막 해였던 2007년 1월 9일 대국민 특별담화 형식으로 기본권에는 손대지 않고 권력구조만 바꾸는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대통령 4년 연임제(중임제) 개헌을 개편 방향으로 내놓았다. 노 전 대통령은 “어떤 정략적 의도도 없다”고 강조했지만 임기 말 대통령의 전격적인 제안은 차기 대선주자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쳤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주자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에 온 힘을 쏟아야 할 중대한 시점에 개헌 논의로 많은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고 반대했다. 또 다른 유력주자였던 박근혜 대통령도 “참 나쁜 대통령”이라며 “대통령 눈에는 선거밖에 안 보이느냐”고 비판했다. 결국 개헌 논의는 수포로 돌아갔다.

이명박 정부의 개헌론은 집권 3년 차였던 2010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식 제기됐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극단적인 대결정치와 해묵은 지역주의의 해소, 지역 발전과 행정 효율화를 위한 선거제도와 행정구역 개편을 하루빨리 추진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개헌도 국회에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의 친박근혜계는 개헌 시도가 박 대통령의 대선 도전을 방해하겠다는 것으로 간주했다. 야당인 민주당에선 손학규 전 대표가 “한나라당의 정권 연장을 위한 술책”이라며 반대해 역시 87년의 벽을 넘지 못했다.

박성훈 기자 park.seonghu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