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수사와 실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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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무역수지 흑자원년이다, 국제수지가 크게 개선되었다, 해서 들떠 있는 사이에 선진국들의 대한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대내적으로 고율 성장, 물가안정, 국제수지 개선 등으로 축제분위기인데 대외적으로는 먹구름이 점차 끼고 있는 것이다.
올해 예상을 훨씬 넘어 무역수지가 대폭 개선되고 이에 따라 국제수지도 균형 점을 넘어 흑자 폭이 4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어서 선진국들의 대한인식이 달라지리라는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짐작이 예상보다 훨씬 빨리 현실화될 조짐이다.
대체로 한국이 무역에서 대폭 혹자를 내고 있는 미국이 대한시장개방 등 통상압력을 가중시키고 원화 절상 등을 강도 있게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대폭 무역적자를 보고 있는 일본마저 대한 수입억제 조치를 하려 하고 있다.
일본, 미국이 이 시점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은 일반 특혜관세제도(GSP)에 관한 것이다.
미일 선진국들은 대개도국과의 무역 확대균형을 위해 GSP를 운영해오고 있다.
개도국의 상품수입을 확대하여 무역거래의 균형화를 도모하고 이에 따라 국제수지를 개선함으로써 외채를 갚도록 하는 등 개도국의 경제적 지위향상을 위한 것이 GSP다.
그런데 한국은 자동차, 컴퓨터 등 첨단제품까지 수출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제수지가 크게 호전된 이상 GSP 혜택의 폭을 줄이거나 아예 혜택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발상이다.
한국은 지난85년 미국에 수출한 1백7억5천만 달러 중 13·3%에 달하는 16억5천만달러 어치를 GSP 혜택을 받고 수출했다.
또 일본에 대해서는 84년 기준으로 총 수출 46억2천만 달러 중 27·1%에 해당하는 12억5천3백만 달러 어치를 역시 GSP 수혜로 수출했다.
GSP 혜택을 받으면 영세율이나 일반관세율보다 훨씬 낮은 관세율이 적용되기 때문에 경쟁력이 있게 되는데 앞으로 GSP 혜택을 못 받게되는 경우 경쟁력이 그만큼 약화되는 것이다.
일부 섬유류제품, 신발류, 철강제품, 전자제품 등 우리 수출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품목들도 GSP 수혜 대상에 들어 있어 문제가 된다.
5일부터 동경에서 열리는 한일 각료회담에서 일본측은 한국상품의 GSP 폐지문제를 거론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미국은 내년7월부터 우리의 컴퓨터, 전화자동 응답기, 냉장고, 철못 등 34개 품목에 걸쳐 GSP 혜택을 중지할 예정이라는 것이 무공의 현지보고다.
우리가 미국과는 무역흑자를 내고 있어 미국의 GSP축소는 별개 문제로 친다지만 일본의 경우는 만일 GSP 축소 또는 폐지를 주장하면 그 부당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대일 무역 적자가 매년 증가일로에 있는데 GSP 문제를 내놓는다면 일본측이 한일관계에서 항상 주장하는 한일경제의 확대균형은 수사에 불과하고 식언밖에 안 된다.
일본은 GSP 외에 대한 무역에서 무엇을 우대하고 있는가 묻고 싶다. 오히려 한국에 대해서는 차별 관세는 물론 까다로운 수입절차 등 높은 비관세 장벽을 쌓아 놓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대미 무역흑자, 대일 적자 등 지역간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수입 선을 다변화하려 하자 일본이 감정적으로 대응하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우리의 무역수지 개선 노력이 대일 적자 때문에 벽에 부닥치고 있는 것을 일본은 모를 턱이 없다.
무역도 상호적인 것을 일본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도 언젠가는 대한 GSP 철폐에 대비하여 우리 수출품의 경쟁력 제고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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