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이 지배하는 사회|진덕규 <이화여대 교수·정치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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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어느 시대 건 그 시대 나름의 분위기가 있다.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도 바로 이러한 사회의 한 분위기라고 할 수 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할 일과 못할 일을 구분해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바로 그 시대의 분위기를 구성하는 핵심이기도 하다. 흔히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를 문화라고 규정해도 좋고 넓은 의미에서는 가치 체계라고 말해도 그만이다.
사람답게 살고 사람답게 대접받는 사회는 그와 같은 시대 분위기가 올바르게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을 만일 우리의 오늘 속에 맞추어 본다면 과연 우리는 오늘 어떤 시대적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우선 서로 다른 두개의 시대 분위기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그 중 하나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의 독일 사회를 들 수 있다. 대전에 지친 국민들의 좌절감은 깊은 심연에 떨어져 있었고 귀향한 범사들은 애국의 구체적인 결과에 망연자실하였다. 어느 곳에서도 그들은 안주할 터전을 얻지 못했다. 울분에 싸여 있는 마음은 정치가들의 어떠한 외침도 그것이 한낱 허황된 주장이라는 것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들 사회의 제도에 대해서 불만을 가졌고, 지도자에 대해서도 불신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패망한 독일이 어쩌면 진실 된 독일의 모습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이전의 독일, 그것은 더 없이 위대한 조국으로 여겨졌고 그러한 조국을 위한 발돋움과 투쟁이 분노를 삭일 수 있는 통로처럼 여겨졌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는 마침내 「히틀러」에 의해서 광기의 시대로 치달리고 말았다. 이성이 극도로 절제되었다. 화평의 미덕은 비겁함으로 낙인찍혔고, 어울려서 함께 살기보다는 배척과 대결이 용기 있는 것으로 미화되었다.
파괴가 곧 창조라는 모순된 선동이 거리마다 울려 퍼졌고, 자기의 행위는 어느 누구도 비판 할 수 없는 절대성을 지닌 것처럼 맹목적인 행위가 거리를 치달리고 있었다. 실로 인간의 이성과 합리적인 사고는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성이 사라진 자리에 새롭게 들어선 광기는 마침내 인간을 수단으로 삼아서 천년 왕국을 꿈꾸는 시대적인 반역아들의 광기 있는 통치 체제로 전락되고 말았다.
어느 시대에서나 광기는 조금씩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광기의 고삐를 이성이 꽉잡고 있을 때 그 사회는 진실이 숨을 쉴 수 있고 인간성이 열릴 수가 있다.
1900년대를 넘어서고 있을 때에는 영국 사회도 예외 없이 혼돈과 소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제 새롭게 의식화된 노동자들의 욕구는 이미 자제의 선을 넘고 있었다. 참정권 요구의 주장이 쏟아져 나왔고, 과격한 정치 행동도 거침없이 행해졌다.
어떤 의미에서는 점차 광기의 시대로 접어 들어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영국 사회는 그 선을 넘어서지 않았고 끝내 이성이 지배하는 합리적인 세계로 지향 할 수 있었다. 노동자들은 노동 조합 운동을 통해서 자신들의 욕구를 한번 더 검토 할 수 있었다. 정치가들은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착실하게 그것을 고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시민들은 조용히 참고 기다리는 미덕을 길러 나갔다. 어떤 가능성이 서서히 다가서고 있었다.
그것은 대결이 아니라 화해로, 택일이 아니라 통합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실로 합리적인 귀결점을 구축할 수 있었다. 「마르크스」가 살았던, 그리하여 「마르크스」의 뜨거운 혁명 주장의 목소리가 흘러 넘치던 영국에서는 혁명이 아닌 개혁으로 「마르크스」를 극복 할 수 있었고, 인간 이성의 가치를 심어 줄 수 있었다.
광기의 분위기와 이성의 분위기를 몰고 가는 요인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아마도 이 대답처럼 자명하고도 쉬운 것은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곧 그 시대 그 사회의 지도자들, 특히 앞장 서서 일하고 있는 정치가들에게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성을 몰락시키고, 그 대신에 우상을 심으면서 교조적인 주장으로 시민들의 눈을 멀게 할 때 시대적 분위기는 흥분된 광기로 치달리고 만다. 약속을 실행하지 못하며 권위가 상실된 정치가들의 모습에서는 국민의 절망감이 대결 의석으로 떨어지고 만다.
지도 계층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이중 삼중의 모순·규범으로 살아가고 있고 겉으로는 애국심을 주장하지만 속으로는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배반적인 행위 속에서 이성적인 시민 의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늘 우리 시대의 분위기는 이성이 극도로 위축되어 있고, 광기의 음험한 독소가 점점 더 퍼져 나가고 있는 것 같다.
뜨거운 주장만이 난무하고 비판이 아니라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교조적인 논리가 과학으로 행세하고 있다. 모두가 들떠 있는, 그러면서도 방향을 잃은 것만 같은 망연함이 지배하고 있으며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불성실함이 일관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를 극복 할 수 있는 열쇠는 지도자들의 이성의 복권이 먼저 이루어져야함을 전제로 할 때 언제 쫌이면 실로 이성과 합리성에 의한 지도자들을 우리도 갖게 되고 그들의 앞장섬에 의하여 화평과 화해의 사회를 이룩할 수 있게 될까. 절망을 딛고 넘어서는 이성의 승리가 찾아올 미래의 확신이 더 없이 필요한 시대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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