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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4차 산업혁명 큰 파도, 준비된 서퍼에겐 기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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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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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준
벤처기업협회 회장
㈜쏠리드 대표이사

몇 해 전부터 우리나라 해변에서도 서핑을 즐기는 동호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파도가 위험하지만 서퍼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다. 파도가 높을수록 닦아놓은 기량을 발휘할 기회도 많아진다.

융합·초연결의 창조적 파괴 이끌
창의력+기업가정신 인재 키우고
AI·사물인터넷 등 신산업 위해
규제 시스템 근본적 개혁도 필수

‘저성장’, ‘정체’, 그리고 ‘위기’라는 단어가 더욱 익숙해져 가는 요즘, 전 세계적으로 제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일고 있다. 변화하고 준비하는 기업에게는 서퍼가 맞는 큰 파도처럼 4차 산업혁명이 기회이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과 국가에게는 세상에 없던 위기가 될 것이다.

최초의 산업 혁명은 생산을 기계화하기 위해 물과 증기력을 사용했다. 두 번째는 전력을 사용하여 대량 생산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세 번째는 전자·컴퓨터·정보통신기술이 핵심이었다. 인류의 네 번째 산업 혁명의 키워드는 경계의 와해와 융합, 그리고 초연결이다. 기존 산업(제조업)과 정보통신기술이 융합되고, 각 사물이 지능을 가지고 연결되면서 생산과정의 최적화가 이루어진다. 인공지능과 로봇, 빅데이터와 클라우드, 사물인터넷, 바이오 등 다양한 첨단 기술들이 서로 엮여져서 새로운 형태의 산업이 만들어진다. 궁극적으로 물리 세계와 사이버 세계가 융합되며 엄청난 사회의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 경쟁력을 가진 독일은 2010년부터 디지털 산업화로 나아가기 위해 ‘인터스트리(Industry) 4.0’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전략의 핵심인 스마트 팩토리는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 공장의 설비와 부품들을 연결하고 작업과정마다 인공지능이 설치되어 사람 없이 수리도 가능하다. 미국의 경우 강한 소프트웨어와 서비스업을 바탕으로 제조강국 부활을 노리고 있다. 전통산업의 대표 주자라 할 수 있는 GE의 제프리 이멜트 회장은 “우리의 목표는 디지털 산업회사이며 2020년까지 100억 달러의 가치를 지닌 소프트웨어 회사로 성장할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중국 정부는 ‘제조 2025 전략’을 발표하고 전국 공장을 로봇과 컴퓨터를 통해 단계적으로 자동화하는 작업을 지원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물결에 올라탄 기업의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다. 피부에 간단히 갖다대기만 하면 피부 수분상태 및 자외선 지수를 측정하는 뷰티 디바이스를 개발한 모 벤처기업은 창업 1년 만에 세계 각국의 관심과 투자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제품 자체의 기능도 중요하지만 전 세계에서 이 기기를 통해 축적되는 빅데이터의 미래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러 기술의 융합을 통하여 만들어지는 새로운 시장은 덩치가 작고 유연한 벤처기업들이 진입하고 성장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특유의 빠른 실행력과 기획력을 무기로 해 4차 산업혁명이라는 큰 파도에 유연하게 오를 수 있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중요한 것은 과학기술의 발전 만은 아니다. 기술에 대한 전문 지식과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창의적이고 인간성을 갖춘 인재 육성이 병행되어야 한다. 또한 공정한 경쟁체제와 상생협력을 통해 다양성이 존중되는 기업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창조적 파괴가 일어나는 사회적인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서 규제 시스템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수적이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자율주행 자동차 개발과 사물인터넷, 드론 등의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산업안전법·도로교통법·의료관련 법규 등을 부분적인 시각에서 개정하는 선에 머물지 말고 국가 차원에서 4차 산업혁명시대에 어울리는 규제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내 핀테크 관련 기업들이 혁신적인 솔루션을 개발하고도 금융당국의 긴 인허가 시간과 각종 규제로 인해 중도 포기하는 사례들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기존 산업 위주로 되어 있는 규제로 인해 혁신 기술의 발전이 저해되지 않도록 사후규제나 규제실험공간 등 새로운 규제 체계를 시도하는 여러 선진국들의 노력을 주목해야 한다.

과거 한국의 산업화는 늦게 시작되었으나, 지금 일어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은 우리가 앞서 나갈 여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그 기반이 되는 여러 산업 분야에서 이미 앞선 기술들을 보유하고 있고, 높은 수준의 IT인프라도 구축되어 있다. 새로운 산업혁명을 위협이 아닌 기회로 활용해 미래 인류문명을 선도할 수 있도록 선제적인 준비와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준 벤처기업협회 회장·㈜쏠리드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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