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으로 아내 잃은 시인 도종환씨 추모의 정 담아 시집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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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병으로 잃어버린 젊은 아내를 그리며 쓴 시들로 꾸며진 시집이 나와 그 애틋한 부부애가 문단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시인 도종환씨(32)가 작년 여름부터 올 가을까지 집필한 69편의 작품을 모아 간행한 시집 『접시꽃 당신』(실천문학사간) 이 바로 그것.
도씨가 동갑나기 부인 구수경씨를 잃은 것은 지난해8월. 봄에 얻은 첫딸 한결양이 넉 달 남짓 됐을 때, 불과 두 달 전에 발견한 위암으로 부녀의 손을 영영 떠나가 버렸다.
현재 동이중학교(충북 옥천군 동이면) 교사인 도씨는 그때부터 매주 아내의 묘소를 찾아가 깊은 정을 나누었다.
『1년 동안 이렇게 많은 시를 쓰게될 줄을 몰랐습니다. 내가 쓴 것이라기보다 아내를 찾을 때마다 그녀가 내게 선물한 것입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눈이 몹시 내렸던 81년 겨울. 구씨는 시인의 길을 꿈꾸는 도씨를 좇아 청주시내를 다니며 음악감상을 했고, 도씨는 유화를 좋아했던 구씨와 함께 야외에 나가기도 했다.
부부로 맺어진 것은 83년 초. 도씨가 충북대 대학원(현대소설 전공)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직후였다.
도씨는 아내에게 잘 해주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걸린 듯 『해준 것이라고는 죽고 난 뒤 지은 수의 한 벌』이라고 시에서 안타깝게 노래하고 있다. 그는 지금도 교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금강 언덕배기의 무성한 억새풀을 헤키고 아내가 언뜻언뜻 나타날 것 같다고 말한다. 『접시꽃 당신』을 읽어본 문인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애잔하면서도 아름다운 시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입을 모은다. 평론가 김사인씨는 『시상이 매우 깊으며, 시의 서정성은 흠잡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하다』고 격찬했고, 시인이자 소설가인 송기원씨는 『한편 한편이 너무나 깊은 충격을 가져와 시집을 차마 끝까지 다 읽지 못했다』고 말한다.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우리에게 남아있는 날들은/참으로 짧습니다/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접시꽃 당신』 중에서)라는 표제 시는 아내가 먼길을 떠나기 며칠 전 아침 출근길에 시골 돌담 옆에 소담히 피어 있는 흰접시꽃을 발견하곤 그 꽃에서 아내의 모습과 체취를 느껴 지은 작품.
이번에 시집으로 묶어진 시들은 동인지 『분단시대』와 『실천문학』 등에 몇 편 발표한 것 이외에는 대부분 신작이라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도씨는 85년3월 시집 『고두미 마을에서』(창작과비평사간)를 낸바 있다. <양헌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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