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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설의 시진핑과 리커창이 펼치는 중난하이 남북 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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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유상철 기자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 차이나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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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
논설위원

중국이 정치의 계절을 맞았다. 24일부터 27일까지 중국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6차 전체회의(6中全會)가 열린다. 중국 지도부의 대대적 물갈이가 예정된 내년 가을의 19차 당 대회를 1년 앞두고 개최되는 행사다. 자연히 경쟁적 관계의 서열 1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2위 리커창(李克强) 총리 간의 힘겨루기에 눈길이 쏠린다. 특히 올해는 경제 운용을 둘러싼 두 사람 사이의 불화 소문이 끊이지 않던 터라 세간의 관심은 더 뜨겁다.

시진핑 총서기와 리커창 총리는
중국 경제 전반에 대한 판단에서
구체적 정책까지 서로 견해 달라

내년으로 다가선 당 대회 앞두고
지지 세력 총동원한 세싸움 양상
그 승패에 따라 운명 또한 갈릴 듯

권력 다툼은 어느 왕조에나 있었다. 당(唐)대 후반엔 한림원(翰林院) 학사와 환관 사이의 싸움이 치열했다. 궁정 남쪽엔 한림원이, 그리고 북쪽엔 환관이 포진해 ‘남원(南院)-북원(北院)의 다툼’으로 불렸다고 한다. 한데 그로부터 1000여 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21세기의 중국에서 또다시 ‘남원-북원의 다툼(南北院之爭)’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이야기는 지난 5월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달 9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에 특이한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제목부터 눈길을 끌었다. ‘권위인사가 현재의 중국 경제를 말하다’. 인민일보 기자가 묻고 권위인사가 답하는 형식인데 권위인사가 누구인지에 대해선 일절 밝히지 않았다. 사실 인민일보에 권위인사가 등장하는 게 없던 일은 아니다. 중국 공산당이 할 말이 있을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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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習近平, 사진 왼쪽), 리커창(李克强, 오른쪽)

첫 등판은 1946년 5월로 마오쩌둥(毛澤東)의 공산당과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이 대륙의 패권을 놓고 맞붙던 국공내전(國共內戰) 기간이었다.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때 인민일보에 첫선을 보인 권위인사는 공산당의 1인자 마오쩌둥이었다. 여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인민일보의 권위인사는 정말로 ‘권위’가 넘치는 인물이다. 이번에 나타난 권위인사는 시진핑의 경제 책사인 류허(劉鶴) 중앙재경영도소조판공실 주임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제는 인터뷰 내용이다. 1개 면 이상 되는 장문의 인터뷰를 통해 이 권위인사는 리커창 총리 중심으로 펼쳐지는 경제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우리나라의 경제 잠재력은 충분하다. 부양정책을 쓰지 않더라도 (발전) 속도가 그렇게 떨어지지는 않는다.” 이는 올해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대규모로 돈을 풀어 경기를 살리려 안간힘을 쓰는 리커창 노선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이 권위인사는 또 “일부 낙관론자가 현재의 중국 경제 상황을 U자형 혹은 V자형으로 보고 있지만 실제론 L자형 단계로 들어섰다”며 “일부 경제지표가 좋아졌다고 희희낙락할 것도 아니고, 또 나빠졌다고 당황해할 것도 아니다”고 분석했다. 이 또한 리커창이 보는 중국 경제 상황과는 다른 판단이다. 권위인사가 강조하고자 한 것은 리커창의 단기적인 경기 부양정책에 반대하며 지금은 장기적인 체질 개선을 위해 힘을 쏟을 때라는 점이었다.

이에 현대판 ‘남원-북원의 다툼’이란 말이 나왔다. 시진핑과 류허 등이 장악한 당 중앙은 중난하이(中南海) 남쪽에 자리하고 있는 데 반해 리커창이 수장으로 있는 국무원은 북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간에서 권위인사가 인민일보에 등장한 것은 리커창에 대한 공개 비판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자 중국 관방을 배경으로 하는 인터넷 매체들이 그 정도 의견 차이는 늘 있는 것이라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시진핑과 리커창의 경쟁은 뿌리가 깊다. 1990년대 이래 중국에선 당 총서기가 업무 전반을 관장한다면 경제는 총리의 몫으로 여겨졌다. 집단지도체제에 의한 업무 분담의 결과다. 그러나 시진핑은 집권 후 ‘1인 체제’ 구축에 힘을 쏟았다. 마침내 2013년 말부터는 리커창을 밀어내고 경제 대권을 틀어쥐었다는 말이 나왔다. 시진핑이 중앙재경영도소조 조장이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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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지금 시진핑 측의 권위인사가 인민일보에 등장해 리커창을 비판하는 일이 벌어졌을까. 경제 대권을 쥐긴 했지만 실제적인 경제 운용은 여전히 리커창의 국무원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무원이 푸는 막대한 돈이 대부분 리커창이 주장하는 ‘인터넷 플러스’와 같은 정책에 쓰이고 시진핑과 류허가 외치는 공급 측 개혁으로는 흘러 들어가지 않아서라는 이야기가 있다.

시진핑과 리커창이 벌이는 남원-북원의 다툼은 단순히 경제정책을 둘러싼 싸움만은 아니다. 시진핑과 리커창을 앞세운 두 세력 간 전쟁으로 풀이해야 한다. 여기에서 조심해 봐야 할 건 두 세력의 구성원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과거 시진핑 세력으로는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과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부주석 등이 거론됐다. 여기에 홍색(紅色) 가문의 힘이 보태졌다.

한데 시진핑의 앞뒤 가리지 않는 반부패운동이 장쩌민 세력의 이탈을 야기했다. 장쩌민의 무력을 뒷받침했던 쉬차이허우(徐才厚)나 궈보슝(郭伯雄) 등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들이 모두 부패 혐의로 숙청됐다. 이젠 장쩌민의 과거 군내 비서 역할을 했던 자팅안(賈廷安)에 대한 조사설마저 떠돌고 있다. 분노한 장쩌민 측이 이탈 정도가 아니라 반기를 들 상황이 된 것이다.

장쩌민 측으로선 자연히 시진핑의 반대편에 서 있는 리커창의 후원 세력인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과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관료 사회 또한 리커창 측에 호의적이다. 오랜 간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4년째 지속되고 있는 서릿발 같은 사정(司正) 정국을 좋아할 관료는 없기 때문이다.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 집권 10년 기간 자살한 공직자가 68명이었던 데 반해 시진핑 정권 출범 이후 4년 만에 이미 120여 명이 목숨을 끊었다. ‘관(棺)을 덮으면 부패 조사도 덮는다’는 불문율이 작용한 결과다.

이에 힘을 얻은 리커창이 올 들어 부쩍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의 정부 업무보고에 자신의 소신을 많이 담았다. 또 연초부터 터져 나왔던 시진핑에게 ‘핵심(核心)’ 지위를 부여하자는 캠페인 또한 유야무야로 만들었다. 리커창이 정부 업무보고를 하는 동안 시진핑이 박수 한 번 치지 않고 싸늘한 얼굴로 단상을 지키고 있었던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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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가만 있을 시진핑이 아니다. 리커창의 세력 기반인 공청단이 지난 5월 ‘제 기능을 못한다’는 시진핑의 질책 이후 쑥대밭으로 변했다. 당 기율검사위원회의 감찰을 받는가 하면 예산은 전년 대비 반 토막이 났다. 또 공청단 산하 대학인 중국청년정치학원은 신입생 모집을 중단하는 등 인력이 크게 축소됐다. 시진핑의 뒤를 이을 차세대 지도자로 주목받는 공청단 출신의 후춘화(胡春華) 광둥(廣東)성 당서기는 현재 숨을 죽이고 있는 상태다.

시진핑 또한 타격을 입고 있다. 연초 시진핑을 ‘핵심’으로 옹립하자고 처음 주장했던 황싱궈(黃興國) 톈진(天津)시 대리서기가 9월 중순 뜻밖에 낙마했다. 시진핑의 저장(浙江)성 출신 부하를 뜻하는 ‘지강신군(之江新軍)’의 하나로 분류되고 내년 정치국 위원 승진이 유력시되던 터라 세상이 놀랐다. 특히 시진핑 집권 이래 시진핑 측근이 걸려들기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충격은 더 컸다.

최근엔 랴오닝(遼寧)성 정가가 도마에 올라 있다. 지난 3월 왕민(王珉) 당서기가 부패 혐의로 숙청된 데 이어 이번엔 랴오닝성 인민대표 선거가 돈을 뿌리고 표를 사는 금품선거로 얼룩졌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수백 명의 대표가 자격 박탈되는 사태를 빚고 있다. 왕민은 공청단 출신인 리위안차오(李源潮) 국가부주석의 측근이다. 특히 눈여겨봐야 할 건 랴오닝성은 리커창이 2004년부터 3년 동안 당서기로 있으며 기반을 닦았던 곳이라는 점이다. 이번엔 리커창 세력이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중국의 가을 정국은 혼전 양상이다. 싸움의 결과에 대한 예측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극과 극을 달린다. 먼저 시진핑의 총서기 재선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장쩌민 세력과 공청단이 합심해 ‘경제를 아는’ 리커창을 새로운 총서기로 추대하려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리커창 총리가 연임하지 못하고 내년엔 경질될 것이라는 예측도 난무한다. 리커창 자리를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나 류허가 차지할 것이라는 등 차기 총리의 후보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거론되는 상황이다.

이번 6중전회는 바로 이 같은 큰 변화의 실마리를 건져낼 수 있을지 주목받는다. 대개의 경우 중국의 정치 공격은 상대 세력의 외곽부터 때리며 점차 안으로 파고드는 모양새를 갖춘다. 자연히 누구의 세력이 더 많이 상처를 입고 있는가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지금까지는 리커창 측 손실이 컸다. 그러나 난공불락 같았던 시진핑 세력에도 황싱궈 낙마에서 보이듯 틈이 없는 건 아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변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산 하나에 호랑이 두 마리가 있을 수 없다(一山不容二虎)’는 말이 틀리지 않아 보인다.

유상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