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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안「터키」세계로 눈돌린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터키사람들은 이 나라가 80년대초까지만 해도 아르헨티나와 폴란드, 그리고 우간다등 3국을 한데 모아놓은 모습이었다고 말한다.
10년마다 되풀이 되어온 군사 쿠데타및 군부의 정치개입으로 계엄령과 비상사태가 일상화 되었고 걷잡을수 없는 인플레로 생활필수품값은 하루가 다르게 올라갔으며 사회물안과 소수민족의 대립으로 날마다 20여명씩이 테러로 숨지는등 터키는 지난 20년간 최악의 상태가 계속돼왔다.
게다가 74년 그리스와의 키프로스 전쟁으로 국력이 쇠약해져 85년의 1인당 국민소득이 1천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난한나라로 남아있다.
장기간 계속된 외우내환으로 터키는 유럽 아시아대륙및 중동의 중심부분을 차지한 지리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주변국가들로부터 정치 경제적으로 외면당한채 고립되어 온 것이다.
터키가 국제사회에 눈을 떠 세계시장으로 진출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은 현 집권세력인「 투르구트 외갈」수상의 조국당이 들어서면서 부터라고 할 수 있다.

<여건못살려 고립>
정치
60년5월27일의 첫 쿠데타이후 터키는 지금까지 두차례의 군사혁명과 군부의 직접적인 정치개입으로 군부의 입김이 국내정치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키의 민주주의에 대한 앞날을 밝게하고 있는 것은 국민다수가 무력으로 집권한 군부나 군부가 지원하는 정치집단을 선거에서 패배시킬만큼 정치의식이 높다는 점이다.
83년11월 민정이양을 위한 총선때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당시의 「케난·에브렌」대통령은 자신의 동료였던「수날프」퇴역대장을 당수로 한 민족민주당의 집권을 국민들에게 호소했으나 선거결과 놀랍게도 순수한 민간관료 출신인「외갈」수상의 조국당이 4백석의 단원제 의석가운데 2백11석을 차지했다.
73년4월의 대통령선거에서도 군부가 지지한 후보대신 야당인 인민공화당과 정의당쪽에서 민「파리·코루튀르크」가 당선된바 있다. 특히 전자의 경우 총선결과가「에브렌」대통령과「외잘」수상의 관계를 어렵게 만들 것으로 예상됐으나 85년의 2기집권까지 두 지도자들은 군통수권자로서의 확고한 치안유지와 실무추진내각의 「조화」를 잘 이루어 나갔다.
터키정치에 군사개입이 잦았던것은 60년 군사혁명당시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한 새헌법에서 연유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학원의 자치제도, 사상발표의 자유, 노조의 시위, 동맹파업의 자유를 보장했던 탓으로 공산주의 사상과 이를 바탕으로한 좌파정치집단이 득세, 좌 우파간의 정치적 갈등으로인한 테러행위등 사회불안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

<높아진 정치의식>
좌파의「에체비트」와 우파의「데미렐」이 번갈아가며 내각을 이끌었던 73∼80년사이에는 정치불안이 극도에 달하고 연간 인플레율이 1백%에 이르는등 국가가 파탄의 지경에 이르렀고 이는 결국 80년9월12일의「에브렌」당시 터키군 총사령관에 의한 또다른 군사혁명을 불러오게 된것이다.
「에브렌」대통령은 당시 선포한 계엄령및 비상사태를 5년이 지난 85년 5월에서야 수도권및 이 스팀불시 지역에서만 해제했으나 구정치인들에 대한 정치활동금지법등은 92년까지 유효한채 남아있다.
EC측은 80년 쿠데타이후 모두 7억5천만달러의 원조를 동결, 그 해제조건으로▲민주정치 회복▲사형제도 폐지▲정치범 재판중지▲정치활동및 언론자유 보장등을 요구하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
84년 인플레 48·4%, 85년 인플레 37·9%, 실업률 25%, 환율 1달러=2백90리라(84년1월), 4백67리라(85년2월), 5백50리라(85년9월), 7백38리라(86년10월), 총통화증가율 57·1%(85년), 대외수지적자 36억3천만달러(84년), 33억8천만달러(85년), 은행대출금리 60∼70%.
이상과 같은 통계숫자가 나올수 있는 나라가 오늘의 터키다. 이는 또 정치적 불안이 경제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미칠수 있는가를 잘 나타내주는 본보기이기도 하다.
한반도의 3·5배나 되는 넓은 땅(78만평방㎞), 자급자족되는 농산물, 석탄과 철광석등 풍부한 부존자원, 지중해·에게해·혹해를 끼고있는 어업및 해운의 요충, 16개 민족이 지나가면서 남겨놓은 찬란한 문화유산, 전 유럽언어와 아랍어 아시아어에 이르기까지 외국어를 구사하는 능력이 뛰어난 국민등 매우 훌륭한 여건을 갖추었으면서도 터키는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도로·전기·상-하수도· 전화등 사회 기본시설에 대한 투자가 미미해 앙카라나 이스탐불같은 대도시에서도 직접 다이얼 방식 전화가 부족해 30분씩 기다려야 통화가 가능한 실정.
산업구조 또한 과거 20여년간의 지속적인 개발정책에도 불구하고 제조업분야가 23·7%에 지나지않는 반면 농림 어업은 18·4%, 서비스산업 48%로 은행등 국영기업을 중심으로 한 서비스산업 야가 이상비대현상을 빚고있다. 정부는 이같은 불균형을 깨고 개인중심의 기업을 활성화 시키기 위해 국유산업의 민영화를 과감히 추진중에 있다.

<외채 4백억불예상>
작년부터 실시한 수입자유화(86%)로 가뜩이나 부족한 외환사정을 더욱 악화시키는 일면도 없지는 않지만「외잘」내각은 현재 2백50억달러의 외채를 4백억달러 수준까지는 끌어 올려 국내투자를 촉진할 계획으로 있다.
터키정부가 이같은 과감한 경제계획을 추진하기로 한 배경에는 한국이 교과서 역할을 했다는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82년말 대통령 취임후 첫 외국방문에서 한국을 찾은「에브렌」대통령이 당시 한국의 경제발전상을 보고 그 자신이 참전했던 6·25때와 너무나 달라진 것에 충격을 받아 귀국후 기회있을 때마다 터키는 한국을 본받아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다는 것이다.
「외잘」수상의 최근 방한이 흔한 제3세계 국가원수의 의례적인 방문이 아니라 70명의 대규모 경제인단을 이끌고 왔다는 점은 이번 기회에 양국간의 보다 긴밀한 경제교류관계를 이루어 한국의 선진수준기술과 터키의 유리한 시장여건을 뭉쳐 터키경제를 일으켜 세우려는 뜻이 담겨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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