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 판도에 "미묘한 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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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신민당은 최근 일종의 위기 의식 속에 김대중씨의 불출마 선언, 8일 마침내 표면화 된 정풍파의 쇄신 요구 등으로 당진로와 개헌 전략을 놓고 내면적인 암중모색을 거듭하고있다.
이 두 가지 사건은 단순한 당내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의 정국 전개에 직·간접적인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이며, 신민당의 판도에도 미묘한 변화의 기미를 일으키고있다.

<이 총재도 불쾌감 표시>
변죽만 울려왔던 이른바 당풍 쇄신파가 8일 공식성명을 발표하며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당내 민주주의의 확립과 계보 중심의 정치를 타파하자는 내용을 골간으로 한 성명을 통해 △당직 인선의 공정성 회복 △보수 정당으로서의 이념 정립 △이민우 총재 중심으로의 당체제 개편 등을 「구국·당의 차원」에서 촉구했다.
나아가 이들은 유성환 의원의 구속 사건, 교착 상태에 빠진 개헌 정국등이 모두 지금까지 실질적으로 당을 주도해온 양 김씨의 지도력 한계에서 빚어진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당 기본전략의 수정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결국 양 김씨의 욕심이 이나라 민주화의 암초라는 것이며 「무욕논」을 주장한 김수환 추기경의 로마 발언과도 홉사한 점이 있어 설득력이 전혀 없는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잇단 「한파」로 가뜩이나 당이 어려운 처지에 빠져 있는 이런 시점에 하필 이런 요구를 들고 나왔느냐에 대해 당 지도부는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으면서 무슨 흑막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서슴없이 표현하고 있다. 표면상 이들의 등장을 못 마땅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이 총재마저 『나를 진정으로 위한다는 길이 이것뿐이냐』면서 헌특 중단 이후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 이들에 대해 몇 차례 호통을 쳤다는 것이다.
이같은 당내 분위기 탓인지 정풍파는 당초 6명이 서명했으나 이중 송원영 의원이 빠졌고 문안도 수정, 양 김씨의 정치 일선 퇴진 요구 대신 「양 김씨는 명실공히 당 고문역에 충실하라」는 선으로 후퇴했으며 직선제 관철이라는 당논에 대해서도 적극적인지지 자세를 천명하는 등 외부눈길을 의식한 듯한 눈치다.
그러나 비주류인 이철승계마저 『그 취지는 찬동하지만 시국에 대한 뚜렷한 대안 없이 당내문제만을 떠드는 것은 명분 없는 일』이라고 적극적 제휴에는 신중한 입장이다.
정품파가 내걸고 있는 명분은 그럴듯하지만 이 미묘한 시기에 궁극적으로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그 동기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그 파급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주류측의 분석이다.
이렇게 볼 때 정풍파의 선언은 신민당 내에도 양 김씨와는 뜻이 다른 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진 것 이상의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그리고 주류측은 정풍파의 구성 인원을 볼 때 응집력 있는 집단이라고는 생각지 않고 있으며 당직 안배등의 불만요인을 제거하고 나면 어렵지 않게 약화 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늦어도 내년 봄까지 마무리 되어야 하는 개헌에 앞서 뚜렷한 돌파구 없이 정국 긴장이 계속되면 동조자가 늘어나고 움직임도 더 활발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정국 추이에 따라 여측이 개헌선 확보 작업에 들어갈 때 야당 당론이 통일될 수 있겠느냐는 관점에서 이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이들도 있다.

<유 의원 구속 때 표면화>
정풍파 움직임이 본격화된 것은 유성환 의원 구속 때부터이지만 그동안 잠재해온 당내 불만과 소외감 등이 유 의원 구속을 계기로 표면화했다.
당풍 쇄신 발기인 6명 중에는 송원영 전당 대회 의장·이완희 정책 의장 등 핵심 당직자도 포함돼 있지만 이들 역시 두 김씨 주도의 당 운영에는 거의 소외된 것이 사실이었다.
이러한 당내 불만은 마침 거세게 불어 닥치는 외풍과 함께 복합 작용돼 자생이든 외생이든 이런 움직임이 싹틀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당내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다.
당풍 쇄신파가 쇄신을 들고 나오자 비주류는 물론 주류인 동교·상도 양 진영의 비핵심권 인사들까지 처음에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심각한 양상을 보이기도 했었다.
이 때문에 이들 정풍 주도자들은 『동조자가 전체 의원의 절반에 이른다』고 장담하며 서명 작업도 계획했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김대중씨의 대통령 후보 불출마선언 등으로 인해 당초의 계획보다 동조자가 줄어들자 이들은 서명작업을 중단하고 주도자 6명만으로 발표를 했지만 그나마 1명이 빠진 것.
그래도 현재 당내에는 이들 5명과 비주류 등을 포함, 최소한 16명은 이들과 행동을 같이 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정국 변화에 따라 심정적 동조자는 늘어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칙생」논리에 기대>
동교동계는 최근 김대중씨의 불출마 선언 이후 국내외의 여론이 결코 불리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리고 내심 만족스러워하는 눈치다.
물론 김씨에 대한 여권의 사시가 여전하고 그에 대한 외풍도 잠잠해질 기미가 안보이는 등 고민이 없지 않지만 「사칙생」의 논리가 적절하게 효과를 거두고있다는 판단이다.
그리고 김씨가 앞으로 좀더 자유롭고 안전한 입장에서 개헌정국에 임할 수 있게됐으며 따라서 김씨의 입장이 강화될 것이라는 것이 계보내의 드러내놓지 않는 분석이다.
김영삼씨가 불출마 선언을 않는다면 김대중씨의 도덕적 기반이 상대적 우위에 서며 앞으로의 정국운영에 대한 영향력도 커질 가능성이 많다고 계산하는 듯 하다.

<당 흔들리게 할 수 없다>
김영삼씨의 외유 중 나온 김대중씨의 불출마 선언으로 상도동계는 당황하는 분위기 속에 『3자 회동에서 모든 문제가 논의되던 관례가 깨졌다』고 다소 서운한 표정.
김영삼씨계가 고심하는 것은 김고문 역시 포기 선언을 해야하는냐 하는 점이었으나 이제는 포기 선언을 않는다는 쪽으로 기울어진 느낌이다. 최형우 부총재 등이 김씨의 선언 직후 서둘러 당내외의 의견을 수집해 봤으나 의견이 반반으로 엇갈렸고 특히 반대 의견 중에는 이 어려운 시점에 대안도 없이 당이 흔들리도록 할 수는 없다는 소리가 강했다는 것.
결국 상도동계는 거취 문제는 보스의 정치적 결단에 맡길 수 밖에 없다고 보고 김 고문이 귀국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는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는 입장을 정했다. 지난 6일 아침 P호텔에서 급히 모였던 자파의원 조찬 모임에서는 김대중씨의 불출마 선언을 일단 「용단」으로 결론짓는 한편 그 외의 논평은 가급적 삼가기로 하고 김 고문의 거취에 대해서도 언급을 회피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는 후문. <이재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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