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은행이 멤버십 유치 열올리는 숨은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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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경제부 기자

“추천인 사번 OOOOO, 꼭 입력해주세요.”

은행에 다니는 지인에게서 이런 카카오톡을 받는 일이 종종 있다. 통합멤버십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 달라는 부탁이다. 직원 1인당 가입 유치 할당량이 50건, 100건씩 된다고 하니, 생각만으로 벅차다. 다른 한편으로는 고객 유치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얼마 전 한 전직 금융권 고위 임원을 만났을 때 통합멤버십을 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변했다. “자기네 그룹 상품을 많이 이용하는 고객에게 혜택을 줘서 고객 충성도를 높이기 위한 게 아닐까요.” 그러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목적이라면 멤버십과 상관없이 모든 고객들에게 실적에 따라 혜택을 주면 그만이지 않나요. 왜 굳이 멤버십을 만들어서 그렇게 경쟁을 하지요.”

고개가 끄덕여졌다. 기존 고객에게 파격적인 금융 혜택을 제공한다면 고객의 충성도는 자연히 높아질 것이다. 장기 가입자엔 요금을 깎아주는 이동통신사처럼 말이다. 위비꿀머니나 하나머니가 아무리 쉽게 현금화할 수 있는 포인트라고 한들 대출금리 인하 같은 혜택에 비할까. “일단 깔고 나중에 지우면 된다”는 부탁을 받고 설치한 앱을 제대로 이용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은행이 통합멤버십을 왜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어준 건 한 은행 직원의 간단명료한 해설이었다. “진짜 목적은 개인정보를 계열사 마케팅에 활용한다는 동의를 받기 위한 겁니다.” 은행이 고객으로부터 개인정보 활용 동의를 받아내기란 쉽지 않다. 영업점에서 고객에게 서명해달라고 동의서를 내밀면 대부분은 거절한다. 하지만 앱을 깔아달라고 하면 가입 과정에서 자연스레 동의한다고 체크하게 된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정작 그렇게 수집한 정보를 어떻게 마케팅에 활용할지는 은행들도 아직 방법을 못 찾고 있죠.”

최근 국감에서 나온 자료에 따르면 3개 은행(우리·신한·하나)이 멤버십 가입 유치에 대한 보상으로 직원에게 제공한 포인트만 132억원 어치라고 한다. 그렇게 각 은행은 단기간에 124만~645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했다. 그런데 이런 자원을 투입해서 과연 어떤 성과를 올렸는지는 불투명하다.

한 은행원은 직원들 사이에서 “구글도 이러나?”라는 말이 유행이라고 전했다. 은행 임원들이 하도 ‘구글처럼’이란 말을 입에 달고 있어서 이를 비트는 말이다. 아마도 경영진은 핀테크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은행이 변해야 한다는 뜻에서 구글을 언급했을 것이다. 그래서 궁금하다. 구글도 이렇게 멤버십 가입을 하나.

한애란 경제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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