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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참사를 ‘남의 일’ 취급하는 버스 업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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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은경 기자 중앙일보 기자
송봉근 기자 중앙일보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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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경
내셔널부 기자

10명이 숨진 지난 13일의 경부고속도로 관광버스 화재 참사 이후 버스 업체와 운전기사들의 안전의식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궁금증을 갖고 기자는 사고 이틀 뒤인 지난 15일 대구∼울산을 오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날 오후 3시50분 대구동부정류장에서 울산시외버스터미널행 시외버스에 올랐다. 차내 좌우를 둘러보니 운전석 바로 뒤와 그 반대편에 비상망치가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맨 뒤로 가자 짐칸에 가려져 앞쪽에서는 보이지 않던 비상망치 두 개가 보였다. 소화기는 운전석과 맨 뒷좌석 뒤에 하나씩 있었다. 하지만 운전석 구석에 있는 소화기는 운전기사만 볼 수 있어 버스 앞좌석에 탄 승객들에게는 무용지물 같았다.

버스가 출발했지만 “안전벨트를 매라”는 가장 기본적인 안내 방송이 없었다. 이 업체 본사 관계자는 “분기에 한 번 안전벨트 안내 교육을 한다”고 주장했지만 현장은 딴판이었다. 소화기나 비상망치 위치를 알려주는 안내 방송도 하지 않았는데 이에 대해 업체 관계자는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가 별도 지시를 하지 않아 그동안 소화기와 비상망치 안내를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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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탄 관광버스에서 지난 14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직원들이 감식작업을 하고 있다. [울산=송봉근 기자]

이 시외버스는 불과 이틀 전 화재 참사가 난 경부고속도로 부산 방면 영천~언양 구간에서 시속 105㎞로 달렸다. 요리조리 차선을 바꾸며 곡예운전을 했다. 속도 측정 애플리케이션을 작동해봤다. 최고속도는 시속 108.9㎞였고 평균속도도 88㎞였다. 공사 중 제한속도(시속 80㎞)를 비웃듯 질주했다.

앞서 이날 오후 1시 울산고속버스터미널에서 대구 한진고속버스터미널로 가는 K고속버스를 탔더니 그나마 안내 방송은 했다. 하지만 맨 뒷좌석 뒤에 있는 소화기를 꺼내려 했지만 비상 상황에 누구나 쉽게 분리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설명서가 없었다.

실제로 이번 화재 참사 당시에도 소화기가 문제였다. 운전기사 이모(48)씨는 경찰에서 “소화기를 사용하려 했지만 핀이 안 빠져 소화기로 창문을 깼다”고 진술했다. 낡은 소화기를 비치했을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울산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난 또 다른 버스 운전기사는 “구형 가압식 소화기는 3개월이 지나면 소화분말이 굳어 화재가 발생하면 무용지물이다. 그런데 이번 버스 화재 이후에도 회사 측이 안내 방송과 관련해 별다른 지시는 없었다”고 말했다. 울산 중부소방서는 “구형 가압식 소화기는 수시로 흔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버스가 안전 사각지대로 떠오르면서 시민들은 불안하다. 울산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시민 박세원(19)씨는 “이번 버스 화재를 계기로 앞으로 버스에 탈 때는 비상망치 위치부터 확인해야겠다”고 말했다.

글=최은경 내셔널부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