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00으로 배웠네-시즌2] 질투의 화신, 뭉크처럼 절규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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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수목드라마 '질투의 화신'

요즘 SBS 수목 드라마 ‘질투의 화신’이 화제다. 이 드라마는 질투라곤 몰랐던 마초 기자 이화신(조정석 분)과 재벌남 고정원(고경표 분)이 생계형 기상캐스터 표나리(공효진 분)를 만나 질투로 스타일 망가져 가며 애정을 구걸하는 양다리 로맨스다.

두 남자 주인공이(특히 재벌남이) 한 여자를 좋아하는 설정이야 진부하기 이를 데 없는데, 기존 드라마와 다른 것은 두 남자의 질투를 적나라하게 표현했다는 점이다. 이 드라마에선 남주가 다른 드라마처럼 가오 잡고 자신의 사랑을 그럴싸하게 포장하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조정석은 코미디인지 정극인지 헷갈리게 하는 맛깔 나는 연기로 남자의 질투심을 더없이 잘 표현한다. 두 남자가 싸울 때마다 흘러나오는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도 드라마의 감칠맛을 더한다. 어찌 보면 이 드라마는 ‘질투’가 진정한 주인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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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Jealousy), 1895년

드라마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그림이 있는데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ㆍ1863~1944)의 ‘질투’다. 남녀가 행복하게 어울리는 모습을 보고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맨 앞의 남자가 꼭 이화신 같지 않은가. 아마도 이 그림의 배경음악도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일 것만 같다.

드라마니 남의 일이라고 깔깔거리고 마음껏 웃지만, 사실 살면서 질투 한번 안 해 본 사람은 없을 거다. 한번 불타오른 질투의 감정은 아무리 성인군자라도 쉽사리 다스리기 어렵다. 내 인격의 바닥이 드러나는 것 같아 괴로우면서도 상대를 향한 집착과 소유욕을 거둘 수 없는 감정의 상태. 나도 '질투'하면 떠오르는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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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Anxiety), 1894년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몇 년 지난 뒤다. SNS를 통해 대학 동기를 다시 만나게 됐다. 대학생 땐 꽤 친했던 사이였는데 서로 취업 준비를 하고 직장 생활에 적응하느라 연락이 중단된 지 오래였다. 어느날 그 친구가 내 SNS에 댓글을 남겼고, 오랜만의 인연이 반가웠던 나는 곧장 “밥 한 번 먹자”고 약속을 잡았다.

약 10년 만에 만난 그는 대학생 때 그대로였다. 그와 함께 있으면 예전에 풋풋하고 상큼했던 나의 대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잔뜩 찌들었던 현실에 새로운 환풍기가 생긴 기분이랄까. 그와 대학생 시절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노라면 밤이 깊어지는 줄 몰랐다. 그렇게 우린 서로 가까워졌다. 그를 향한 나의 마음도 점점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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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춤(The Dance of Life), 1899~1900년

하지만 얼마지 않아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또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의 SNS를 뒤적이던 중, 그의 모든 게시물에 댓글을 다는 묘령의 여자를 발견한 것이다. 그 여잔 별 시답잖은 음식 사진이나 풍경 사진에도 “와 맛있겠네요~ 같이 먹으러가요.” “직접 보면 더 멋질 거 같아요. 담에 저도 데려가 주세요.” 등 댓글을 달아댔다.

곧장 그 여자의 타임라인으로 들어가 봤다. 나보다 한참이나 나이가 어려보이는, 귀여운 인상을 한, 외모로 보면 충분히 매력적인 여자였다. 순간 가슴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 여자의 모든 게시물을 꼼꼼히 확인해봤다. 띄엄띄엄 대학 동기가 달아놓은 댓글이 보였다. 둘은 예전부터 아는 사이로 이미 꽤 친한 사이 같아 보였다.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아직 동기와 나의 사이에 뭐가 있는 것도 아니라 대놓고 “그 여자 누구냐”고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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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Ashes), 1894년

이후 나의 일과는 틈이 나는 대로 둘의 타임라인을 번갈아 들어가는 것이었다. 둘의 관계가 어떤 건지 정확히 파악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며칠 지나지 않아 동기의 타임라인에 뮤지컬을 보러 갔다 왔다는 내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다를까, 잠시 후에 그 여자의 댓글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빠 공연 짱짱. 완전 재밌었지~.”

해피엔딩이나 극적인 반전을 기대했다면 미안하다. 얼마지 않아 그 여자아이의 타임라인에는 장미꽃 한 다발의 사진이 올라왔다. 역시나 동기의 선물이었다. 여기서 나는 마음을 접어야했다.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마음을 ‘스킵’ 당한 듯한 찜찜함에 한동안 둘의 SNS를 떠나지 못했다. 나의 찌질하고 시시하며 보잘것없는 사랑 이야긴 여기까지다. 이 글을 쓰며 다시 둘의 SNS에 들어가 봤는데, 아직도 잘 만나고 있는 것 같다. 빨리 결혼이나 해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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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규(The Scream), 1910년

‘질투’하면 역시 이 그림을 빼놓을 수 없다. 떠나가는 두 사람을 배경으로 한 처절한 질투의 그림자. 뭉크의 ‘절규’다. 뭉크는 그림을 통해 인간 내면의 고독과 불안, 공포의 감정을 깊게 파고들었다. 실제 질투를 경험해보지 않고서야 이렇게 절절하게 표현해낼 수 있었을 리가 없다. 뭉크는 이룰 수 없었던 사랑을 향한 질투심을 그림으로 극복해내려 한 게 아닐까. 한때 질투의 화신이었지만 승천하지 못하고 한 줌의 재로 사그라져야만 했던 수많은 사람에게 이 글을 바친다.

질투의화신 기자 jealous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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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들이 다양한 문화콘텐트에 연애 경험담을 엮어 연재하는 잡글입니다. 잡글이라 함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기자 이름과 e메일 주소는 글 내용에 맞춰 허구로 만든 것이며 익명으로 연재합니다. 연애 좀비가 사랑꾼이 되는 그날까지 매주 금요일 업데이트합니다. 많은 의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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