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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당만은 안 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사회주의의 종주국들마저도 마르크스주의나 레닌주의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린 지 오래다.
소련은 물론이고 중공도 예외가 아니다.
바로 그 무덤 속에나 있어야 할 ML당이 우리나라 대학가의 지하에서 음습하게 움트고 있었다는 사실은 당혹스럽기만 하다.
이 비밀조직은 마르크시즘(M)파 레닌이즘(L) 을 결합한 이론을 원리로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산주의 단체임을 알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산업혁명이 막 끝났거나(영국), 겪고 있던(불·독) 19세기의 유럽사회를 배경으로 엮어진 사회과학이자 혁명이론이다.
산업화의 앤티테제로 등장한 마르크시즘은 곧 반자본주의 이론이며 서구형 자본주의 사회의 타도를 겨냥하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이 너무나 애매 모호하고 불완전하여 그후의 실제적인 사회발전에 적용하기가 힘들었다. 그 때문에「마르크스」자신도 말기에 와서는 폭력혁명 론 등 일부주장을 철회 내지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의 제자들도「마르크스」사상을 해석하고 이해하는데 이견이 많았다.
「마르크스」사 후 그의 사상이 여러 갈래로 나뉘는 분기현상이 일어나 대 논쟁이 일어난 것은 마르크시즘의 모호성과 결함에서 오는 당연한 결과였다.
레닌이즘도 많은 마르크스주의분파중의 하나다.「레닌」은「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붕괴론, 계급투쟁 론 등 비판적 측면을 받아들여 후진의 봉건적 농업사회인 제정러시아의 부패, 타락한 전제정치를 타도하는데 적용했다.
「레닌」은 정치혁명에는 성공했으나 그 후의 경제건설은 마르크스·레닌주의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생존에 이미 자기노선을 수정한 것이 소위「신 경제정책」 (NEP)이다.
「레닌」사후 크렘린의 지도자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부단히 수정하고 자본주의 요소를 도입하면서 그나마 오늘의 수준에 도달했으나 아직 구미 자본주의의 사회·경제발전 수준에는 훨씬 미달하고 있다.
지금은 동구에 이어 중공, 그리고 북한까지도 수정주의 노선을 걷기에 이르렀다.
이런 판국에 세계적인 시대조류를 외면하고 우리사회에 마르크스-레닌주의 운동이 조직화되고 있다는 것은 백일몽 같은 얘기다.
더구나 M-L당 소속 원들은 김정일이 작성한 이론서를 교재로 채택하고 북한의 경험을 학습재료로 삼았다고 하니 더욱 한심한 일이다.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와의 발전경쟁에서 패배했듯이 북한은 우리와의 경쟁에서 패배했다. 더구나 그들은 폭력으로 반도 전체를 공산화하려는 반민족적 집단이다.
그런 측의 이론과 경험을 채택한다는 것은 발전을 위한 합리성의 관점에서나 민족적 도덕성의 측면에서 용납되기 어렵다.
물론 사회발전 과정에서 과도기에 이르면 사상적 조류가 다양화하기 마련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농업형 보통사회에서 공업형 현대사회로 전환하는 과도 사회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연구하고 선택해야 할 이념은 부도덕한 패자들의 논리가 아니라 사회발전의 부작용들을 성공적으로 극복하여 계속 고도성장을 지속해 나가고 있는 승자들의 논리다.
ML당만은 무슨 명분을 대도 우리 사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19세기의 유럽사회도, 경쟁에 패배한 공산사회도 아닌, 산업화 과정에 있는 20세기 후반의 우리사회의 현실과 경험을 토대로 하여 창출한 우리 자신의 논리이어야 한다.
우리 학생들은 이 점을 명심하여 우리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보장할 수 있는 길을 탐구해 나가야 한다. 그것은 결코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진보적 경제·사회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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