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궁일기」는 인목대비가 쓴 것"|홍기원씨, 진본 공개와 함께 주석서 서 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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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궁중문학의 효시로 보이는『서궁일기』 가 14일 공개됐다. 『서궁일기』 는 조선조 선조의 계비 인목대비 (1584∼1632) 가 1618년 광해군에 의해 서궁(지금의 덕수궁)으로 유폐되면서 자신과 딸 정명 공주의 모녀 2대가 남긴 기록문학이다.
유일 본인 『서궁일기』 는 그 동안 학계에선 그 존재를 알고 있었으나 공개되지 않다가 정명 공주의 12대 손인 홍기원씨 (출판업· 서울 시흥동)에 의해 전체가 공개됐다.
홍씨 일가는 3백70년간 이를 가보로 보관해왔다고 한다. 홍씨는 『서궁일기』 의 주석 본도 함께 펴냈다.
『서궁일기』는 천·지·인 3권으로 돼있는데 천·지 권(상책)은 인목대비가, 인권은 정명 공주가 저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궁일기』는 당시 숨가쁘게 전개되던 궁중 생활을 소상히 기록했으며, 특히 선조에서 광해군 대에 이르는 궁중 비화와 당쟁의 와중에서 희생되는 인척들에 대한 연민으로 가슴 죄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소장자 홍씨는 3대 궁중문학으로 유명한 『계축일기』는『서궁일기』를 모본으로 필사한 것이며, 『한중록』 『인현왕후부』 또한 『서궁일기』와 인맥 상 밀접한 맥락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계축일기』는 지금까지 무명의 궁녀가 지은 것으로 알려졌었다. 『서궁일기』 는 천·지·인권 모두 주옥같은 궁필로 돼있다.
천·지권(상책)은 24×34cm 크기에 각 90면·81면이고 인권(하책)은 24×33교에 89면. 하책이 상책보다 약간 작다.
천권은 해서와 행서로 필사돼 있고 해서부분은 14면에 총 92행. 홍씨는 이 부분이『서궁일기』 의 골격을 이루며 인목대비의 친필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천 권은 한지를 재 사용한 것으로, 당시 유폐생활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서궁일기』의 전체적인 내용은 인목대비가 저술한 천· 지 권에 기록돼 있고, 그의 딸 정명 공주가 지은 인권은 앞의 내용을 보완한 보조자료다.
홍씨는『서궁일기』 의▲ 인칭 기술방법 ▲필적 비교 ▲친필부분 내용분석 ▲영창대군 관계기사 ▲기술내용 등을 들어 이것이 인목대비의 저작물임을 주장했다.
홍씨는『서궁일기』가 천·지권 (상책)은 1618∼21년(광해군10∼13년)사이, 인권은 1667년(현종 8년) 에 각각 저술됐을 것으로 봤다.
그는『서궁일기』천권이 인목대비의 친필인 일부를 제외하면 궁녀 3∼4인의 대필이며 지 권은 대필, 하 책은 정명 공주의 친필 여부가 확실치 않다고 말했다.
『서궁일기』 의 인권 말미엔『이 책이 우리 집 무한한 지보라 셰셰의 젼하여 일치 말며 타문의 빌니지 말지어다』란 정명 공주 9대 손의 훈기가 적혀있기도 하다.
홍씨는『원본 공개가 늦어진데 대해 책임을 느낀다.』 면서 고된 작업 끝에 상·하 책 원문 전체와 총 3백7개항의 주석·사진판 원본·관계자료 등을 묶어 주석 본 『서궁일기』를 함께 퍼냈다.
이 자료를 검토한 최내옥 교수(한양대)는 『진본임이 확실하다.』 고 말했고, 임동권 교수 (중앙대) 는 『전문이 주석까지 돼 출간되어 반갑다.』면서 『「서궁일기」 는 국문학사에 큰 의의를 지니는 귀중한 자료.』라고 말했다.
『서궁일기』 의 공개로 학계는 앞으로 『서궁일기』 의 작자와 인목대비 친필 여부,『계축일기』와의 관계 등으로 논쟁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이근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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