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회복 위해 구도자적 노력|노벨 평화상·수상한「위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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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그는 오늘날의 세계를 특징 짓는 폭력과 억압과 인종주의의 한 세대에서 가장 중요한 정신적 지도자이며 안내자』라고 노벨 평화상위원회가「엘리·위젤」에 대한 수상 이유를 밝혔다.
노벨상위원회는 또『세상의 악과 싸우는 군대가 결국은 승리할 것』이라는 얻기 어려운 믿음을 끝내 획득한 인물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위젤」에 대한 이 같은 찬사는 그가 독일 나치하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겪었던 고난과, 그리고 이 악의 세계를 고발하고 인간성의 회복을 위해 애쓴 그의 구도자적인 노력을 반영하고 있다.
「위젤」은 1928년 루마니아의 시게트에서 가게를 하는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다.
그는 l6세 때인 1944년 나치가 시게트의 15만 유대인을 추방할 때 가족과 함께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져 그 곳에서 어머니와 누나를 잃었다.
다시 부켄발트 수용소로 옮겨서는 아버지마저 잃었다.
1년 동안 나치수용소에서 지옥과 간은 소년시절을 보냈던 그는 45년 나치패전과 더불어 풀려나 프랑스에 정착, 소르본 대에서 문학·철학·심리학을 공부했다.
파리에서 그는『10년 동안은 입을 열지 않겠다』고 결심, 홀러코스트(대학살) 의 기억에서 벗어나려고 했으나 프랑스 작가「모리아크」를 만난 뒤 그의 충고에 따라 그가 겪었던 모든 악몽을 증언하기로 마음을 돌렸다.
그후 작가·기자·교수로서 다방면에 걸쳐 대학살의 현장을 세상에 고발했다.
『그날 밤』등을 비롯한 그의 소설 20권 등 25권의 저서는 모두가 억압받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48년 프랑스의 라르시 지의 기자로 이스라엘 독립을 취재하고, 52년 이스라엘의 예디오트 아로노트 지의 특파원으로 유엔을 취재하기도한 「위젤」은 56년 미국으로 이주, 지금까지 뉴욕에서 살며 현재는 미 학살추모위원회의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미 보스턴대의 교수를 경하고 있는 그는 지금까지 각종 문학상과 인권 상을 수상했으며 특히 68년에는 그의 소설『예루살렘의 걸인』으로 프랑스의 메디치 문학상을, 85년에는 미국의회의 최고 명예훈장「골드 메달」을 받기도 했다.
노벨 평화상위원회는 그의 이 같은 유대인의 고통에서 시작된 활동은 오늘날 전세계의 억압받는 민족과 고통받는 인종의 아픔을 모두 수용하고 있다는데서 그의 수상의 참된 의미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진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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