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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등 고려한 정책적 인상|추곡수매 값 6% 올린 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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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와 당 사이를 오가며 논란을 벌였던 추곡수매가가 6%인상으로 결말이 났다.
숫자적으로 본다면 올해 추곡 가 6%인상은 올 여름 보리수매가인상률 7·5%에는 이르지 못하지만 지난해 5%인상보다는 높은 것이다. 지난 2∼3년 동안 물가는 2∼3%(소비자물가) 상승에 머문 반면 수매가는 84년 3%에서 85년 5%, 올해 6%로 해마다 높아져 이번 수매가인상을 두고는 정부로서도『할만큼 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사실 농촌문제는 선거 때가 가까워 오면 정부의 관심이 고조되고 여당도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이 우리사회의 현실이었다.
당초 기획원을 중심으로 정부측이 물가안정을 앞세워 3·5%인상을 주장했으나 이번 수매가가 더 높은 선에서 확정된 점도 바로 이런 배경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6%의 인상률은 낮은 수준이 아니라고 보아도 괜찮을 것 같다.
정부로서도 다가올 내년 선거에 대비한다는 인식과, 농어촌 종합대책이라 해서 모처럼 농촌에 활기를 불어넣으려는 마당에 추곡수매가에 인색하게 되면 농촌분위기가 흐려지지 않을까 하고 염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배려에도 불구하고 영농비 상승과 부채증가에 시달리는 농민들 입장에선 이번 수매가 인상을 흡족히 받아들일지는 역시 미지수라 할 수밖에 없다.
도-농 격차라는 한마디 말로 집약되지만 농촌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쓸 곳은 많고 수입은 적은 농촌경제의 수지에 관한 것이다.
농산물의 가격지지정책이 제 기능을 못함으로써 한자리 물가에도 불구하고 농촌물가를 대변하는 농가구입 가격지수는 해마다 올라 농촌의 어려움을 더해 주고 있다. 80년을 기준으로 할 때 농산물 판매가격(8월말현재)은 41 .4% 오른 데 비해 농가구입가격은 48·5%가 뛰어올랐다.
예전만 해도 쌀이 농가수입의 대종을 이뤘으나 이제는 쌀만으로 가계를 꾸려 갈 수 없다는 점도 농촌사정을 어렵게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추곡수매가를 아무리 올려 보았자 다른 한족에서 소 값이 떨어져서는 농촌사정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GNP 중 농수산부문에서 쌀 생산액은 4조6천억 원에 달했으나 양념 류 등 채소와 축산물 생산액은 모두5조원으로 쌀 생산을 웃돌고 있다.
농산물의 전반적인 가격지지가 바탕이 안되면 쌀값인상만으로 농가수익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더군다나 양념 류는 해마다 풍-흉이 엇갈려 가격의 기복이 여전히 심하고 특히 소 값은 84년 소 파동 이후 아직도 뚜렷한 해결의 실마리를 못 찾고 있는 게 요즈음의 농촌현실이다.
정부는 이번 수매가결정에서 추곡 가를 6%올리는 대신 수매 량은 지난해 목표 8백만 섬(실제 수매 량 7백56만 섬)에서 7백만 섬으로 크게 줄였다. 이에 따라 농촌에 물리는 돈은 수매가인상에도 불구하고 지난해와 비슷한 9천5백억 원 정도가 될 전망이다.
농수산부는 이에 대해 늘어나는 양특 적자 축소도 문제이나 소비자들의 일반 미 선호로 신품종(통일 계) 생산이 대폭 줄어 수매 량도 함께 줄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경지면적 0·5ha미만의 영세농가가 아직 전체농가의 30%가까운 실정에서 수매 량의 급격한 축소는 추수기에 쌀의 홍수출하로 이어져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영세농민을 더 압박할 우려가 크다. 이중 곡가 제의 중요한 목적인 추수기의 쌀값 조절이 제대로 못될 때 타격은 영세농민들에게 몰릴 수밖에 없다.
또 하나 문제는 추곡수매가 결정과정에서 이제는 우리도 농민들의 의사를 수렴할 수 있는 제도적 강치를 마련할 때가 왔다는 점이다.
이제까지 추곡가 결정과정을 보면 경제기획원과 농수산부가 정부의 방침을 정하고 수 차례 당정협의를 거쳐 이것이 최종재가로 결정되는 절차를 밟아 왔다. 농수산부가 농민들의 입장을 대변한다지만「정부 속에 농민 편」이라는 한계는 있게 마련이다.
이웃 일본만 하더라도 정부측이 연초에 수급계획을 세워 쌀 수매 량을 정한 뒤 수매가는 농민·소비자 등 이해당사자와 학계로 구성된 미가심의 회가 적정수준을 결정, 이를 정부에 건의하면 정부가 판단을 더해 결정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
스스로 의견을 내고 그런 속에서 이뤄지는 합의란 결과에 대한 불만 없는 수락으로도 이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우리라고 추곡수매가 결정에 예외가 되지는 않으리라 보인다. <장성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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