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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당의 퇴장 전술|이재학<정치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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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3면

『말이면 다해』『여기는 국회야』『폭력혁명 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이냐』『모두 퇴장해』-. 이한동 총무를 비롯한 민정당의 총무 단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책상을 치며 고함을 지르자 민정당 의원들은 대부분 미련 없이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어떤 이들은 정말 분개한 듯 뭐라 소리치면서, 어떤 의원들은 무표정하게 그들의 뒤를 이었다. 그래도 30여명의 의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자 부 총무 몇이 뒤늦게 들어와 의원들의 퇴장을 종용, 20여명 안팎의 의원들만 남긴 채 모두 회의장을 나가 버렸다.
여당이 야당의원의 발언을 문제삼아 본회의장을 집단 퇴장한 의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13일 하오 국회본회의장 모습이다.
『집권당에 대한 최고의 모독을 듣고 참을 수 없었던 의원들이 이심전심 자연발생적으로 행한 일』이라는 것이 이 총무의 공식설명.
그러나 이 같은 여당의 집단행동이 실제로는 다음에 있을 신민당 유성환 의원의 발언을 사전봉쇄하기 위한 것이었다느니, 어느 때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신민당의 발언수위를 대정부질문 초입에서부터 견제하기 위한「선제용 작전」이었다느니 하는 분석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다수당이 국회에서 추장전술을 썼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고 얼른 납득이 가지 않는다. 지금까지 국회에서의 퇴장은 야당전용의 원내작전이었고, 그것도 거의 최후수단으로 동원되는 것이었다. 야당의 퇴장은 여당의 다수에 의한 결정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의사표시로서 간주되며, 그런 점에서 소수당의 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수 석을 가진 여당의 퇴장은 무슨 말로 설명되며,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결정권을 가진 쪽의 회의 포기라는 것은 아무리 상대방 발언이 참기 어려운 내용일지라고 작전 또는 전술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주도권을 가진 쪽으로서는 어디까지나「양」을 유지하면서 시정·만회·경고 등의 각종 대응을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13일의 상황이 여당으로서「최후의 수단」을 요구하는 수준이었는지도 의문이다.
다수당·소수당의 차이는 단순히 물리적인 의석수의 차이가 아니며, 책임과 정치 윤리도 다르다는 생각을 새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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