떴다 항공기 펀드, 열린다 개인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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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저금리에 갈 곳 잃은 돈이 비행기에 올라타고 있다. 요즘 뜨고 있는 항공기 펀드 얘기다.

비행기 사려는 항공사에 자금 공급
연 4~5% 안정적인 수익률 기대
재간접펀드 이어 공모펀드 나올 듯
항공사 파산 땐 원금손실 위험도

전 세계적으로 항공기 금융 시장은 덩치를 불리고 있다. 항공기 제조업체 보잉에 따르면, 2020년 글로벌 항공기 금융 시장은 연간 1720억 달러(약 190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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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 금융은 비행기를 사고 싶어하는 항공사에 자금을 공급·투자해 수익을 얻는 것이다. 비행기를 사려는 항공사에 직접 돈을 빌려줄 수도 있고, 비행기를 빌려주는 리스 회사에 지분을 투자하거나 대출해 줄 수도 있다. 국내 저비용 항공사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는 B737-800 기종의 경우에도 신형 항공기의 대당 평균 가격이 9600만 달러(약 1100억원)에 달한다. 자금이 충분하지 않은 항공사, 특히 신생·저비용 항공사라면 운영하는 비행기를 모두 살 여유가 없다. 설사 돈이 있어도 대출을 받거나 빌려 쓰는 게 유리할 수 있다. 회사 운영에 필요한 자금의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고, 대출에 대한 세제 혜택 등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당장은 해외 여행을 나가는 손님이 급증하면서 비행기가 많이 필요할 수 있지만 경기 침체로 해외 여행 수요가 감소할 경우엔 임차 계약을 갱신하지 않는 식으로 고정 비용 지출을 막을 수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 항공기 금융은 요즘과 같은 저금리 시대에 연 4~5% 수익을 안정적으로 낼 수 있어 매력적이다. 2012년 사모 형태로 항공기 펀드를 운용해 온 현대자산운용 관계자는 “설정 이후 연 4~5% 수익을 꾸준하게 내고 있다”고 말했다.

항공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장기 전망도 밝다. 보잉과 에어버스 등에 따르면 2033년까지 항공기 교체 및 추가 도입을 위해 필요한 신규 항공기 수요는 3만8000대에 이를 전망이다. 최진웅 KB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항공기의 경우 보잉과 에어버스의 과점 체제로 공급이 제한적이고 중고 시장이 발달돼 있어 가격변동 리스크가 작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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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장점은 주식이나 채권 등 다른 전통 투자 자산들과는 동떨어진 가격 움직임을 보인다는 점이다. 동부증권에 따르면 항공기 금융 투자 성과를 지수화한 AAII(Ascend Aircraft Investment Index)는 주식(S&P500)이나 원자재(금)·부동산 등과의 상관 관계가 낮았다. 정승기 동부증권 연구원은 “항공기 투자는 자산배분의 도구로서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는데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이미 항공기 펀드가 조성돼있다. 2007년 말 189억원이던 항공기 펀드 규모는 지난해 말엔 1조1365억원까지 덩치가 커졌다. 특히 금리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던 2015년 한 해 동안에만 펀드 수와 설정액은 모두 두 배로 불어났다.

9월부터 사모펀드를 편입한 공모 재간접펀드가 허용되면서 앞으로 개인도 항공기 펀드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내년에는 공모형 항공기 펀드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연내 사모 항공기 펀드 출시를 준비 중인 트러스톤자산운용 관계자는 “사모펀드 경험이 쌓이면 내년에는 각종 제도적인 문제를 해결한 뒤 공모 항공기 펀드를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항공기 펀드 투자에서 가장 조심할 부분은 비행기를 빌려 간 항공사의 파산이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한진해운에 배를 빌려줬던 선박펀드가 큰 손실을 입은 것과 같은 이유다. 실제로 2008~2010년 유리자산운용이 운용한 항공기 펀드의 경우, 비행기를 빌린 태국의 저가 항공사가 파산하면서 원금 손실이 나기도 했다.

전염병이나 테러 등과 같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여행 수요가 줄어들면 수익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 임대 기간이 끝나 중고 시장에 비행기를 내다팔 때 제값을 못 받는다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할 수도 있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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