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념의 북한방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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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국 국가주석 이선념의 북한방문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동북아 신질서에서 평양과 배경이 당면한 딜레마를 잘 나타내고 있다.
이선념의 평양방문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시기선택의 문제다. 그가 평양에 체류한 3∼4일은 서울의 아시안게임이 종반전에 들어 메달판도가 거의 확정되어 중공이 아시아 제1의 대국임을 다시 한번과시한 시점이다.
북한은 불참했으나 중공은 북한의 만류를 뿌리치고 참석, 우리와 함께 축제분위기 속에서 경쟁과 친선을 벌여 1,2위를 차지했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가장 친밀하고 믿음직했던 한반도에서 오늘날중공이 겪고 있는 미묘한 입장을 대변하는 상황이다.
중공은 다변적 국제행사에서의 대한관계는「국제적 레벨」에 따르기로 결정, 정치·경제 등 성격에 관계없이 서로 참가해 왔고 양국간 문제에서도 한국을 국제적인 정치실체로 인정, 필요한 경우에는 언제든지 대등한 상대로 교섭을 벌여 왔다.
그러나 평양·중공 관계는 양측의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순조롭게 진전되지는 못했다.
더구나「고르바초프」의 대아 적극정책이 표면화되면서 소련이 북한에 대한 군사원조· 군사진출을 강화하자 중공의 불만은 커졌다.
이처럼 한국과 소련사이에서 배양된 양국의 관계부조를 안고 이번에. 평양에서 김일성과 이선념이 대좌케 된 것이다.
문제의 근원은 이데올로기적 망령을 청산하고 개방과 실용주의를 지향하기 시작한 중공과 아직도 스탈린주의 적 교조주의에 집착하면서 폐쇄주의를 고수하는 북한의 노선차이에서 오는 모순에 있다.
중공은 지금 미국·소련과의 호전적 대결을 지양하고 평화를 지향하면서 한반도를 포함한 주변지역에서 긴장이 발생하거나 지속되는 것을 배격하고 있다.
또 미-소 양국의 어느 한편에 서 봤던 국제적 편향입장을 청산하고 중립적 등거리를 유지하려 한다.
이 같은 중공의 새로운 자세정립은 한반도 정책에도 반영되어「두 개의 한국」정책의 현실화, 대한개방정책 등을 조심스럽게 확대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은 다시 소련 한쪽에 편향 화하는 경향을 보였고 우 리에 대해서도 대화중단, 아시안게임 불참 등 주변에 대해 고립적이고 도전적인 자세를 지속해 왔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중국·한국·일본이 완전 석권, 다시 한번 동북아 문화권의 우월성을 입증했다.
이것은 다가오는 아시아-태평양세기에서의 동북아의 우월적 가능성을 재확인한 것이다.
북한이 비록 이번 서울의 아시아제전에는 불참했으나 이 같은 동북아의 가능성을 인식하고 평화와 건설을 지향하는 국제조류에 합류하는 자세 수정이 필요하다.
이것은 곧 동북아의 안정뿐만 아니라 배한 자신의 발전에도 필수불가결의 대전제다.
이번 이선념의 평양방문이 그 같은 평양의 노선전환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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