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상황을 무리없이 소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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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아시아 경기대회 문화예술행사의 일환인 국악제가 지난 22일부터 호암아트홀에서 펼쳐지고 있다. 10월5일까지 계속될 이 예술제는 장중한 합악에서부터 질박한 토속민요에 이르기까지 국악 전분야의 음악을 두루 안배해 균형있게 무대에 올리고 있어서 전통음악의 전체 윤곽을 조감해보는데는 더없이 안성마춤의 기회가 아닐수 없다.
지난 26∼27일에 공연된 국립창극단의 『수궁가』는 지금까지 진행된 국악제 일정중에서 가장 무난했던 무대였다고 하겠는데 여기 「무난했다」는 함축성있는 표현은 우선 관중의 참여도에 있어서도 여느날 밤과 같은 소수의 선을 넘어섰을 뿐아니라 공연종목인 수궁가의 창극화작업 또한 비교적 설득력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주지하다시피 판소리 『수궁가』는 이미 그 줄거리나 사설자체가 창극으로서의 생명소인 극적 진실을 두루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남달리 풍부한 우화성과 해학성,그리고 박진감 있고도 적절하게 고조돼가는 극적갈등과 이에 대한 기발하고도 통쾌한 반전등이 바로 그것인데 이번의『수궁가』 공연에서도 이같은 작품공연의 극적상황들이 무리없이 도출되어 한결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을 공유할수 있게 해줬다.
이번 수궁가 공연이, 특히 토끼역인 안숙선의 재치있는 연기와 오정숙의 원숙한 도창등으로 일단 대중적 오락성에서는 손색없는 무대였다손 치더라도 이를 계기로 창극계 모두가 자성하고 분발해야할 점 역시 한두가지가 아니라고 하겠다.
창극이 지향해야할 예술론적인 좌표나 본질적인 속성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이번 공연을 위시한 근자의 무대에서 한결같이 드러나는 부정적인 측면이라면 무엇보다도 출연자들이 작품에 쏟는 혼신의 투혼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몇 안되는 고정된 레퍼터리를 고정된 패턴으로 되풀이 공연하는 과정에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육중한 타성이 박힌 것이다.
창극무대가 전래의 전형적인 오락성을 뛰어넘어 순수예술의 지평으로 발돋움할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관건도 바로 이같은 예술가적 성실성과 진지한 정신성의 부족을 극복하는 일이라고 하겠다. <서울시립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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