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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호의 직격 인터뷰

“또 이런 사태 나면 의원들 끌려만 다니지 않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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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전민규 기자 중앙일보 사진기자

유승민(58·대구 동을·4선) 새누리당 의원이 작심한 듯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과 관련해 “전경련은 발전적으로 해체하는 게 맞다”고 일갈했다. 내년 안에 IMF 외환위기급 대란이 올 수 있다는 경고도 내놨다. 박 대통령이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감싸는 이유는 “레임덕 때문”이라고도 했다.

‘소신 폭발’한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

대구·경북(TK)산 새누리당 중진이면서도 여당을 외면하는 청년·중도층에서 유일하게 인기 많은 그는 “‘보수 개혁’만이 대선에서 살길”이라고 역설한다. 대학가를 돌며 강연 정치를 이어 가는 그를 서울대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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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의원은 “요즘 청년들이 취업이 안 되니 호연지기마저 잃어 간다. 아이디어 넘치는 젊은 인재들의 창업을 도와 성장 엔진을 만드는 ‘혁신 성장’만이 나라의 살길”이라고 강조했다. [사진 전민규 기자]

국감 파행 정국에서 목소리를 낼 것으로 기대했는데 비교적 조용했다.
“긴급한 집안일이 있어 첫 의총에 못 갔다. 그다음 의총에는 참석했는데 이미 강경투쟁 하기로 결정이 돼 있더라. 기회를 보다가 최고중진회의에서 ‘국감은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나와 김무성 의원 외엔 그런 주장을 하는 분이 없어 실망했다. 정세균 국회의장도 너무 완고했고.”
정 의장의 처신은 어떻게 평가하나
“정 의장과는 잘 아는 사이다. 그러나 이렇게 편향적으로 의장직을 수행할 줄은 몰랐다. 당 지도부와 상의 없이 의장에게 전화해 ‘국회의 최고 어른이니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고 했다.”
정 의장이 어떻게 해야 하나.
“모욕감을 느낄 부분도 있겠지만 여야가 다투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 아닌가. 유감 표명이나 사과를 하면 좋겠다. 우리 당도 의장을 형사고발 한 건 자제했으면 한다.”
당이 청와대 눈치만 본다는 지적이 많다.
“나도 걱정이다. 다만 설마 청와대 오더가 있어 그렇게 강하게 나갔겠느냐 싶다.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을 밀어붙인 야당도 과했다. 김 장관에게 제기된 의혹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지 않나. 해임건의안은 잘못이란 생각이다. 또 역대 대통령들은 해임건의안이 통과되면 해임을 했는데 이번엔 거부했다. 야당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국회와 행정부가 한 번씩 주고받은 셈이다. 이걸로 끝내면 되는데 당 지도부가 강경 대응을 한 건 과잉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의총에서 ‘70대 4’로 국감 거부를 고수키로 결정했다. 국감 복귀를 원한 의원 4명 중 유 의원은 없었는데.
“그때는 의총에 안 갔다. 정진석 원내대표가 의총을 마무리하며 거수로 찬반을 물은 듯한데 비밀투표로 했어야 한다. 강경 일변도 분위기에서 손 들라고 하면 결과가 왜곡될 수 있다.”
김영우 국방위원장은 국감을 강행했다.
“북핵에 지진까지 나라가 위기 아닌가. 김 위원장의 행동엔 공감하는 편이다. 다만 나는 바로 지난해 원내대표를 했던 사람이다. 현 원내지도부의 입장도 헤아려줘야 했다.”
강경파에 휘둘리는 당이 집권당 자격이 있나.
“이번 사태는 당 새 지도부의 첫 시험대였다. 그래서 의원들은 지도부에 한번 소신껏 해보라고 위임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다음에 또 이런 비슷한 사태가 일어나면 의원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겠나.”
새누리당은 친박이 70%인 반면 비박계는 구심점이 없어 빈 수레란 지적이 있다.
“친박이 다수인 건 사실이나 그들이 앞으로도 강경하게만 갈 순 없을 것이다. 국회의원은 민심에 민감하다. 친박이란 이유만으로 청와대 오더가 내려왔다고 민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계속 할 순 없다. 특히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말이다. 당을 장악한 주류(친박)가 이번에 첫 시험대를 거쳤는데 이런 일이 또 생기면 민심을 두려워하며 정권 재창출을 걱정하는 의원들이 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당이 변화하는 거다. 나는 그런 노력을 계속해 보수 개혁의 씨앗이 뿌려지게 할 책임이 있다. 우리 당 의원들이 누구 오더만 따르는 분들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하는 친박 의원들이 있나. 있다면 그들과 접촉하고 있나.
“(친박이라고) 왜 걱정을 안 하겠나. 얘기해 보면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다. 친박·비박 가리지 않고 당이 변해야 한다는 분이면 뜻을 합칠 수 있다.”
비박에 구심점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선.
“올겨울이나 내년 여름까지 그렇게 가진 않을 것이다. 당 지도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데 의원들이 끌려만 다니진 않을 거다. 다만 지도부가 당·청 관계나 대선 경선을 무난히 관리하면 그대로 갈 가능성이 있다.”
유 의원이 당을 떠나 제3지대에서 도전할 것이란 얘기가 있다.
“내가 당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왜 자꾸 쫓아내려 하나.(웃음) 지도부가 경선을 공정하게 관리할 것이라 믿는다. 현실적으로도 불공정하게 하기가 쉽지 않다. 당헌·당규가 있지 않나.”
당헌·당규가 있는데도 유 의원을 원내대표에서 끌어내리고, 공천에서 배제했지 않나.
“총선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 나와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젊고 유능한 의원들이 낙천당했다. 그러니 총선에서 180석 얻는다고 큰소리쳤다가 122석에 그친 것 아닌가. 대선 경선에서도 이런 일이 반복되면 패배를 자초할 것이다.”
국민의당에서도 유 의원과 함께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하는데.
“국민의당이 그런 얘기를 좀 쉽게 하더라. 그러나 나는 안철수 전 대표와는 다르다. 그분은 민주당에 갔다가 국민의당을 만드는 등 여러 번 정당을 옮겨 다녔다. 하지만 나는 오로지 새누리당에만 17년째 몸담아 온 사람이다. 당에 대한 나의 애정을 모르고 쉽게 얘기하는 것이다.”
유 의원이 새누리당 경선에 도전하면 친박 후보와 맞붙지 않겠나.
“아직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말도 안 했는데.(웃음) 만약 경선을 한다면 많이 출마할수록 좋다. 이번 대선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심판이란 측면이 있다. 절대 쉽지 않다. 그러니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되고 싶은 사람은 전부 경선에 나오도록 문호를 개방하고, 진짜 개혁적인 후보를 뽑아야 한다. 그러려면 공평하게 경선을 치러야 한다. 지도부가 함부로 특정 후보를 밀려 하면 안 된다.”
손학규·안철수 전 대표에게도 문호를 개방할 수 있나.
“그렇다. 손 전 대표야 원래 우리 당에 있던 분 아니냐. 김부겸 의원도 그렇다. 안철수 전 대표도 ‘경제는 개혁·안보는 보수’ 아니냐. 그런 분이면 제3지대에서 딴살림 차릴 생각 말고 (우리 당 경선에 참여하면 된다).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
반기문 총장은 어떤가.
“경선에 참여한다면 대환영이다. 경선이 대단히 드라마틱해질 것이니 뛰어드시길 바란다. 다만 우리나라가 겪는 문제가 북핵만이 아니잖나. 양극화나 저성장에 대해 그분이 어떤 해법이 있는지 국민들이 궁금해 한다. 경선에서 밝히고 토론해야 할 것이다.”
반 총장을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추대하자는 주장에 대해선.
“추대? 누가 그런 얘기를 하던가? 당헌·당규상 불가능한 얘기다.”
언제쯤 대선 출마 여부를 밝힐 것인가.
“연말이 될지 연초가 될지 모르나 그때쯤 밝히겠다. 성격상 시간만 끌지는 않을 거다. (연말인가 연초인가?) 연말연초다. 사람들은 나보고 권력의지가 부족하다지만 권력의지만 있고 준비가 안 된 사람은 대통령을 하면 안 된다. 그러면 다 실패한다. 그러니 생각하고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보수는 반칙을 서슴지 않는 부패 기득권 집단이란 비판이 많다.
“그런 보수가 물론 있다. 그런 시대착오적인 보수와는 결별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엔 안보관이 투철하고, 경제 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급진적이고 무책임한 개혁은 안 된다는 사람들이 있다. 복지를 하면서도 나랏돈이 허투루 쓰여선 안 되고, 부정부패는 엄단해야 한다는 사람들이다. 지금 새누리당이 보여주는 행태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이런 시민들이 내가 생각하는 보수다. 차가운 보수가 아닌 따뜻한 보수다. 이들과 힘을 합쳐 낡은 보수를 몰아내고 개혁적인 보수가 나라를 이끌게 해야 한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그런 ‘따뜻한 보수’를 주장했지만 여당이 받아주지 않으니 야당에 간 것 아닌가.
“그분이 우리 당에 돌아오면 좋겠다. 새누리당은 대통령 한 사람을 위한 정당이 아니다. 국내 유일의 보수당으로 보수층을 제대로 대변해야 하는 당이다. 우리가 개혁을 제대로 하면 제3지대는 힘을 쓰지 못할 것이다. 지금은 지탄을 받고 있어도 대선후보 경선이나 이념·정책에서 진정성 있게 변화하면 국민들이 제3지대에 눈을 주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지금처럼 강경 노선만 고집하면 국민들이 떠나갈 것이다.”
대기업 개혁을 주장한다. 하지만 대기업을 때려잡을 수만은 없지 않나.
“때려잡자는 게 아니다. 지금 같은 지배구조론 혁신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거다. 대기업들에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그 안에서만 사업을 하고, 글로벌 일등 기업으로 크게 해야 한다. 가이드라인을 넘거나 방만 경영으로 국민에게 부담을 주면 안 되는데 지금 그렇게 하고 있지 않나. 그러니 부실기업은 조기에 정리해야 한다. 조선·해운 다 몇 년 전부터 부실 징후를 알았으면서도 시간만 끌다 보니 국민 부담으로 돌아오지 않았느냐.”
대우조선 같은 기업은 즉각 퇴출감인가.
“그렇다. 당연하다. 하청업체나 근로자들의 고통을 감안하되, 부실기업은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 전국 17개 시·도에 대기업이 창조혁신센터를 짓게 하는 방식은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기업이) 소규모 혁신기업의 싹을 밟아버리니 바뀌지 않는 거다. 미국·중국이 다 하는 디지털·바이오 기업을 왜 우리는 못 키우나.”
대통령이 되더라도 5년 임기 안에 뿌리 깊은 대기업의 지배력을 혁파할 수 있겠나.
“대우조선이 왜 부실기업이 됐나? 경제에 무리가 올까 봐 폭탄 돌리기만 했으니 터진 것 아닌가? 나는 생각이 확고하다. 부실기업을 살리려고 국민에게 과중한 부담을 안기는 방식엔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혁신기업 지원도 엄청난 개혁을 필요로 한다. 19조원을 R&D(연구개발)에 투자하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국민 피부에 다가오는 일이 아니라 인기도 없다. 그러나 여기서 실패하면 미래가 없다. 청년수당 몇 십만원 주는 건 당장의 고통을 달래는 진통제일 뿐이다. 청년들이 원하는 건 일자리다. ”
대선이 가까워지면 박 대통령이 탈당하게 될 것이란 우려가 있는데.
“대통령 탈당은 정말로 반대다. 당원으로 남아 있으셔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 때 탈당 않는 전통을 만들었다. 우리 당 역사가 진일보한 것이다.”

유승민은…

맺고 끊음이 분명한 화법의 인파이터. 경제학 박사로 정책 현안에도 밝은 전략가다. 2005년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당시)의 비서실장을 맡았고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의 정책메시지 단장을 지낸 ‘원박(원조 친박)’이다. 당시 이명박 후보에게 진 박 후보의 연설문 작성도 그의 몫이었다. 유 의원은 2011년 말 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박 대통령이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꾼 데 강력히 반대하며 사이가 멀어졌다. 지난해 2월 원내대표에 당선된 유 의원이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 등의 발언으로 청와대와 각을 세우며 완전히 갈라섰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배신의 정치를 국민이 심판해 달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로 인해 유 의원은 원내대표에서 중도 하차했다. 게다가 4·13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이 자신의 공천을 끝까지 미루자 탈당해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그 뒤 유 의원을 복당시키라는 여론에 시달린 새누리당 비대위가 6월 16일 복당을 의결해 두 달여 만에 당적을 되찾았다. “과거를 두고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복당의 변에는 친박계도 박수를 쳤다.

▶1958년 대구 출생▶경북고·서울대 경제학과▶미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원▶한나라당 여의도연구원장·최고위원▶국회 국방위원장▶2015년 새누리당 원내대표

글=강찬호 논설위원
사진=전민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