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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남권에서 잇따라 발견된 삐라…1950년대에는 수십억장 뿌려지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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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남한군이 만든 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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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서울 영등포구, 양천구 등 서남권에 풍선으로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의 대남 선전용 전단(삐라)가 대량으로 뿌려져 경찰이 수거에 나섰다. 지난 4일 영등포경찰서는 “가로 9㎝ㆍ세로 12㎝와 가로 12㎝ㆍ세로 4㎝ 크기 두 가지 형태의 삐라 1300여장을 수거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삐라가 인근 양천구 등에서도 발견되고 있고,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목격자의 진술 등을 근거로 북한에서 풍선을 통해 삐라를 날려 보낸 것으로 보고 있다.

삐라 살포의 목적은 물리적인 전투 대신, 상대방의 가치체계에 혼란을 일으키고자 하는 것이다. 일종의 심리전인 셈이다. 이 때문에 삐라에는 상대방 정부를 비난하는 내용이 담길때가 많다. 삐라의 어원은 정확하지 않다. 현재는 벽보나 광고지 등을 뜻하는 영어단어 ‘bill’의 일본식 발음 ‘비루’에서 기원했다는 설이 가장 널리 퍼져 있다.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 때는 무력 충돌과 함께 삐라 살포가 가장 치열하게 전개된 시기다. 삐라는 ‘소리없는 종이폭탄’으로 불리며 심리전의 대표 수단으로 쓰였다. 남북은 서로 뒤질세라 삐라 폭탄을 한반도 상공에서 뿌렸다. 실제로 1950년 6월부터 1953년 7월까지 미 8군사령부와 극동사령부가 뿌린 대북 전단은 24억 6000만장이 넘는다고 한다. 남북 모두 귀순을 유도하는 내용을 담았다. 유엔군 총사령관 명의로 북한군에 살포한 삐라도 귀순을 유도하는 ‘안전보장증명서’가 대표적이다. 한국어와 영어, 중국어로 된 이 증서는 이 종이를 가지고 항복하면 무조건 항복을 받아들이겠다는 내용이었다.

가장 최근에 수거된 삐라처럼 풍선을 이용하는 방법은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의 전신)가 타이완 국민당 정부가 풍선에 식료품을 실어 중국 본토에 보내는 사례를 본뜬 것이 시초라고 한다. 1980년대부터 남한은 유명 연예인 사진을 전단에 넣고 월남을 유도하기도 했다. 선정적인 여자 모델의 사진과 함께 귀순을 유도했다. 북한도 이에 질세라 1990년대 이후부터 남측의 연예인들이 등장한 삐라를 제작해 뿌렸다. 남한 연예인들의 사진에 ‘김정일 장군 만세’ 등의 문구를 넣어 이들이 북한을 찬양하는 것처럼 만든 것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정부 대신 자유북한운동연합 등 탈북 민간단체들이 삐라 살포에 나섰다. 삐라 내용은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이 대부분이다. 김일성ㆍ김정일ㆍ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을 비판하거나 김씨 일가의 사치생활을 비난한다. 삐라와 함께 미화 1달러, 한국의 경제 발전상이 담긴 DVD, USB, 소책자 등을 삐라와 함께 보내기도 한다.

도심에서 삐라가 발견되면 어떻게 처리될까. 삐라가 발견되면 신고를 받은 군과 경찰, 국가정보원 등 공안 당국이 회수해가는 게 원칙이다. 공안 당국은 회수한 삐라의 내용과 수법, 재질 등을 과거 사례와 비교 분석한다. 삐라가 북한에서 내려온 게 맞는지 남한에서 누군가 만들어 뿌린 것은 아닌지 등을 판단하기 위해서다.

채승기 기자 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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