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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ERI report] 통상 압박’ 클린턴 되면 괜찮다? 그녀도 미국인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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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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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규모 면에서 한국의 두 번째 교역 상대국이다. 한국과 미국의 경제 교류는 2012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이후 더욱 늘어나고 있다.

미 양당 후보 모두 “신 보호무역”
온건파 클린턴 진보 색채 짙어져
트럼프는 “미국인 일자리 지켜라”

새 정부 첫 시험대는 중국
미, 중국산 제품에 고관세 매기면
인플레 압력 높아져 경제 악영향

그러나 오는 11월 미 대선에 나선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과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통상 공약이 본격적으로 제시되면서 향후 한·미 간 통상 마찰이 불거질 것이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특히, 한·미 FTA 재협상을 주장하고 있는 트럼프 후보가 당선된다면 임기 초부터 전 방위적인 압력이 쏟아질 것으로 전망됐다. 힐러리와 트럼프의 통상정책을 비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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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무역주의로 회귀=양 후보 모두 집권 후에는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국제 교역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보호무역주의 정책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게 국내 통상 관련기관의 한결같은 분석이다.

‘둘 다 무역협정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인식하고 있어 보호무역 성향을 표방할 것’(산업통상자원부 분석), ‘보수·진보층 할 것 없이 반 자유무역주의 여론이 높아진 상황이어서 통상정책 기조가 보호주의로 바뀔 것’(KOTRA 보고서), ‘경기 회복의 부진과 계층 간 갈등 심화로 반(反) 글로벌화 등의 고립주의 움직임이 강화될 것’(국제금융센터 자료) 등이 대표적이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은 보호무역주의를, 공화당은 자유무역주의를 지지해왔다. 민주당은 미국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자유롭고 공정한 교역을 강조하며, 노동자의 권익과 환경 기준에 대한 강력한 보호를 주장해왔다.

반면 공화당은 새로운 시장 개척을 가능케 하는 국제 교역을 지지하면서 무역협정과 시장 개방을 적극 추진해왔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선 왜 두 후보 모두가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주장하고 나선 것일까.

지난 7월 전당대회에서 발표된 양 당의 통상분야 정강정책을 보자. 민주당은 “노동·환경 보호, 일자리 창출 등 미국이 추구해온 주요 가치를 반영하지 못한 무역협정을 재검토·개선(review & update)하거나 반대(oppose)한다”고 밝혔다.

공화당은 “미국의 이익을 우선시할 것이며(‘America first’), 미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무역협정을 거부(reject)한다”고 공표했다. 표현만으론 공화당이 오히려 더 보호무역주의적 성향으로 입장이 뒤바뀌었다.

이런 현상은 교역으로 인한 막대한 적자가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포퓰리즘 정치 구호가 강력하게 대두됐기 때문이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무역 정책 기조가 공세적으로 바뀌는 신(新) 보호무역주의 압력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래 보수적 온건파 민주당원이었던 클린턴은 경선 상대였던 샌더스 상원의원으로 대표되는 급진 아웃사이더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점차 진보적인 색채를 띠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 중서부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지대)의 표심이 흔들리자 자신이 국무장관 때 추진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마저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FTA를 전면 거부하기보다는 노동자 권리 보호나 환경 규제 등을 앞세워 맞춤형으로 추가적인 양자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트럼프는 ‘교역으로 인한 막대한 적자가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과격한 주장을 펼쳐왔다. 기업인 출신답게 ‘한·미FTA로 일자리 10만 개가 날아갔다’ ‘미국 국익을 해치면 세계무역기구(WTO)를 탈퇴하겠다’는 식의 선정적인 구호를 내세워 친 자유무역 성향의 공화당을 신(新)고립주의 쪽으로 돌려놓고 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장은 “수출을 많이 해야 좋다는 중상주의적 철학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무역역조 개선에 가장 먼저 강력하게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상마찰 예고=클린턴이 당선된다면 트럼프에 비해 온건한 통상정책을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클린턴이 지금은 유권자를 의식해 보호주의 성향을 보이지만 막상 대통령에 당선되면 전임 정부의 정책 틀 속에서 수정·보완하는 입장을 취할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 통상전문가들의 진단도 대체로 비슷하다. ‘현 오바마 정부의 기조를 유지해 임기 내에 TPP를 마무리할 것’(최원목 교수·허윤 원장)이란 분석이 많다. 당분간은 WTO의 다자간 체제보다는 미국이 주도하는 정보기술협정(ITA) 등의 복수국 협정이나 미·유로FTA 같은 메가 FTA 양자 협상에 주력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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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당선될 경우엔 거센 통상 마찰이 예고된다. 중국·멕시코를 겨냥해 높은 관세장벽을 세우는 한편 다양한 무역구제 수단을 무기로 기존 통상협정의 개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곽노성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먼로주의의 부활을 표방하며 전면적인 FTA 재협상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우선하는 비즈니스 마인드를 주장하며 강력한 압박정책을 펼칠 것이란 관측이다.

두 후보가 강조하는 주력 산업도 대조적이다. 클린턴이 당선되면 태양광·풍력 등 신 재생에너지업종과 알츠하이머 치료제등 신약개발업종이, 트럼프가 당선되면 화석연료산업·송유관 건설업이나 인프라 건설 및 중장비 제조업 등이 뜰 것으로 꼽혔다.

◆대선 이후는=대선이 끝난 뒤에도 많은 변수가 남아있다. 우선 이번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상·하원 의회 선거 결과가 통상정책의 기조를 좌우할 전망이다. 양 선거 결과가 동조화돼서 나타나는 ‘옷자락 효과(coattail effect)’로 인해 상·하원 모두 공화당이 다수당인 현 체제가 바뀔 경우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것이다. 국제금융센터의 현지 분석자료에 따르면 양당의 의석이 균형을 이루게 되면 급격한 정책 변화가 어렵다는 시각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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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대외정책과의 연계도 중요 요인으로 꼽힌다. 송영관 KDI 연구위원은 “개입주의를 표방해온 공화당 정권의 대외정책 특성에 비춰볼 때 트럼프가 당선되더라도 미국의 세계전략에 맞춰 극단적인 목소리가 차츰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올 12월 이후 중국의 시장경제 지위 부여를 놓고 벌어질 미·중간 통상협상은 새 정부 통상정책의 첫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산 제품에 고관세를 매길 경우, 중국의 보복 조치로 무역전쟁이 촉발되거나 미국 내 수입 물가 급등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져 미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관전 포인트 중의 하나다.

홍병기 기자 klaat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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