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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차바] 태풍 온 정오에 돌아본 지진피해 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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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황남동 한옥마을.

제18호 태풍 '차바'(CHABA)가 동해에 근접한 5일 오전 11시30분 경북 경주시 황남동 한옥마을. 지진 피해로 한옥 지붕 기와가 부서지고 주택 벽체 균열로 최근 복구 작업이 한창이다.

시간 당 40㎜의 폭우, 우산을 펼치기 힘들만큼 강한 바람이 한옥마을에 불고 있었다. 마을 입구 쪽 도로엔 강풍으로 가로수 한 그루가 통째로 뽑혀져 나가 있었다. 지진 복구를 위해 한옥 주변에 쌓아놓은 여러장의 기와도 바람에 날려 골목 이곳저곳에 깨져 있었다. 지난 4일 태풍 피해를 대비해 한옥 지붕에 씌어놓은 파란색 천막 대부분은 바람에 날아가거나 찢어져버렸다. 천막 끝에 달아둔 모래주머니 일부도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지진피해 마을에 태풍이 불어닥쳤다.
황남동 주민자치센터 인근의 한옥. 김정오(70)씨가 슬리퍼만 신고 마당에 나와 불안한 듯 지붕을 쳐다보고 있었다. 김씨의 집 지붕은 물이 새고 있었다. 지진으로 기와가 깨진 틈 사이로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다. 그는 "기와가 제자리에 붙어 있는 곳이 없어 지난 밤 천막까지 지붕에 촘촘히 둘렀지만 바람에 날아가거나 찢어져 비가 그대로 줄줄 집으로 새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거실 쪽 균열이 나 있는 벽을 가리키며 "이 상태로 폭우가 이어지면 벽체 틈으로도 비가 들어와 집이 엉망이 될 것 같다"고 불안해했다. 인근 한옥 앞에서 검은색 비옷을 입고 지붕에 둘렀던 천막을 정리하던 주민 조복길(81·여)씨는 "지진 피해로 복구가 안 된 상태에서 태풍까지 들이닥치니 황남동에 피해가 없을 수 없다"며 "깨진 기와 사이로 비가 집안으로 스며들고 지진으로 제자리에서 벗어나 있던 기와도 일부가 바람에 날아갔다"고 답답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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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황남동 한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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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황남동 한옥마을.

정오쯤 찾은 지진 진앙마을인 부지리와 덕천리가 있는 경주시 내남면. 마을 입구 진입로가 물에 잠겨 차량 통행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걸어서 부지1리로 들어갔다. 다행히 큰 태풍 피해는 없는 듯 보였다. 우산 없이 마을회관 방향으로 뛰어가던 한 60대 주민은 "지진 복구가 덜 된 마을 주택 벽체와 지붕에 일부 물이 새 들어왔다"며 "다행히 담이 무너지는 등 큰 피해는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덕천1리 이근열 이장은 "균열이 간 벽체나 주택 지붕으로 일부 물이 새 들어오는 곳은 있지만 태풍이 예상보다 빨리 지나가 지진 피해지역에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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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피해지역으로 가는 울산시 울주군 범서읍의 31번 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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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진앙마을로 들어가는 경북 경주시 내남면 진입로.

경주시에는 이날 오전부터 정오까지 125.8㎜의 비가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이에 주민들의 태풍 피해 신고도 이어졌다. 내남면 일대 도로와 농경지가 침수됐고, 외동읍 일대 마을 야산에서 토사가 유출됐다. 양남면 주변 마을의 하천 둑이 무너졌고 6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했다. 경주 도심 한가운데 흐르는 형산강의 물이 갑자기 불어나 서천둔치 주차장에 주차된 차량 60여대가 침수되기도 했다. 연락이 두절된 주민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병한 경주시 안전재난과장은 "해병대원 30명, 공무원 50명으로 이뤄진 복구팀을 한옥마을 등 지진피해 지역을 중심으로 배치해 태풍 복구 작업을 진행 중이다"며 "지진에 태풍 피해까지 입은 주민들의 안정을 위해 복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진 피해지역인 울산 울주군도 태풍 피해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태풍이 가장 가까이 접근한 5일 정오쯤 찾은 울주군. 지난 지진의 경주 진앙과 가까워 지진 피해가 컸던 두서면으로 가는 길은 막혀 있었다. 두서면과 20㎞ 정도 떨어진 범서읍 중리마을 입구는 비상등을 켜고 줄지어 서 있는 차들로 혼잡했다. 울산과 경주를 잇는 31번 군도가 곳곳의 산사태와 낙석으로 통제됐기 때문이다. 차를 돌린 두동면 주민 김모씨는 “이곳에서 6~7㎞ 떨어진 두동면 마을이 물에 잠겼는데 집에도 못 가게 하면 어떻게 복구를 하느냐”며 발만 동동 굴렀다. 울주군은 지진 발생 후 응급복구를 했기 때문에 걱정 없다고 했지만 주민들은 연이은 재해에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었다.

지진 피해지역으로 가는 울산시 울주군 범서읍의 31번 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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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서면 내와마을 김정의 이장은 "지진으로 부서진 집들의 복구 공사가 다 되지 않아 잔해들이 여기저기 쌓여 있다"며 "집집이 논두렁이 무너져 벼농사를 다 망쳤다"고 말했다. 김 이장은 또 주민의 피해 신고가 들어왔다며 현장에 가봐야 한다며 급히 전화를 끊었다. 두서면 외와마을의 문현달 이장은 “지진 복구가 하루 이틀에 되는 것이냐. 아직 무너진 그대로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울주군에서는 이날 태풍으로 구조작업을 벌이던 소방대원 1명이 실종되고 아파트 앞에서 폭우에 휩쓸린 주민 1명이 숨졌다. 하수구 범람, 벽 무너짐 등 457건의 피해도 입었다.

경주·울산=김윤호·최은경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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