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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로커’ 빅토르 최, 한·러 문화 가교로 부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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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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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록 음악의 전설’ 빅토르 최. 28세로 요절했지만 러시아에서 그의 인기는 여전하다. [중앙포토]

“팔에 있는 나의 혈액형, 팔에 있는 나의 군번, 전투에서 나에게 행운을 빌어다오. 이 풀밭에 남게 되지 않기를.”(빅토르 최의 노래 ‘혈액형’ 중에서)

오늘 ‘기념사업회’ 창립 음악회
한국 찾은 아버지 로베르트 최
“그림 잘 그려 화가될 줄 알았는데
팬들, 한동안 아들의 죽음 안 믿어”

“우리의 심장이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의 눈도 변화를 요구한다. … 우리의 온몸이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는 변화를 기다리고 있다.”(빅토르 최의 노래 ‘변화’ 중에서)

1980년대 격변 속에 놓인 구 소련 젊은이들의 심장을 뒤흔들었던 러시아 ‘록 음악의 전설’ 빅토르 최(1962~1990). 인기 절정의 순간 불의의 교통사고로 28세에 요절했지만 그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빅토르 최의 사후에 태어나 그를 본 적도 없는 현재의 20~30대 러시아 젊은이들도 그의 음악을 저장해 놓고 듣는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묘지를 관리하는 팬클럽도 있다. 80년대 초반부터 빅토르 최와 함께 활동했던 그룹 알리싸는 현재도 러시아에서 인기가 많다. 이들은 콘서트 때마다 빅토르 최의 노래를 부르면서 이렇게 얘기하곤 한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빅토르 최 노래를 계속 부를 것이다.”

그의 음악을 세계에 알리면서 한국과 러시아 간 유대도 돈독히 하기 위한 ‘한·러 빅토르 최 기념사업회’가 발족한다. ‘아관망명’(일명 아관파천) 120주년 한·러 학술세미나와 함께 ‘한·러 빅토르 최 기념사업회’ 창립 축하 음악회가 5일 오전 10시~오후 4시 서울 프레지던트호텔 31층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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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최의 부친 로베르트 최. ‘한·러 빅토르 최 기념사업회’ 창립에 맞춰 방한했다. [사진 박종근 기자]

이를 위해 빅토르 최의 아버지이자 고려인 2세인 로베르트 막시모비치 최(78세)가 두 번째로 한국을 찾았다. 3일 만난 그는 아들의 사망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묻자 잠시 꺼려하며 이렇게 말했다. “빅토르 사망 이후 2년간 아주 힘들었다. 2년 동안 팬들로부터 ‘빅토르가 살아있다’는 편지를 받았다. 그의 죽음을 믿지 못하는 팬들이 사고가 아니라 암살이었다고 많은 소문을 냈다.” 또 사고의 진상에 대해선 “라트비아공화국 라가의 한적한 호수로 낚시하러 자동차를 몰고 가다 커브길에서 운전자만 타고 있던 대형버스와 정면 충돌해 즉사했다. 원인을 자세히 조사해달라고 여러 번 요청한 결과 빅토르의 잘못으로 결론이 났다. 시속 100km로 달리다 커브길에서 속도를 못 줄이고 사고를 당했다”고 말했다.

빅토르가 어렸을 때는 그림을 잘 그려서 미술학교에 진학했으며 언제가 화가가 될 것으로 기대했었다는 얘기도 했다. 1982년 그룹 키노(KINO)를 결성할 때도 취미로 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의 인기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선 “세계 정치 상황이 바뀌어 가는 시절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변화’의 노래를 들으며 시대 변화의 상징으로 여겼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를 주관하는 코러스(KOR-RUS) 미래재단의 총괄회장은 러시아와 농수산물·광산물 관련 무역을 오래 해온 오킹 그룹 나정주 회장이 맡았다. 재단의 러시아 측 회장은 김영웅 국제고려인연합회 회장으로, 이날 ‘한·러 역사적 우호관계 재평가’란 글을 발표할 예정이다. 알렉산드르 제빈 러시아극동연구소 한국학연구센터장도 방한해 ‘고종황제의 주관적 결단과 러시아의 정치적 대응’이란 글을 발표한다.

‘한·러 빅토르 최 기념사업회’는 코러스 미래재단의 핵심 사업이다. 정윤근 기획위원장은 “빅토르 최의 음악을 재조명해서 세계적으로 알리고 한국·러시아 문화 교류의 중심 역할을 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글=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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