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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러시아와 일본은 철도로 연결한다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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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일본 열도와 연결하자는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이 방안이 실현되면 TSR을 한반도종단철도(TKR)와 연결해 ‘동북아 물류 중심국가’로 발돋움하려는 한국의 전략은 사실상 좌초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제 일본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러시아는 현재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결된 TSR을 사할린을 거쳐 홋카이도(北海道)로 연결하는 사업을 일본에 제안했다.

아베 제안 한층 적극적이고 구체화
북에 막힌 한국은 지리적 외톨이 될 것
러 납득시키고 국익 지킬 대안 필요

 러시아와 일본의 철도 연결 구상이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집권 이후 인구 과소 지역인 연해주 개발에 박차를 가해 왔다. 이를 위해 한국 또는 일본으로 TSR을 연결해 연해주를 중심으로 한 러시아 극동지역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간 한·일 두 나라를 놓고 저울질해 온 러시아는 쿠릴열도 반환을 요구하는 일본보다는 국가 간에 민감한 이해관계가 없는 한국을 파트너로 선호해 왔다. 하지만 최근 남북 경색이 장기화하자 일본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쿠릴열도 4개 섬을 북방영토로 부르고 있다. 역사적으로 러시아와 거듭 주고받아 오다 태평양전쟁에 패전하면서 러시아로 넘어갔다. 러시아로선 영토로 귀속된 이상 반환할 의향이 없다. 하지만 러시아는 국제유가 폭락에 크림반도 합병에 따른 서방의 제재로 궁지에 몰려 있다. 외국 자본에 대한 갈증이 극에 달한 시점에 일본이 손을 내밀자 러시아는 쿠릴열도에 철도를 놓는 방식으로 화답하고 있다. 일본의 요구대로 즉각 반환하진 않겠지만 일본 열도와 연결함으로써 실질적인 경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쿠릴열도·홋카이도 간 해협의 폭은 도버해협보다 조금 더 긴 42㎞여서 경제성이 관건이지 기술적 문제는 크지 않다.

 이런 속내를 알아차린 일본은 러시아의 가려운 곳을 확 긁어주면서 베팅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달 1일 러시아경제협력담당상을 신설하더니 이달 1일에는 6000억 엔(약 6조5000억원)에 이르는 대규모 경협 패키지를 바로 내놓고 러시아에 제시했다. 일본의 기술과 운영 노하우가 뛰어난 의료·우편사업·항만 정비에다 수산물 가공공장 건설에 이르는 광범위한 경협 메뉴를 담고 있다.

 이 방안은 아베 신조 총리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어 상당한 추진력이 뒷받침되고 있다. 전쟁을 금지한 평화헌법 개정에 나선 아베는 패전 이후 역대 정부가 이루지 못한 쿠릴열도 회복을 일본 국민에게 거듭 약속하면서 정부 재정과 외교적 협상을 비롯해 전방위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12월 15일에는 자신의 고향인 야마구치(山口)로 푸틴을 불러들인다. 온천이 딸린 숙박시설 료칸이 즐비한 곳에서 일본 요리며 일본식 접대로 푸틴의 마음을 녹여 경협 분위기를 한껏 무르익힐 요량이다.

 두 나라 모두 거대한 제국을 경영했던 대국이다. 이들이 자국의 이해에 부합해 TSR로 손을 잡는 순간 한국은 북한에 가로막힌 동북아의 지리적 외톨이가 된다. 러시아를 통한 북한 끌어내기도 어려워진다. 우리 정부도 우물 밖으로 나가 한참 진행 중인 러·일 간 밀애에 대한 실용적 대응 전략을 내놓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