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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역보험공사(무보) 2000억 보증 사고, ‘제2모뉴엘’ 여부 철저히 가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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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무역보험공사(무보)에서 2000억원 규모의 보증사고가 났다. TV를 수출하는 중소기업 온코퍼레이션의 경영이 급속히 악화돼 사실상 파산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2008년 이후 무보의 단기수출보험(EFT)을 근거로 시중은행들로부터 2000억원을 대출받았다. 현재 대출 잔액만 1500억원인데 이 중 대부분을 회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2년 전 있지도 않은 수출 실적을 부풀려 3조4000억원에 이르는 무역 사기를 벌인 ‘모뉴엘 사태’의 악몽이 떠오른다.

무보는 두 기업의 경우가 완전히 다르다고 해명한다. 신용장 위조까지 서슴지 않은 모뉴엘과 달리 온코퍼레이션은 실제로 제품을 만들어 미국의 대형 유통업체에 공급해 왔다. 지난해 말 중국에서 만든 제품에 클레임이 걸리면서 갑자기 경영이 어려워져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단순한 ‘보증사고’일 뿐 모뉴엘 같은 ‘무역 사기’는 절대 아니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두 사건이 연계돼 있다는 의심이 완전히 해소된 건 아니다. 온코퍼레이션 내부 제보자는 무보에 ‘모뉴엘 사건을 주도했던 전 무보 부장 2명이 온코퍼레이션 미국 법인에서 최근까지 연 5만5000~7만5000달러(약 6000만~8300만원)의 급여를 받았다’고 알렸다고 한다. 무역금융 시스템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 혹시라도 이번 사건에 연관돼 있다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밝혀내야 한다.

단순한 ‘보증사고’라고 해서 무보의 책임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무보는 산업통상자원부 출연금 100%로 운영되는 공기업이다. 손실이 나면 국민 혈세로 메워야 한다. 수출 진흥을 위한 금융 지원이라는 무보의 역할을 하다 보면 어느 정도의 보증사고는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천문학적 금액의 사고가 2년 새 반복되는 건 정상적이지 않다. 무역보험제도나 무보의 업무 관행에 허점과 문제는 없는지 이번 기회에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기능과 업무가 상당 부분 겹치는 수출입은행과의 통폐합도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