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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한국 나노과학기술 이끌 기둥 잃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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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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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나노과학기술 분야 리더로 손꼽히던 한국과학기술원(KAIST) 나노과학기술대학원 신중훈(물리학과·사진) 교수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49세.

신중훈 KAIST 교수 교통사고 별세
27세에 교수 임용, 과학자상 휩쓸어
전력 없이 빛 내는 디스플레이 개발

2일 신 교수의 유족과 충북단양경찰서 등에 따르면, 신 교수는 지난달 30일 강원도 강릉에서 열린 과제 워크숍에 참석한 뒤 대전으로 복귀하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경찰은 “사고 당일 오후 4시쯤 신 교수가 몰던 오토바이가 충북 단양군 단양읍내를 지나다가 반대 방향에서 달려오던 택시와 정면 충돌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신 교수는 부친의 근무지인 독일과 미국에서 각각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나왔다. 신 교수의 부친 신평재(81)씨는 교보생명 신용호 창립자의 조카로, 교보증권과 교보생명 대표이사를 지냈다. 이어 신 교수는 1989년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94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에서 석·박사 통합학위를 받았다. 96년 9월 KAIST 물리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27세 5개월로 국내 대학에서 가장 젊은 교수였다. 2004년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주는 ‘올해의 젊은과학자상’을 수상했다. 희토류 원소를 광대역 통신·정보소자에 응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공로였다. 이어 2005년에는 ‘한국공학상 젊은과학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신 교수를 중심으로 한 KAIST 연구팀은 2012년 외부 빛을 반사시켜 화면을 출력하는 반사형 디스플레이 기술을 개발했다. 여러 각도에서 똑같은 빛깔을 내는 ‘몰포나비’ 날개의 독특한 구조를 재현해 별도 전력 없이 외부 빛을 반사시켜 화면을 출력하는 디스플레이 원천기술이다. 관련 논문은 네이처지(誌) 등에 소개됐다.

신 교수 집안에는 과학도가 유달리 많다. 정광화 전 표준과학연구원장이 신 교수의 이모이고, 정광화 전 원장의 딸이자 신 교수의 사촌 여동생인 정혜민(36·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졸)씨는 2006년 ‘연인의 잔’을 발명했다. 유리잔에 LED ·촉감센서를 장착한 ‘연인의 잔’은 한쪽에서 잔을 들면 상대방의 잔에도 동시에 빛이 난다. 충북대 화학과 정용석(59) 교수와 미국 댈러스 삼성전자연구원 정용우(63) 전 원장은 신 교수의 외삼촌이다.

신 교수의 부친은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밤잠을 설쳐가며 연구한 아들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황망하기만 하다”며 울먹였다. 조용훈 KAIST 물리학과장은 “한창 연구에 매진해 국가 나노 미래기술을 이끌 젊은 기둥이 사라져 안타깝다”고 애도했다. 신 교수의 제자인 송보광(31·물리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씨는 “수업시간에는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지도하셨고 평소에는 제자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수시로 사주며 스스럼없이 먼저 다가서는 교수님이었다”고 추모했다. 유족은 부인 홍영은(45)씨와 1남1녀가 있다.

빈소는 대전 유성 선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발인은 3일 오전 7시. KAIST는 발인이 끝난 뒤 오전 8시부터 1시간 동안 캠퍼스에서 추도식을 열 예정이다. KAIST 강성모 총장이 추도식에서 고별사를 한다. 042-825-9494.

대전=김방현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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