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황하에서 유발까지… 동양사 5천년의 베일을 벗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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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대황하>는 이번회부터 제2부로 접어든다. 탐색 취재의 카메라 초점은 황하의 상류지역.전장 5천4백64km의 족정은 아직 멀기만 하다.
알려지지 않은 소수 민족들이 등장한다. 한족을 빼고 55개 소수민족이 사는 중공. 청해성에서 감숙성으로 흐르는 황하상류주변에는 먼 옛날부터 수많은 민족의 혈통과 문화가 뒤섞이면서 왕조의 교체와 전쟁때마다 민족의 이동이 거듭되었다. 상류의 산악지대에서 오르도스대지까지 황하유역의 자연과 제민족의 투쟁 드라머, 서하왕국의 유산인 수수께끼에 싸인 서하문자 풀이등을 배경으로 여러 민족의 모든 것을 소개한다.<편집자주>
임하회족 자치주는 감숙성으로 흘러든 황하의 남쪽에 위치하였고 총면적은 7천9백83평방m. 이것은 하원에서 제일곡에 이르는 황하 최상류부의 코로 (과락) 장족자치주와 거의 같은 면적이나 청해성 코로지구의 인구 10만명에 비하여 이 지역 인구는 1백42만명으로 대폭 불어난다. 이 인구의절반 이상이 여러 소수민족으로 채워져 있어서 자치주에 널린 현의 이름도 퉁샹 (동향)족 자치현, 청석산보난 (보안)족 자치현등 각민족의 이름을 딴 현이 두드러진다.
자치주의 중심도시 임하는 감숙성 성도 난주의 서남 72km, 황하의 갈래인 대황하의 북쪽 기슭 평야에 펼쳐진 도시인데 난주·서녕·천수에 이르는 교통의 요충으로 예부터 번영했다. 임하를 중심으로 한 일대는 역사상의 이름을 하주라 하며 일찌기 도시전체가 성벽으로 둘러싸인 지역으로서 원대의 하주로 명대의 하주위, 청대의 하주 정청소재지이기도 했다.
임하는 회족의 도시. 사람들은 이슬람교(회교)도의 증표로 남자는 머리털을 밀고 흰 무명의 둥근 모자를, 여자는 흰 모자 위에 검은 실로 짠 레이스의 두건을 써 어깨까지 늘어뜨리고 있다.
번화한 거리의 곳곳에는 연청색의 산뜻한 둥근 지붕을 나란히 한 모스크 (이슬람사원)가 솟아있고 해가 뜰때부터 질때까지 회교성전 코란을 읽는 낮은 소리가 거리에 흘러나온다.
다민족국가인 중공에는 90%이상의 다수를 차지한 한족이외에 55개의 소수민족이 분포하고 있다. 회족은 소수민족중 1천3백만명을 헤아리는 장족에 이어 인구가 많아 82년의 국세조사에 따르면 7백21만명의 소수민족. 주로녕하회족 자치구, 감숙성 임하회족 자치주, 신강 위글 자치구의 창길회족 자치주등에 살고 있는데 그밖에도 서부에서 동부까지 중공전토에 녈리 산재하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으며 전국 2천에 이르는 현에서 회족이 없는 현은없다고 한다.
공동취재반이 임하에 들어간 것은 6월 중순. 때마침 이슬람의 세계가 일제히 단식에 접어든 라마단월의 한 중간이었다. 단식은 일생에 한번의 메카회례와 하루에 다섯번의 예배를 규정한 이슬람교도의 신앙에서 기본을 이루는 다섯 기둥이라 일컫는 의무의 하나다. 이슬람역의 제9월의 한달 동안 문자 그대로 일체 먹을 것과 물까지도 입에 대지 않는 엄격한 근행이다.
그렇지만 밤과 새벽의 식사는 자유여서 사람들은 신에게 기도를 한 뒤에 음식을 충분히 취하도록 허용되어 있다. 단식을 하는 것은 하루에<이른 아침 흰실과 검은 실을 분간할수 있을때>부터 <해가 지기까지> 라고 자세히 결정되어 있어서 이 동안에는 음식뿐만 아니라 부부간의 관계나 약을 먹는 것도 위반행위로 되어 있다. 이 라마단월이 지나고 한달동안의 제계가 끝나는 날을 개제절이라 부르며 한족의 구정을 축하하는 춘계에 필적할만한 성대한 축제가 벌어진다.
라마단이 지나가기까지의 며칠을 시내취재에 할당키로 하고 거리로 뛰어나가본다.
연초록빛 버드나무 새잎이 첫여름의 미풍에 잔잔하게 일렁이면서 반들반들 빛나고 거리를 메운 인파도 어쩐지 환해 보인다.
긴 채찍을 휘두르면서 소리쳐 군중을 누비고 오가는 나귀의 짐수레. 길거리에 친 텐트 밑에서는 큰 면도를 든 이발사와 머리를 절반만 반들반들하게 민 손님이 흥겨워하면서 웃고있 었다. 감숙의 특산품 백난고를 산처럼 쌓아놓은 노인이 외치는 소리. 경분(여름에 먹는 중국의 가늘고 납작한 국수)을 소리쳐 팔면서 뭉뚱한 중년부인이 한아름이나 됨직한 두부에 식칼을 들이대고 있다.
미리 예측했던 <단식중의 도시>의 이미지와는 동떨어진 활기,
시끌떠들썩한 소리와 웃음소리가 구석구석까지 넘친다.
거리로 향한 어떤집 문전에 많은 사람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몸을 다 붙이다시피 하고 늘어서 있다. 문 옆에 놓인 책상 앞에서는 젊은 남자가 혀를 날름거리면서 돈을 세느라고 정신이 팔려있다.
이런 풍경이 1백m 간격으로 펼쳐졌다. 최근에 급격히 늘어난 비디오 상영관인데 입장료는 1인당 3각(약 1백원). 더러는 이값으로 다과까지 서비스하는 곳도 있다. 거리의 사람들은 약간 열린 문틈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입장료를 내고 안에 들어가보니 다섯간쯤 되는 넓은 바닥에 늘어놓인 긴 의자는 모조리 흰 모자를 쓴 남자들로 채워져 있고 서서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천장 가까이에 선반을 매고 14인치 TV를 설치하여 외국제 비디오로 재생되는 홍콩의 TV영화를 관객은 고개를 쳐든 자세로 꼼짝도 않고 올려다보고 있다. 입장료 3각은 점심 한끼니값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단식기간중 노동자들 누구나가 융통할수 있는 액수인 것이다. 라마단월 동안에 이슬람교도의 식당은 모두 폐쇄된다.
멀리 보이는 높은 탑 위에서 사방을 내려다보며 한 남자가 노래를 부르듯 긴 선율로 외치기 시작했다. 이 화재감시망루 같은 탑은 하루에 다섯번의 예배시각을 알릴 때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위한 것이다. 탑을 목표로 좁은 골목을 따라 걸어가자 어느덧 이 길목 저 길목에서 쏟아져 나온 인파가 사원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이윽고 <청진사> 라는 간판이 걸린 작은 사원이 보이고 흰 모자를교를 가리키는 중국어로 사용되어 그 밑에<사>가 불으면 이슬람사원, <청진식당><청진반관>이라고 쓰면 돼지고기를 절대로 안먹는 회교도릍 위한 레스토랑(회민식당)을 가리킨다.
이슬람사원에는 아혼이라 불리는 장로격인 도사가 있어 대개 더부룩한 수염으로 얼굴을 묻고 위엄을 떨치고 있는데 이곳 아혼 역시 70이 넘은 노인으로 보이는데도 눈빛이 형형하고 목소리도 묵직하게 울린다.
아혼의 허락을 받고 탑에 올랐다. 나선형 계단은 가파랐다. 탑 꼭대기에서는 임하시의 전경이 거의 보인다. 사면팔방의 길을 메우고 모여드는 사람들의 줄은 아직도 이어져 있다. 사원에 이어진 건물 앞에 열대여섯명의 젊은이들이 앉아서 손을 씻고 있다.
이어서 입안을 부시고, 낮을 씻고, 두 팔, 머리, 두 귀, 그리고 발을 씻는다. 사원부설학교의 학생들인데 예배전에 심신을 정화하는 회교도의 수칙이었다. 단식중에는 하루 다섯번씩 예배를 올리는 것이 의무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몸을 씻는 순서가 세밀하게 정해진 이 일을 하루에 다섯번씩 되풀이하는 셈이다.
예배시각이 된 모양이다. 양파모양의 지붕이 늘어선 본래의 이슬람사원도 임하에는 적지 않으나 이 청진사는 중국전통의 궁전양식사원으로서 옆으로 길게 뻗은 건물 지붕엔 녹색의 기와가 물결모양을 이루고 있다. 넓은 예배장 서쪽 정면에는 메카의 카바신전이 그려진 두꺼운 장막이 쳐져 있었다.
3백명쯤 되는 신자는 아혼을 선두로 신전을 향해 서서<알라후 아크발> (알라는 위대하다)이라고 외치고 두 손을 귀 언저리까지 올린다. 이것은 알라에대한 완전한 복종을 표명한 것을 뜻하는 동작이다.
때로는 두 손을 무릎에 놓고 앞으로 숙이고 때로는 융단 위에 엎드려 이마를 대면서 기도는 3시간 남짓이나 이어졌다. 사람들이 떠난 뒤에도 예배를 계속하는 신자가 여기 저기 남아서 알라에 대한 기원을 중얼거리고 있다.
회족은 회민 또는 회회라고도 불리는 소수민족으로서 서쪽 이슬람교권에서의 내왕자와 한족, 그밖에 소수민족과의 장기간에 걸친 혼혈융화 끝에 형성되었다.
7세기 중엽에 광주·천주·항주·장안등에 소수지만 회교도인아랍인·페르시아인이 교역을 위해 정착했으나 민족으로 형성된 것은 13세기의 「칭기즈칸」 서왕이래로 알려져 였다. 전투 때마다 수많은 중앙아시아의 여러 민족, 아랍인·페르시아인 병사·직공·부녀자, 그리고 학자·귀족등이 강제로 이주당했다.
색목인이라 불리며 회회라고 일컬어지는 그들이 한족을 비롯하여 몽고족·위글족등과 결합하여 형성된 것이 회족이다.
장기간 한족과 섞여 살았기 때문에 종교활동이나 일부의 생활용어를 빼고는 회족의 말은 한어와 한자가 사용되고 있다. 한화한 이슬람교도 회족은 근원만은 터키계·이란계·아랍계로 다양하지만 경건한 이슬람교도로서 튼튼한 유대를 가지고 있다.
라마단이 끝나는 시기는 다음의 취재지 퉁샹족 자치현에서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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