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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이건 당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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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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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런던특파원

영국 북웨일스에 카나번이란 마을이 있다. 1300년 전후 에드워드 1세가 웨일스를 정벌하고 세운 성들 중 하나인 카나번 성으로 유명하다. 1969년 찰스 왕세자가 왕세자 책봉식을 치른 곳이기도 하다. 성 바로 옆 광장에 동상이 있다. 고색창연한 주변과 달리 현대적 느낌이다. 바로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다. 제1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 총리 말이다. 55년간 이곳의 의원이었다.

역대 총리 중 유일하게 웨일스어를 모국어로 구사했던 그는 ‘웨일스에서 온 마법사’로 불렸다. 탁월한 정치 역량으로 각종 개혁 조치를 도입했는데 복지가 대표적이었다. 자유주의자였지만 부자 증세를 했다.

그에겐 허버트 애스퀴스란 강력한 당내 경쟁자가 있었다. “애스퀴스하의 자유당은 새로움을 보여줄 수 없었고 변화를 이끌 수 있었던 로이드 조지는 자유당의 주류로부터 소외돼 있었다”(『정당은 어떻게 몰락하나?』)는 평가였다. 그는 정치적으로 비상(飛上)했으나 자유당은 허물어져 갔다. 20년대 중반 노동당 정부의 출범을 지원한 게 자유당엔 결국 ‘독약’이 됐다.

그 후신인 자유민주당이 집권한 게 2010년 보수당과의 연정을 통해서였다. 5년 후 총선 민의는 참혹했다. 59석의 정당은 8석이 됐다. 90년 만에 되풀이된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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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당도 아니다.”

자유당 얘기를 길게 한 건 이 외침 때문이다. 새누리당 중진의 탄식이라고 들었다. 진실로 진실이다. 집권여당 대표가 단식하는 것도 기이한데 대표가 등원 지시를 했다가 몇 시간도 안 돼 면박만 당했다. 5년 주기로 여당이 망가지는 걸 보지만 올해 유독 낯 뜨겁다.

새누리당이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이제부턴 청와대와 이해가 다르다는 점이다. 청와대가 초연한 데라지만 현 청와대는 더더욱 그렇다. 모질어 보일 정도다. 현재가 아닌 역사와 대화 중이어서 그럴 게다.

새누리당은 내년 심판대에 선다. 어쩌면 다들 마음 깊은 곳에선, 야권 분열 속에 치르는 대선이라면 필승이라고 믿고 있을지 모르겠다. 이른바 구도론이다. 순진하다.

보수는 부패해도 일은 좀 한다고 했다. 지금은 부패한데 일을 못하거나 안 한다고들 여긴다. “일하고 싶다” 는데 무슨 일을 하려는지, 하고 싶은 일이라도 있는 건지 의심한다. 유일하게 한다는 일이 ‘청와대 일’이다.

영국의 자유당은 현란한 업적에도, 불세출의 지도자들을 두고도 몰락했다. 새누리당은 유권자들의 인내심을 너무도 오래 시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