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던 사람도 찾아내 난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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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박노영수사본부장은 20일상오 이번사건의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사건 전모를 22일까지 밝히겠다고 말했다.
◇범행=14일 하오10시40분쯤 정요섭이 목포에서 상경한 황광남, 송봉수, 이동한씨와 정의 내연의 처인 김모씨등 5명이 이살롱 20호실에서, 또 장진석, 김승길, 고금석, 김동술, 김모군 등은 16호실에 각각 술을 마시러 들어갔다.
고금석이 양해룡을 부르기 위해 전화를 하러 가던중 피해자측 일행이 17호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김승길에게 연락, 김이 밖에 나왔다가 피살된 조원섭과 얘기를 나누던 중 고금석의 태도가 불손하다는 이유로 조가 시비를 걸어 김과 고가 조를 때리기 시작한 게 싸운의 발단이 됐다.
이때 조원섭이 일행에게 구원을 요청, 4~5명이 달려나와 고를 때리자 김승길도 역시 일행에게 연락하는 한편 고금석이 발목에 갖고 잇던 생선회칼을 뽑아 조를 찌르는 등 칼부림이 시작됐다.
피해자측이 달아나려 하자 김승길,김동술등이 칼을 뽑아 들고 홀안에 숨어있던 조원섭,송재익을 난자하는 한편 박영진은 유원희에게 출입문을 감시토록 지시했다.
이어 박영진,김모군이 피살된 고용수,장경식등이 숨어있던 17호실 문을 부수고 들어가 야구방망이와 칼로 이들을 살해한 뒤 사당동 정정형외과에 시체를 버리고 달아났다.
◇조직=장진석은 81년7월 「맘보파」(두목 오재흥, 32, 별명 맘보)에 김동술등과 함께 포섭돼 서울서초동등 강남일대 유흥가를 무대로 폭력을 행사해 오다 82년10월20일 두목오재흥, 부두목 조시온(32,별명 도지)등이 구속된 후 조직이 와해되자 장, 김등이 「서울목포파」를 결성, 세력을 확장중이었다.
이들은 85년9월부터 서울암사동 강동아파트81동508호에 아지트를 만들어 놓고 박영진, 김동술, 고금석, 김승길, 강정휴, 양해룡등과 함께 합숙하며 칼22자루등을 준비해 놓고 무술훈련을 했었다.
◇정요섭과의 관계=정은 장등에게 목포에 5억원상당의 땅이 생기게 되는데 1억원을 줄테니 나이트클럽을 경영, 이익금으로 생활비, 조직활동비에 사용하자며 「서울목포파」를 포섭했다.
정은 지난3월 이들에게 지프1대를 사주는 등 평소 생활, 활동비등을 지원해주며 자신의 내연의 처 김모양집을 연락처겸 활동근거지로 삼도록 했다.
◇도주=정요섭은 범행후 15일0시쯤 함께 술을 마셨던 송봉수씨등 일행과 내연의처 집으로 갔다.
이들은 15일 상오7시 최영철 국회부의장집으로 갔으나 만나지 못하고 시내를 전전하다 하오5시쯤 김양의 친구집에 도착, 유원희의 애인 박모양으로부터 김동술, 박영진, 장진석,유원희등이 과천주공아파트 박양의 어머니집에 있다는 연락을 받고 그곳으로 가 만나 도주문제를 상의했다.
정등 4명은 경찰에 자수.
장, 김등은 서울4나1313승용차로 장의 친구인 경기도구리시의 송모씨집으로 가 칼을 보관시킨 후 20만원을 빌어 다시 과천 박모양집으로 갔다.
이곳에서 박영진과 합류해 하룻밤, 과천야산에서 하룻밤을 자고 17일 새벽 유원희의 친구 윤일규의 봉고차로 전주로 가 이틀을 자고 18일 전북임실에 갔다가 19일 검거됐다.
고금석은 15일0시쯤 강정휴와 함께 합숙하던 강동아파트로 가 양해룡을 불러 내 수원, 대전을 거쳐 부산 친구집으로 갔다가 김동술의 전화를 받고 지시에 따라 16일상오5시30분쯤 상경, 강과 연락한 후 자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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