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파 폭력배간 주도권 쟁탈전"|룸살롱 칼부림사건 취재기자 방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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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영동 룸살롱 조직폭력배 칼부림 사건은 수사가 진전됨에 따라 폭력조직의 베일이 하나씩 벗겨져 충격을 더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은 현재 강남일대 유흥가를 주름잡고 있는 목포출신 조직폭력배 8개파중 구파와 신파를 대표하는 2개 조직간에 벌어진 유흥가 주도권 쟁탈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 피습된 고룡수 일파는 82년 조직된 「목포구파」로 이 조직이 동요하기 시작한 것은 두목 고씨가 84년 5월 교통사고를 내 실형을 살면서부터였습니다.
이후 강남 곳곳에서 다른 칼잡이조직에 밀리기 시작한 구파는 조직원들이 하나 둘 고향 목포와 해남등으로 내려가면서 세력이 급격히 약화됐지요.
이틈에 정요섭이 금년초 칼잡이 행동책인 장진석(25)과 손잡아 장이 모대학교 재학때 결성한 목포출신 「7인조 칼잡이」를 중심으로 「목포신파」를 구성하면서 이 두파간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지요.
장일파는 고의 구파가 평소 선배로 접대해줄 것을 요구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었는뎨다 고씨가 지난 14일 출감, 조직을 개편·강화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이 사건은 결국 두 조직간에 이런 갈등상태가 고씨 출감을 계기로 폭발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암혹세계의 엄격한 규율과 상명하복의 행동강령에 대해 수사관들은 혀를 내두르더군요.
이번 사건의 가해자측 행동대장인 장률석은 부하폭력배들에 의해 신으로 모셔지고 있습니다. 스스로도 『나는 폭력배가 아니라 사무라이(무사)다』라고 칭하며 「전쟁」(명령에 의해 상대방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치르러 갈 때는 항상 낚시 가방에 일본도·생선회칼·야구방망이등을 넣어 부하들의 완벽한 경호를 받았다고 해요.
장이 목포에 내려가면 보통 B여관 5층을 전부 쓰는데 장의 숙소 앞에는 부하들이 철야로 보초를 선다더군요. 장이 룸살롱에 나타나면 입구에서 룸까지 정장을 한 부하들이 양쪽으로 도열, 힘을 과시했다더군요.
장이 승용차를 타고 목포시내에 나타나면 부하4명이 승용차 앞뒤에서 뛰어가면서 경호를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장은 모대학 후배중 동향출신으로 「잘생기고 덩치크고 기술좋은」후배들을 점찍어 학비와 생활비를 대주면서 부하로 포섭, 이들을 계룡산으로 끌고 가 「지옥훈련」이라는 스파르타식 훈련을 시킵니다. 1개월에 달하는 이 훈련중 장은 1인당 개10마리씩을 주어 칼로 찔러 죽이는 연습을 시켜 잔인성을 가르쳐 갔습니다.
장은 숨진 고룡수와는 절친한 사이였으나 최근 장의 세력이 커지면서 관계가 멀어졌다더군요. 특히 고는 84년5월 교통사고를 내기전까지 장의 누이와 사귀어 그때까지 장은 고를『형님』으로 부르며 따랐다고 하더군요.
유명 정치인들의 이름이 등장한 것도 흥미거리 아닙니까.
가해조직의 매니저인 정요섭은 재야정치인 김상현씨(민주대학이사장)와 교류가 있었고 사건직 후인 15일 상오에는 목포출신 최영철 국회부의장(민정)의 집을 찾아간 것으로 밝혀져 정의 조직이 정치세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짙게 했습니다.
김상현씨는 민주대학의 일을 돕고 있는 함윤직씨의 소개로 1년전에 정을 알게 돼 5∼6차례 만난 적은있으나 정이 주먹 세계의 보스인 줄은 몰랐다고 말해 특별한 관계는 아니었다고 밝혔습니다.
최부의장도 정과 함께 술을 마신 황광남씨는 고교후배로 잘 알지만 정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밝혔는데 정은 목포시 죽교동의 개펄매립공사와 관련, 3억원을 융자받기위해 최부의장에게 부탁하러 황씨와 함께 찾아갔었다는 것입니다.
-사건발생 첫보도에서 중앙일보가 정요섭을 이번 사건의 주역으로 부각시켜 그의 사진을 싣고 주목한 것은 타지를 앞지른 히트였지요.
-사건당일 가장 먼저 정의 집을 찾아갔던 것이 대어를 낚은 셈이 됐습니다.
여러가지 좋은 사진도 구할 수 있었구요. 경찰이 거의 동시에 도착해 정의 부인과 큰아들을 데리고가는 바람에 두 딸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들이 정이 집에서는 거의 생활하지 않고 1주일∼한달씩 집을 비우다 낮에만 잠깐 들를 뿐이며 아버지의 직업이나 과거 경력조차도 모르고 있어 잠시 난감했었죠.
그러나 딸듈에게서 정의 승용차가 시체운반에 사용돼 수배된 2대의 차중 하나인 서울1머7189 로열프린스임을 알아냈고 이웃 주민들로부터 정의 집에 유도를 하는 후배라는 주먹들이 3∼5명씩 자주 드나들었다는 것을 확인한데다 범인들이 병원에서 빼내간 입원환자 홍씨가 정의 집에 드나들었다는 사실, 입원당시 홍씨의 수술보증인이 정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내 이번 사건의 열쇠는 정이 쥐고 있다고 자신있게 만단했던 것입니다.
「경찰은 정요섭등 행동대 4명이 자수한 것은 폭력조직 특유의 조직보호를 위한 꼬리자르기 계략으로 보고 있습니다. 매니저인 정은 자신은 기껏해야 범인들의 도피를 방조했거나 범인을 은닉한 죄에 대한 처벌만 받으면 되고 행동대 4명은 어차피 조직 보호를 위해 희생시킬 수 밖에 없다고 판단을 내리고 스스로 경찰서에 걸어들어왔다는 게 경찰의 설명입니다.
-도피함으로써 조직 전체가 뒤집어 쓸 큰 책임을 스스로 나타나 우발적 단순범행이라고 주장, 다른 조직원들이 피신할 시간을 벌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때문에 중앙일보 취재진은 사건 직후 분명히 범인들이 자수해올 것이란 확신을 갖고 정의 자수신고전화를 확인, 서장과의 통학내용을 15일 하오 단독보도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경찰은 정이 범죄단체 조직에 대한 죄가를 받을 수 밖에 없어 그가 계산했던 것처럼 범인도 피방조나 은닉죄만으로 가볍게 처벌받을 수도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에서도 경찰의 소아병적인 보도 기피는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두목 정이 자수한 16일 상오11시쯤 조사결과를 발표하라고 요구하는 기자들 앞에 수사본부장인 이석찬 서초경찰서장이 조사결과를 적은 메모지를 들고 나타났죠.
이때 기자들의 모든 시선과 주의가 이서장에게 쏠리고 있는 사이 자수한 정이 자수당시 입고 있던 하늘색 남방을 노란무늬 남방으로 갈아 입히고 안경을 쓰게 해 변장시킨 뒤 형사들이 인솔, 수사본부의 취재기자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가 결국 서장이 바람잡이 역할을 하는 촌극도 있었습니다. 이때 이서장의 발표 내용은 전혀 알맹이가 없는 것이었으니까요.
경찰은 이번 사건이 터지자 조직간의 싸움이 아니고 우발사건이라며 이 사건을 축소하려 했어요.
시경의 한 간부는 사건 직후 기자실에 찾아와 『술먹다가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이라며 사소한 일인 것처럼 연막을 치기도 했습니다.
경찰은 또 범인중 4명이 16일 상오 서초경찰서에 자수했는데도 관악서에 자수했다는 등 바람까지 잡아 기자들을 골탕먹였어요.
이번 수사에서는 혼선도 많았어요. 칼잡이로 지명수배된 박성길은 강간죄로 교도소에 복역중이란 사실이 뒤늦게 목포경찰서에서 밝혀졌지요. 이 바람에 수사본부는 부랴부랴 박성길이 아닌 김승길이 범인이라고 바꿔 수배했지요.
-또 피해자중 카운터에 숨어 목숨을 건진 이왕규씨는 사건 발생 전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밤 일이 터질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잘못 알려졌으나 수사결과 이씨는 사건직후 남서울호텔로 도망가 경찰에 신고를 한 뒤 삼정호텔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찾아가 『일이 터졌다』라며 도움을 청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인물인 정요섭이 17일 자수직전 사건수사 본부인 남3로 파출소 주변을 40여분간 배회한 사실이 밝혀져 경찰의 검문검색이 얼마나 엉성한가를 보여주었어요.
경찰은 사건 직후 검문검색을 강화하는 등 법석을 떨었지만 결국 코앞에서 활보하던 범인을 수수방관한 꼴이 돼버렸어요.
일선 경찰관들도 공조수사는 커녕 이 사건을 마치 강건너 불보듯 하는 모습도 보여 입맛이 개운치 않았어요.
이 사건의 피해자는 피해자끼리, 가해자는 가해자대로 사전에 입을 맞추고 나와 경찰에서 진술한 흔적이 역력했어요.
피해자와 함께 있었던 천종갑씨는 경찰에 츨두해서 첫마디가 『우발적인 사건 같다』며 애써 이 사건을 축소하려는 인상이었습니다.
피해자나 가해자나 이 사건이 여론화되는 것을 피해조직내부에서 조용히 해결하려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
-참고인들도 경찰진술조사과정에서 진술을 엇갈리게 해 경찰이 추궁하자 『입을 맞춘 것과 다르잖아』라고 서로를 책망하며 당황하는 모습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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