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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미안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얘들아, 방학도 끝날 날이 멀지 않았구나.탐 구생활이랑 숙제는 제대로 되어가는지 궁금하다. 요 며칠새 큰놈은 Y캠프, 작은 녀석은 학교에서 하는 스카웃야영훈련을 다녀왔으니 방학초반의 프로그램은 대충 넘어간 셈이지. 허나 너희들이 바라는게 그것만이 아닌 것은 같안단다. 40일이나 쉬는 동안 다른 집처럼 엄마·아빠랑 같이 어디 가까운 교외에 한번 나가서 바람도 씌고 불고기에 냉면이라도 한그릇 사먹는다든가, 아니면 풀에서 한나절 신나게 수영을 즐기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거겠지. 또 기분나면 시원한 백화점에 가서 선물이라도 하나 챙겼으면 더좋고….
하지만 아빠의 얘기도 좀 들어보렴. 7월말엔 서울국제가요제 때문에 좀 바빴고 회사일도 요즘 날씨만큼이나 뜨겁단다. 8월 초하루에는 아시아경기대회 50일전 특집방송에다 강변가요제, 봉황기 고등학교야구, 젊음의 음악캠프, 그리고 앞으로도 광복절, 국립박물관이전, 창경궁복원, 현대미술관개관, 한강축제 등 방송과 관계있는 큰 행사들이 이달 안에 줄을 잇고있다.
게다가 너희들도 아는 것처럼 이 아빠는 매일아침 생방송 때문에 일찍 나와야 하고, 일요일에는 『장학퀴즈』녹화에다 『뉴스데스크』까지 해야하니 서로 얼굴 대하기조차 민망스럽구나. 그래도 자상한 엄마가 있어 망정이지, 방학이라고 제대로 어울려주지 못하는 아빠가 좋은 점수를받지 못하고 있다는걸 잘 안다.
그런데 얘들아! 리비아에 가 계신 강욱이 아빠네와 전방에서 근무하는 돌이네 아빠를 생각해 보렴. 비록 우리는 식탁에 마주 앉지는 못해도 매일 서로 얼굴을 볼 수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한 일이니? 또 옛날에는 보릿고개는 있었어도 바캉스란건 없었단다.
그리고 언젠가는, 언젠가는 이 아빠도 아무 일 않고 푸욱 쉴 날이 있을꺼야. 그때 몇 곱절뜨거운 가슴으로 안아주마. 그래도 정 이번 방학동안 기다리기 힘들면 집뒤의 오금공원에 김밥이라도 싸들고 가자꾸나.
얘들아!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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