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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대통령제」에 수상 옷 입힌 격|모습 드러낸 민정당의 헌법개정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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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정당은 당 개헌안 요강을 확정함으로써 지난 3개월에 걸친 당 개헌안 마련작업을 사실상 마무리짓고 이제 공식기구의 추인 절차를 밟는 단계로 들어갔다.
개헌안요강작성소위(위원장 이치호 의원)의 확정 안이 당총재보고과정(16일), 의원총회(18일), 중집 위(19일), 중앙위운영의(22일)등의 토론 및 당론 최종결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일부 내용이나 명칭이 수정될 가능성도 예상되나 일단 골격은 짜여진 것이라 보여진다.
민정당 개헌안요강은 예상대로 △권력구조에 있어 수상 제 정부형태로 순수한 내각책임제를 채택했고 △기본권을 괄목할 정도로 신장시켰으며 △사법권을 상당히 강화해 민주화 열망추세에 나름대로 부응하고 있다.
민정당은 민주발전이라는 시대적 추세를 수용하고 야당 측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공세에 대항한다는 차원에서 △순수한 내각책임제의 지향 △권력분산 △유신잔재의 청산을 개헌안마련의 기조로 삼았다.
그러나 이같은 대 전제하에 마련된 요강은 권력구조에 있어 수상중심내각제를 채택, 현재의 강력한 대통령권한을 모조리 수상에게 집중시킴으로써 권력분산이라는 스스로가 정한 원칙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이중의 내각안정장치를 두어 대통령제의 대통령을 수상으로 명칭만 바꾸었을 뿐 대통령과 다름없는 수상을 국회간선제로 하고 있다는 등의 비판론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민정당 요강에 따르면 대통령은 △국회에서 선출되며 임기5년에 1차 중임이 허용되고 △상징적 국가원수로서 의례적 권한만 부여되며 △당선직후 의원직사퇴 및 당적이탈을 하도록 하고 있다.
제2 공화국헌법을 모델로 삼았다 하나 당시 대통령에게 귀속됐던 총리지명권이나 국군통수권·비상대권은 부여하지 않고 있다.
내각책임제하의 대통령이 상징적·의전 적 기능을 담당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국가위기 시 이를 수습하는 조절적·균제적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며 정당에 초연한 중립적 권력의 하나로서 헌법수호자의 기능을 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민정당 안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민정당은 제2공화국시절대통령과 총리의 대립이라는 쓰라린 경험을 되밟지 않고 남-북 대치상황에서의 효율적 위기관리를 가능케 하고 절충형 정부형태에 대한 국민의 오해소지를 만들지 않겠다는 데 신경을 쓴 나머지 대통령권한을 약화, 예감에게 모든 권한을 집중시켰다고 한다.
수상은 △국회에서 대통령 지명 없이 뽑고 △국군통수권·비상대권 등 실질적 통치권과 행정권을 부여받고 대법원장 제청 권 등을 행사하며 △국정자문회의·국가안보회의·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감사원·국가안전기획부를 산하에 두고 있다.
수상은 또 의회해산 권을 2년 이내에는 행사하지 못하나 역으로 내각출범 후 2년 이내에는 국회의 불신임 권 발동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그후에도 후임수상이 선출되지 않으면 불신임 권이 발동되지 못하도록 한 이중의 안정장치로 보호받고 있다.
그래서 수상은 의원내각제에 걸맞지 않는「유사임기 제」또는「준 임기 제」의 성격을 띠는 데다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되어 우리의 정치문화풍토에서는「국회선출의 황제」로 군림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특히 △대통령에게 형식적이나마 수상지명권과 비상대권을 주지 않는 점 △국회의 불신임 권 발동을 어렵게 한 안정장치를 이중으로 설정한 점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의 임명제청 권을 행정부의 수반인 수상에 준 점 등이 삼권분립의 원칙에 부합되며 과연 합당한 것인지 문제시되고 있다.
비상대권은 내각책임제 하에서 실질적으로는 내각이 행사하지만 형식적으로는 국가원수인 대통령에게 귀속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며, 행정부와 사법부가 대등해야 하는데도 행정부수반이 사업부 수장을 실질적으로 임명케 하는 것은 삼권분립정신에 어긋나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민정당 측은 △권한행사에 대한 대통령과 수상간의 분쟁여지를 없애고 △효율적인 위기관리 △내각책임제의 취약요인으로 꼽히는 정국불안정을 미연에 방지하고 △대법원장 제청 권의 경우 다른 많은 의원내각제국가에서도 수상이 행사한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민정당 측은 △권력분산을 강조한 것은 야당 측의 대통령직선제를 깨기 위한 초동적 대응전략으로 나온 것이며 △수상에 대한 권력집중은 이른바「민주적 집중」으로서 정국불안정에 대한 안전판이며 △대통령중심제의 대통령권한이 절대화하는데 반해 내각책임제의 수상권한은 상대적인 것이라고 옹호하고 있다.
민정당 측은 의원내각제의 행정부와 입법부는 통합적 경향의 공화 관계에 있고 따라서 대통령제하의 국회가 무력했던 것과는 달리 국회는 실질적 3부의 하나로서 역할하며 야당도 한몫을 갖고 동참하는 관계임을 강조한다.
국무총리를 수상으로 개칭한 것도 대통령중심제하의 무력한 국무총리 상을 불식하고, 또 각료 중 수장이란 뜻에 보다 충실하기 위해서라고 하나 일부에서는 어색하다는 지적이 있다. 수상이라고 하면서도 각료는 현행대로 장관이라는 명칭을 쓰도록 한다는 것이다.
국회에 있어서는 △의원임기 5년 △대통령 및 수상의 선출 △회기일수 1백80일(현행 1백50일) △국정조사권 발동요건완화 등 이 특색인데 임기5년은 대통령임기와 일치 화하고 또 해산에 대비한 여유를 두기 위해서라고 한다.
국정감사권은 국회의 대행정부 견제의 중요수단으로 부활이 기대됐으나 감사원과의 기능관계를 고려, 국정조사권의 발동요건완화로 조정했다는 설명이다.
의원선거제도는 일단 현행대로 두기로 했는데 이는 여야협상에 대비한 복안을 드러내지 않기 위한 배려인 것 같다.
요강 중 가장 평가받을 대목은 기본권분야다. 기본권은 △구속적 부심을 헌법사항으로 부활하고 △언론·출판의 사전검열 금지조항을 신설했으며 △노동3권 중 단체행동권의 유보조항을 삭제했고 △영장 없는 구금·연행도 할 수 없게 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제한을 「불가피한 경우 최소한의 범위에 한하여」로 엄격 화했다.
이에 반해 사법권독립은 단순히 행정수반인 수상이 대법원장과 대법원판사를 제정케 함으로써 인사의 독립성을 기하는데 미진할 뿐 아니라 삼권분립의 이론에도 걸맞지 않는다는 평이다.
그러나 △대법원에 위헌심사 권과 정당해산 권 등의 권한을 부여하고 △유명무실한 헌법위원회를 폐지한 점 등은 사법권독립강화를 위한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당초 고려됐던 법관추천회의 제도는 법원이 경선 열기에 싸이고 그로 인해 논공행상 식 인사경향을 배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60년대 초 이 제도실시 때 선거결과에 불복한 재야법 조인들이 대법원장당선 무효소송을 제기했던 부정적 요인들이 참작되었다. 또 법원 측이 법관추천회의 제도를 반대하고 있는 것도 이 제도를 채택하지 않은 큰 요인이다.
이밖에 경제조항은 기업집중·시장지배 등에 대한 규제조항의 강화, 또는 신설이 활발히 거론됐으나 독과점 및 경제력남용에 대한 규제와 조정을 가능케 하는 선언적 보완책으로 낙착되고 말았다.
또 개헌발의권을 행정부에는 주지 않고 국회에만 부여한 것과 탄핵심판위원회의 설치도 지적될 사항이다.
민정당 안은 종합적으로 보면 권력분산이라는 구호와는 달리 수상에게 권력을 집중시켰을 뿐 아니라 수상불신임에 대한 이중의 안정장치를 두어 책임정치의 구현이란 내각책임제 본연의 장점을 좁혔다는 점이 당내에서조차 논쟁의 소지가 될 것 같다.
민정당 요강은 아직 6인 소위 안이라는 점과 앞으로의 대야 협상을 염두에 두고 짜여진 것으로 보이지만 확정과정에서 어느 정도 변모를 보일지 주목된다. <이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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