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폐차할 경유차 고쳐오라는 환경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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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이모씨는 연식이 2003년인 경유 화물차를 조기폐차하기 위해 자비로 수십만원을 내고 연료라인을 고쳤다. 이씨가 폐차할 차를 수리까지 한 이유는 관련 법규에 있다. 조기폐차란 연식이 2005년 이전인 경유차를 차주가 일찍 폐차하기로 결정하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해당 차의 잔존가를 지원하는 제도다. 2005년 이전 경유차는 배출가스 저감장치(DPF)가 부착돼 있지 않아 이후에 생산된 경유차보다 배출가스를 8.1배 많이 배출한다. 정부는 지난 6월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한 특별대책으로 이 제도를 시행 중이다. 그런데 조기폐차 지원 정책의 근거인 ‘수도권 대기환경 개선에 관한 특별법’ 시행규칙엔 조기폐차 신청 조건이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른 정밀검사 결과 적합 판정을 받은 차’로 규정돼 있다.

2005년 이전 차량 조기폐차 지원
배출가스 기준 맞춰야 접수해줘

이씨는 지난 1월 검사에서 배출가스가 허용 기준(20%)을 초과한 22%로 판정받아 조기폐차를 신청하기 위해 수리를 한 것이다. 수리 후 재검사 결과는 배출가스 18%로 나왔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은 26일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배출 기준을 초과하는 차량부터 폐차하는 게 상식 아니냐. 폐차 차주에게 배출 기준을 맞춰서 오라는 것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말했다.

환경부는 조기폐차를 적극 유도하는 게 미세먼지를 줄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감사원의 지적을 수용했다. 조기폐차 때 차주에게 지원하는 보조금도 늘렸다. 2000~2005년 경유차는 잔존가의 85%를 보조금으로 줬으나 100% 지급으로 바꾼 것이다. 하지만 ‘정밀검사 적합 판정을 받은 차’라는 요건은 그대로 놔뒀다.

성시윤 기자 sung.si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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