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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알 수도 있는 사람 #8. 몽월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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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몽월당이라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요즘 식당 이름치곤 너무 고루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용주는 속도를 줄이며 뒤편을 살폈다. 길만 연의 꼬리처럼 구불구불 따라왔다.

몽월당의 마당은 자갈밭이었다. 스쿠프가 지나갈 때 자갈이 부딪히며 경쾌한 소리를 연주했다. 주차장 오른편에 노란색의 승합차 한 대와 4륜 구동의 회색 지프차 한 대가 서서 늘어지게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맞은편 터에는 수백 개의 장독이 바닥 위에 달라붙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듯 번들거렸다. 사방은 고즈넉했다. 몽월당은 국도에서 5분 남짓 산 쪽으로 들어온 터라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음은 들리지 않았다. 차에서 내린 용주는 들어온 길을 뒤돌아보았다. 몽월당은 산 중턱쯤에 자리를 잡아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몽월당은 오른쪽과 왼쪽 그리고 뒤편이 제법 가파른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시야가 시원스럽게 터진 자리에 둥지 속의 매처럼 시선을 멀리 두고 앉아 있었다.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대문 위에 굵게 양각된 현판의 글자가 지긋한 눈길로 용주를 내려다보았다.

“근사한데···.”

먼저 취재를 끝낸 다른 곳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취재가 끝난 다른 네 곳은 드나드는 차나 사람들로 번잡했다. 주차장은 쉴 새 없는 엔진 소리로 몸살을 앓았고 음식점 안은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사람들로 들썩거렸다. 가게의 주인들은 바쁜 일과와 손님들이 건넨 술잔 때문에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돌아다녔다. 깊은 저녁에도 손님들이 찾아와 소란을 떨며 방을 구했다. 그런데 몽월당은 달랐다. 한적하다 못해 적막했다. 취재를 끝낸 다른 음식점들에서 ‘슬로우 푸드’라는 분위기를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몽월당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 말이 실감 났다.

용주는 취재 가방에서 사진기를 꺼내 먼저 몽월당의 주변 풍경을 찍었다. 대지의 털 인양 융기한 수백 개의 장독, 화석처럼 단단하고 오래되어 보이는 몽월당 현판, 활짝 열린 대문 안 마당의 연못과 배롱나무 두 그루, 해풍을 대적하려는 듯 대문 양편으로 팔을 활짝 펼친 긴 돌담, 수평선 너머로 뒷걸음질 치는 햇빛을 끌어안은 몽월당의 전경, 빛이 강해 더 짙어진 뒷마당 가죽나무 숲의 그늘, 가지런한 키를 자랑하는 상추밭, 대문의 긴 직사각형을 통해 보이는 그만한 크기로 조각난 하늘과 바다.

“누구세요?”

용주는 대문 안으로 들어가 대문 밖의 풍경을 렌즈에 담고 있었다. 렌즈에서 눈을 떼고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 청포 빛의 개량 한복을 입고 있는 여자가 서 있었다. 쪽진 머리, 반듯하게 대칭을 이룬 얼굴, 갸름하면서 잡티 한 점 없는 낯, 두툼한 아랫입술과 약간 튀어나온 광대뼈. 순간 시대를 훌쩍 건너뛰어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도시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차림과 분위기의 여자였다. 여자는 흰 고무신을 신은 발을 모은 채 서서 용주에게 눈길을 주었다. 여자의 눈은 축축해 보였다. 산도 땅도 대기도 건조한 계절이라 축축한 그녀의 눈은 낯설고 신선했다. 용주는 황급하게 카메라 가방 옆 지퍼를 열고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월간 ‘문화’ 객원기자 장용주.

“사장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오늘 방문한다고 삼일 전에 전화를 드렸었는데요.”

여자는 명함을 들여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입꼬리가 광대의 미소처럼 표시 나게 위로 올라갔다.

“저를 찾아오셨군요.”

용주는 놀랐다. 여자가 운영하기에 몽월당의 규모는 제법 컸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미소를 지었다. 미소 지을 때 눈꼬리가 미세하게 아래로 내려갔다. 야릇한 눈 미소였다. 문득 용미와 닮은 미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용주를 방으로 안내했다. 그녀를 따라가는 마당길은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발바닥이 거칠게 스쳤다. 바닥에 깔린 돌은 화강암이었다. 그녀는 용주 앞에 서서 걸으며 그를 안내했다. 용주는 그녀의 뒤를 따라가면서 뒷모습을 살폈다. 개량 한복을 입고 있어 그녀의 뒤태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그녀의 나이도 가늠이 되질 않았다. 용주는 여자의 나이가 이십 대 후반이나 삼십 대 초반쯤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몽월당은 ‘ㄷ’자 형태의 한옥이었다. 마당 한가운데에 물이 흐르는 연못이 있었고 연못 가운데 마른 분수대가 삐죽 솟아 있었다. 연못가는 둘레를 뺑 둘러 발을 물에 담근 노란 꽃이 보였다. 노란 창포였다. 창포는 잔바람이 일으켜준 물결을 타고 한가롭게 흔들거렸다. 마루로 향하는 계단은 가팔랐고 마루에서 대들보까지의 높이 또한 여느 한옥 집과 달리 높았다. 댓돌은 발길에 닳아 반들거렸다. 손님이 하나도 없는 듯했다.

“전화 연락받고 방에서 바다가 내다보이는 방을 준비해 놨습니다.”

그녀는 용주가 신발을 벗고 대청마루로 올라서자 말했다. 대청마루 안쪽으로 들어가자 오른편과 왼편에 다시 복도길이 열려 있었다. 그녀는 왼쪽 복도를 타고 들어갔다. 복도를 따라 방들이 마주 보고 있었다. 어느 방에선가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복도 막다른 곳에서 그녀는 다시 왼쪽으로 돌았다. 그러자 어둡던 복도가 환해지고 바다로 향한 창이 나타났다. 그중 마지막 방으로 용주를 안내했다.

“이 방입니다.”

그녀가 문을 열었다. 문은 이중문이었다. 그녀가 사뿐히 방안으로 들어갔다. 용주도 그녀에게 이끌려 들어갔다. 방은 생각보다 넓었다. 안에 욕실이 갖추어져 있었다. 겉보기엔 좁아 보였는데 막상 안으로 들어와 보니 무척 넓은 기이한 구조의 한옥이었다.

“지나면서 보신 방들은 그냥 식사만 하는 방이고 이렇게 복도 끝 쪽으로 묵을 수 있는 방들이 있습니다. 별채도 묵을 수 있는 방인데 여기 이 방 전망이 가장 좋아서 이 방으로 제 맘대로 정해 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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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창문을 활짝 열었다. 갑자기 핀 라이트를 받은 듯 눈이 부셨다. 창문 너머에 햇빛을 먹은 바다가 있었다. 느린 물결에 부서지는 햇살에 눈이 부셔 눈물이 고였다. 용주는 햇살에 묶인 채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 그녀가 안내해 준 방은 바다 위에 떠있었다. 잔물결은 방도 덩달아 출렁거리게 만들었다. 용주는 움직이는 방바닥 때문에 약간 현기증을 느꼈다. 창밖엔 오로지 바다만 펼쳐져 있었다. 창문가에 하루 종일 앉아있다 보면 수평선 너머로 사라진 꿈들을 건져 올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제가 먼저 뭐를 해야 하죠?”

그녀는 아찔한 현기증과 수평선의 아득함 속에 빠져 있는 용주를 현실로 끌어올렸다. 용주는 그제야 창문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다.

“머잖아 해가 질 텐데···. 해 지면 사진 찍기가 좀 까다로워질 테고···. 그러면···. 아무튼 사장님과 직원들 사진을 오늘은 찍어야 하는데···. 마침 빛도 좋고.”

햇살이 꽂힌 바닥에서 한발 물러선 용주는 허둥대며 말했다. 그녀는 용주 앞을 지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에게선 낫이 지나간 자리에서 피어오르는 풀 냄새가 났다. 용주는 어깨를 누르고 있던 가방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그녀는 인터폰을 들고 사람을 불렀다. 잠시 후 여덟 명의 여자들이 들어왔다. 적막한 곳이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종업원이 많았다. 세 명은 젊었고 다섯 명은 중년 여자였다. 그네들은 한결같이 쪽진 머리에 개량 한복을 입고 있었다. 용주는 그들을 데리고 식당 입구로 나왔다. 그녀의 독사진을 몇 컷 찍고 단체 사진도 몇 컷 찍었다. 장독대에서도 찍었고 상추밭에 사람을 세워놓고도 찍었다. 연못이 있는 정원 배롱나무 아래에서도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는 내내 여자들은 소란을 떨며 작은 소리로 낄낄거렸다. 그네들의 웃음은 명랑하면서도 한편으론 음험했다.

용주는 뜨겁고 축축하면서도 노골적인 여자들의 눈길을 슬쩍슬쩍 피했다. 지금까지 취재했던 여느 음식점과 몽월당은 분명 달랐다. 그동안 지나온 음식점들은 같은 장소에서도 중요한 인물이 빠졌다며 다시 찍기를 반복했고 때론 피사체가 된 인물 중에 누군가는 눈을 감았다거나 하품을 했다며 다시 찍어달라고 수선을 피웠다. 어느 집에선가는 카메라 속에 이미 저장된 화면을 보여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런데 몽월당 사람들은 용주가 꿰어 놓은 실에 잘 끌려오듯 군소리 없이 따랐다. 상전에게 고분고분한 하인들처럼. 그녀 역시 입을 꾹 다문 채 조용히 용주의 지시에 따랐다. 용주는 그네들을 대청마루 위에 앉게 한 후 마지막 사진을 찍었다. 머릿속에 구성해두었던 사진은 모두 찍었다.

“특별하게 몽월당에서 자랑하고 싶은 장소가 있다면 그곳에서 몇 컷 더 찍고 싶습니다.”

용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자들은 뒤란으로 향했다. 뒤란은 가죽나무 숲 그늘에 싸여 여자의 중심처럼 서늘하고 축축했다. 땅을 뚫고 올라온 바위들 위엔 이끼들이 달라붙어 숨을 쉬고 있었으며 달콤하면서도 비릿한 냄새가 풍겼다. 용주는 직감적으로 몽월당의 힘이 뒤란에 있다고 느꼈다. 뒤란 한가운데 소형 자동차 크기만 한 돌확이 몽월당의 주인인양 묵직하게 앉아 있었다. 돌확의 둘레를 감싼 파란 이끼는 돌확을 살아 숨 쉬게 만들었다. 돌확은 두꺼비를 연상시켰다.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 모으는 돌확이었다.

“우리 집은 이 물로 모든 걸 다 합니다.”

여자들이 돌확 주변에 몰려섰다. 뷰파인더 속에 그네들을 감싸 안은 가죽나무 숲이 담겼다. 사진 찍기가 끝날 무렵부터 돌확 속의 물에 회색빛 노을이 담겨 조금씩 몸을 풀었다. 저녁을 준비해야 한다며 여자들이 주방 쪽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그녀는 용주를 방으로 안내한 후 저녁을 준비하겠다며 나갔다. 용주는 마지막 취재지에서의 사진 촬영을 끝냈다는 안도감이 들어 맥이 풀렸다. 그는 창과 마주하고 있는 좌식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바다 위에 떠있는 몇 개의 섬이 태양이 풀어놓은 노을에 젖어가고 있었다. 빨갛게 익어가고 있는 수평선 위에 점처럼 배 몇 척이 꼬물거리는 게 보였다. 기이하게도 그 풍경들이 오랫동안 보아왔던 모습인양 낯설지 않고 익숙했다. 용주는 다리를 길게 뻗고 앉아 방을 점령하는 노을을 구경했다. 매끄럽게 반들거리는 상 위에 노을이 달려들어 춤을 추었다. 수면 위에서 부서지듯 춤을 추는 노을빛은 용주에게 익숙한 시간들을 내려놓게 만들었다.

상을 점령한 노을은 궁핍하고 초라한 시간들을 까마득히 오래된 화석의 이야기처럼 단단하게 만들었다. 몽월당까지 달려온 길과 시간의 피로가 용주의 어깨를 지긋이 내리눌렀다. 도로 위에 널어놓았던 긴장이 걷혔고 방광을 가득 채웠던 오만함도 사라졌다. 노을은 방을 조금씩 먹어들더니 더욱 길어지면서 용주의 얼굴에도 스며들었다. 다음 레이싱이 언제지? 안개만 안 만나면 좋겠는데…. 용주는 맥없이 중얼거렸다. 어느 순간 용미의 푸른 치마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살아 있을까? 팔과 다리가 경기를 내듯 한 차례 떨었다. 창을 뚫고 들어온 그 붉디붉은 빛이 얼굴을 쓰다듬자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며 저절로 잠이 몰려왔다. 물결을 따라 부드럽게 출렁거리는 방이 잠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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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 추계예술대학교 문예 창작학과 졸업
· 상명대 대학원 소설 창작학과 재학 중
· 2012년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로 제8회 세계문학상 수상

그 외의 작품
·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 ‘불의 기억’
· ‘13월’
· ‘9일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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