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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행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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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말 타면 견마 잡히고 싶다"는 속담이 있다. 사람 욕심이 끝이 없다는 뜻이다. 사대부가 말에 오르고, 하인에게 말을 끌게 한 것은 조선의 풍속이었다. 연암 박지원은 이를 개탄했다.

연암은 베이징으로 향하는 연행(燕行)길에서 견마 잡힌 일행을 보며 말했다. "몇십 년 안에 베갯머리에서 조그만 담뱃대 통을 말 구유로 삼아 말을 먹이게 될 걸세." 무슨 뜻인가. "(가을에 품어 나오는) 서리배 병아리를 여러 번 씨를 받아 네댓 해가 지나면, 베갯속에서 우는 꼬마 닭 침계(枕鷄)가 되네. 말도 종자가 작아지기 시작하면 나중에 침마(枕馬)가 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하겠나." 건장한 말을 타고 나는 듯이 달리는 청나라 군사와, 조랑말을 타고도 견마를 잡히며 그나마 떨어질까 두려워 떠는 조선인을 비교하며 한탄한 것이다.

연행길은 오가는 데 다섯 달이 걸리는 험한 노정이었다. 새벽엔 안개, 낮엔 먼지, 저녁엔 바람이라는 세 가지 괴로움에 시달렸다. 그러나 지적 탐구심에 불탔던 선비들에겐 견문을 넓히고 세계와 호흡할 수 있는 문명의 실크로드였다('문명의 연행길을 가다', 김태준.이승수.김일환 지음).

연행길은 명대와 청대가 달랐다. 청이 중원의 패권을 차지한 뒤 꼭 거쳐야 할 곳이 새로 생겼다. '선양(瀋陽)'이다. 1625년 선양에 도읍을 정했던 청은 국세(國勢)가 성대해진 곳이란 뜻에서 '성징(盛京)'이라 이름 짓고, 조선 사신들에게 이곳을 경유케 했다. 병자호란으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인질로 붙들려 온 곳이자 50만 조선 포로가 끌려온 곳이기도 하다. 연행길은 사신만 오갔던 게 아닌 것이다. "길에는 주인이 없다. 그 위를 가는 사람이 주인일 뿐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신경준의 말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선양을 거쳐 연행길에 올라 있다고 한다. 북.중 우호 과시로 북한 안보에 대한 불안감을 덜기 위해, 또는 중국의 개혁.개방을 배우기 위해 등 방중 목적과 관련,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어찌 됐든 중국의 도움이 필요한 처지다.

"가꾸지 못한 땅은 자기 영토가 아니고, 보살피지 못하는 백성은 자기 백성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는데 2000년 이후 벌써 네 번씩이나 연행길에 오른 김 위원장 심사는 어떨까. 연암은 연행길 요동 벌을 보며 "천하의 호곡장(好哭場)"이라 했다. 김 위원장도 이곳을 지나며 '통 크게 울어 봤는지' 모르겠다.

유상철 아시아뉴스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