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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돈 굴리는 로봇…‘인간 펀드’ 제쳤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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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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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가 결정된 지난 6월 24일. 자산운용사가 밀집된 서울 여의도 일대가 출렁였다. 한 펀드매니저는 “브렉시트 가능성이 작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처음 소식을 듣는 순간 아찔했다”고 말했다.

1호 공모펀드 5개월새 300억 돌파
누적 수익률도 1.85% ‘중박 수준’
빅데이터 무장 중위험·중수익 적합
미국 연 68% 성장, 한국은 걸음마

하지만 감정이 없는 로보어드바이저는 달랐다. 여느 때처럼 묵묵히 시장동향을 분석했다. 모니터에는 비상을 알리는 아무런 메시지나 신호가 뜨지 않았다. 이 로보어드바이저가 운용하는 펀드를 관리하는 박제우 키움투자자산운용 ETF팀장은 “(로봇이) 설정한 위험 임계점을 넘어야 자산을 매도하는데 브렉시트 이후에 변화한 지표들이 임계점을 넘지 않아 자산 포트폴리오에 변화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6월 말 잠시 마이너스로 돌아섰던 이 펀드의 수익률은 곧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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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굴리는 1호 공모펀드가 출시된 지 5개월이 지났다. 중간 성적을 체크해보니 대박도 쪽박도 아닌 중박 수준이다. 키움투자자산운용은 21일 ‘키움쿼터백글로벌로보어드바이저’ 펀드의 전체 설정액이 300억원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대표상품인 채권혼합형 펀드에 몰린 돈이 195억6000만원으로 가장 많다. 현재 누적수익률은 1.85%다. 브렉시트 직후 등 두 차례 마이너스로 떨어지기도 했지만 7월 이후부터 회복세다. 8월에 처음 3%대로 올라서 이달 8일에는 4.43%를 기록하기도 했다.

로보어드바이저의 큰 무기는 빅데이터다. 사람이 다 처리할 수 없는 방대한 양의 정보를 소화해 자산을 최적 비율로 배분하는 게 목표다. 박 팀장은 “자체 알고리즘과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이라고 불리는 학습 시스템을 통해 약 2000개가 넘는 상장지수펀드(ETF) 상품을 필터링한다”며 “정기적으로 선정된 최종 약 60~70여개의 ETF가 자산배분에 활용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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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기존에 사람이 운영하던 자산배분펀드보다 수익률이 높을까. 펀드평가사 제로인이 유형과 설정액이 비슷한 펀드 8개를 골라 같은 기간 수익률을 비교한 결과 ‘키움쿼터백글로벌로보어드바이저’는 4위를 차지했다.(표 참조) 4.52%를 기록한 ‘피델리티글로벌멀티에셋인컴’보다는 낮지만 마이너스 수익률을 낸 ‘삼성퇴직연금POP펀드로테이션’, ‘신한BNPP퇴직연금POP펀드셀렉션’보다 높다. 같은 기간 이들 펀드가 속한 ‘해외채권혼합형 글로벌 보수적자산배분’ 펀드군의 평균 수익률은 0.61%다. 로봇이 낸 수익률(1.85%)이 평균은 웃돌았다.

수익률은 중상 수준에 그쳤지만 안정성은 그보다 높다. 고위험·고수익 대신 중위험·중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자라면 로보어드바이저 펀드에 가입해볼 만 하다. 이현 키움운용 대표는 “이저일고(저금리, 저성장, 고령화)라는 신조어가 생긴 환경에서 중위험 중수익 상품이 각광을 받고 있다”며 “주식과 채권뿐 아니라 실물자산, 리츠, 통화, 헤지펀드까지 투자대상을 다양화하고 투자시장을 글로벌하게 넓힌 로보어드바이저는 시대에 가장 적합한 상품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자산운용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로봇의 강점은 커진다는 얘기다. 실제로 30만 개에 달하는 전세계 ETF 기초자산을 사람이 전부 분석하기란 불가능하다. 근본적으로 사람에게 있는 욕심이나 공포가 로봇에겐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감정에 의한 판단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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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어드바이저 펀드의 지상 과제가 ‘변동성 최소화’라는 점 역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현재 국내에 출시된 로보어드바이저 공모펀드는 2종류다. 키움이 4월에 첫 상품을 출시한 데 이어 이달 초 2호 상품인 ‘NH-아문디디셈버글로벌로보어드바이저’가 나왔다. 두 상품 모두 미국과 국내에 상장된 ETF에 재간접 투자를 한다. 채권혼합형이 주력 상품인데 채권 관련 ETF를 전체 자산의 50% 이상 편입해 공격보다는 안정에 무게를 뒀다. 수수료도 싸다. 총보수가 0.76~1.26% 수준이고 환매수수료는 없다.

국내 로보어드바이저 투자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펀드상품 역시 출시된 지 다섯 달밖에 되지 않아 수익률은 더 지켜봐야 한다. 일각에서는 올 여름 미국 증시가 사상 최대치를 경신한 점을 생각해볼 때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아쉽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때론 동물적인 감각이 거대 위험을 피하기도 하는데 로봇이 갑작스러운 악재에 사람만큼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시장은 커질 전망이다. 현재 미국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은 연평균 68%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아직 전체 자산관리 시장의 300분의 1 규모지만 2020년에는 2000조원 넘는 돈이 로보어드바이저에 의해 운용될 것이라는 보고서도 나왔다. 안동현 자본시장연구원장은 “로보어드바이저는 사람에 비해 수수료가 낮은 자산배분시스템이라고 이해하고 접근해야 한다”면서 “압도적인 수익률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로보어드바이저

‘로봇(Robot)’과 ‘투자자문가(Advisor)’의 합성어. 빅데이터를 활용해 방대한 양의 투자정보를 학습하고 그 결과를 금융 자산관리에 적용하는 프로그램을 일컫는다. ‘인공지능(AI) 자산관리’라고 홍보하는 경우도 있지만 학계에서는 아직 로보어드바이저의 수준을 AI로 보기는 어렵다는 견해가 주류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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