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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 기대했다 뜻밖의 성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읍니다.』
토용이 나오는 순간 발굴대원들은 모두가 숨을 죽이는 흥분을 느꼈다고 이번 용강동고분발굴을 지휘한 김정기씨(문화재연구소장) 는 아직도 상기된 모습이었다. 『처음 세군데 도굴갱을 발견했을 때는 유물이 거의 나오지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실망이 컸습니다. 다만 신라통일기의 묘제연구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라고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석실에 들어와보니 토용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읍니다.』
김씨는 도굴꾼들이 금붙이에만 관심을 갖고 토용은 그냥 버려둔 것이 오늘과 같은 큰 발견을 이루게됐다고 크게 웃었다.
용강동고분은 처음 발견될 당시에는 쓰레기더미에 파묻혀 있어 중요한 무덤이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김단장은 그러나 차츰 발굴을 시작하면서 외호석과 내호석이 나타나고 연도와 석실의 모습이 드러나면서 왕이나 왕족의 무덤이라는 확증을 갖게되었고 발굴단은 발굴에 신중하면서도 급피치를 올린것이다.
당초 이 고분을 발견한것은 경주의 향토문화인들의 모임인「경주문화동인회」멤버들이었다. 이들은 그 무덤이 왕릉이라고 생각하고 문공부에 요청했다.
경주박물관장 정량모씨도 왕릉이라고 주장하면서 발굴을 추진했다. 『연도가 나타나고 돌로 잘 쌓은 현실이 나왔을 때 우리는 신기한 고분벽화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토용이 쏟아졌읍니다. 토용의 발굴은 벽화발견보다 더 큰 의의를 지니는 것입니다. 이 토용들은 국보급으로 생각됩니다.』
김씨는 앞으로 발굴이 계속될수록 더 진귀한 모습의 토용들이 나올 것으로 예견하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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