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1등의 책상] 수업·식사 직후, 하굣길 버스에서 틈만 나면 복습 또 복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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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동고 2학년 황순영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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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영군은 전교 1등 비결로 ‘수업 직후 5분 복습’을 꼽았다. 황군은 “수업 직후 5분만 들여 꾸준하게 복습하면 수업 내용을 더 생생하게 오래 기억할 수 있다”며 “공부에서 복습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기억은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이다. 단기기억은 전화번호처럼 짧게 기억됐다가 금방 잊히는 것을 말한다. 장기기억은 평소 사용하는 어휘처럼 쉽게 떠올리고 잘 까먹지 않는 기억이다. 우리 뇌는 단기기억을 일정한 학습을 통해 장기기억으로 전환한다. 반복이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벼락치기로 공부한 내용은 시험만 끝나면 송두리채 잊히기 일쑤다. 영동고(서울 청담동) 2학년 전교 1등 황순영군은 “복습이 정말 효과가 높다. 평소 꾸준하게 복습하는 습관이 가장 좋은 내신 대비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복습의 달인, 황군의 공부법을 들어봤다.

수업 끝나고 쉬는 시간 5분이 골든타임
황순영군의 지난 학기 내신 평균은 1.16등급. 이달 초에 본 모의고사에서는 국어는 100점, 영어·수학은 합해 3개만 틀려 세 과목 모두 1등급이 예상된다. 전교 1등 비결을 묻자 황군은 “정말 특별한 비법은 없는데 …”라며 머쓱해 한다. 한참을 고민하던 황군은 “굳이 꼽자면 복습 덕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황군은 고등학교 입학 후 복습을 습관화하는 것에 가장 공을 들였다. 수업이 끝난 직후 5분 동안 수업 내용을 간단히 복습하고 다음 수업을 예습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쉬는 시간 몸이 근질근질해도 꾹 참고 책을 펼쳤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한 두달 지나면서 수업 직후 5분 복습은 습관처럼 몸에 배었다. “복습하겠다고 마음 먹고 거창한 계획을 세워봐야 못 지키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냥 복습을 수업의 연장선으로 생각하고 수업 직후 복습을 습관화는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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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내용을 필기한 황군의 과학 교과서.

5분은 짧지만 매일 쌓이면 결과적으로 상당한 양을 소화할 수 있다. 황군은 “간단히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수업 내용을 생생하게,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가장 큰 효과는 시험 전 한 달간의 내신 대비 기간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평소에 수업 내용을 정리해두면 시험 전 한 달간은 실전 문제 풀이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 시험 전 한 달 동안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거나 어려운 문제만 모아서 풀면서 실수를 줄이고 실점 감각을 기르는데 집중한다. 개념 정리는 평소에 하고, 내신 대비 기간에는 문제 풀이 양을 늘려 고난이도 문제 해결력을 기르는 거다. 학원 수업도 수업이 끝난 직후 집에 돌아와 그날 복습한다.

복습은 반복할수록 효과가 높아진다. “점심·저녁 식사 직후나 하굣길 버스 안에서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오늘 배웠던 내용이 뭐였더라’라 하면서 수업 내용을 떠올리려고 노력해요. 그럴 때 머릿속에서 정확하게 정리가 안되는 개념과 문제가 다시 봐야할 부분이죠.” 매일 저녁 자율학습 시간에 하루 동안 공부했던 내용을 다시 검토하고, 주말에는 일주일치를 모아 정리한다. 그 다음주에는 전주의 내용을 한번 더 훑어본다. 한 달이 흐른 다음에는 각 과목별로 핵심 개념을 되짚어보고 어려웠던 문제를 다시 풀어 확실하게 이해했는지를 점검한다. 황군은 “머릿속으로 수업 내용을 계속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많이 된다. 개념을 이해하고 정리하는데 들이는 시간을 많이 줄일 수 있다”고 귀띔했다.

어려운 수학 문제는 1시간 끙끙대기도
황군이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과목은 수학이다. 학원으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도 수학 문제를 풀 정도로 수학을 좋아한다. 황군이 수학 공부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끈기’다. 황군은 “국어·영어는 지문의 논지 전개 흐름을 논리적으로 따져보는게 중요하고, 수학은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포기하지 않고 끙끙대면서 여러 풀이를 고민해보는 경험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수능 1등급을 결정짓는 고난이도 문제는 논리력 싸움이라는게 황군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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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군은 수학 개념을 이해할 때는 기본·예제 문제, 중간 난이도 문제, 고난이도 문제를 각각 10~20개씩 뽑아 순서대로 풀어본다. 난이도를 점점 높여가면서 문제 유형에 적응한다. 개념이 잡히면 고난이도 문제에 집중한다. 이때 원칙이 있다.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1시간이 걸려도 포기하지 않고 여러 풀이를 적용해보면서 해법을 찾는다. 그래도 풀리지 않을 때 해답을 참고하거나 선생님께 찾아가 묻는다. “문제 하나를 붙잡고 3시간 동안 풀어본 적도 있어요. 어떻게 보면 무식해보일 수 있겠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고민하고 끙끙댔던 문제는 절대 까먹지 않아요. 당장에는 답답해도 길게 보면 고난이도 문제를 확실하게 공략하는 방법이죠.”

황군은 과목별로 문제집이 2~3권으로 적은 편이다. 대신 문제집별로 4~5번은 반복해 확실하게 내 것으로 만든다. 양보다는 질에 집중한다. 국어·영어도 양이 많지 않다. 영어는 일주일에 2~3일 공부하는데, 하루에 지문 10개 정도를 소화한다. 시간 감각을 기르기 위해 먼저 문제당 1~2분 정도 시간을 들여 빠르게 풀어본 뒤 문장 단위로 구문 분석을 하면서 세세하게 뜯어본다. 정확한 독해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다. 국어는 일주일에 모의고사 1회분을 실제 시험 시간에 맞춰 풀어보고 문제마다 정답과 오답의 이유를 찾는다. 틀린 보기는 맞는 내용으로 바꿔보고 지문마다 논리 전개 흐름을 확인한다.

방황 때 믿고 기다려준 부모 덕에 목표 찾아
황군은 중학교 3학년 때 전국 모집 단위 자사고인 민사고 입시를 준비했었다.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면서 열심히 준비했다. 하지만 결과는 불합격. 황군은 민사고 입시가 끝난 그해 겨울 두 달 동안 컴퓨터 게임에만 몰두했다. 황군은 “나보다 성적이 낮았던 친구도 민사고에 붙었는데 난 떨어졌다는 자괴감에 자신감을 잃었다. 하루 종일 게임만 하면서 지냈다”고 기억했다.

황군의 어머니 임성연(44·대학 교수)씨는 그런 아들을 채근하지 않고 묵묵히 지켜봤다. 임씨는 공부하라는 잔소리 대신 아들과 여행을 선택했다. 그해 12월 말 아들과 함께 7박8일 일정으로 미국 여행을 다녀 왔다. 여행 동안 임씨는 “괜찮아. 지금 실패가 나중에는 더 좋은 결과로 돌아올거야”라며 아들을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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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를 치며 스트레스를 푸는 황군.

부모의 믿음과 기다림 덕분에 황군은 점점 안정을 찾았다. 불안이 가시면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마음이 차분해지니까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그래. 내가 민사고에 합격한 친구보다 못한게 없잖아. 진짜 실력은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에 나오는거야.’ 목표가 다시 생겼다. 게임을 점점 줄이고 공부 시간을 늘려갔다. 좋아하던 수학부터 다시 붙들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두 달 동안 매일 수학만 9시간씩 공부했다. 임씨는 “몰아세운다고 공부가 잘 될리가 없지 않느냐. 아이가 힘들어 할 때는 스스로 목표를 찾을 때까지 믿고 기다려주는게 부모의 역할인 것 같다”고 밝혔다. 황군은 “만약 그때 엄마가 날 몰아부쳤다면 반항심에 공부를 싫어하게 됐을 것 같다. 내가 털고 일어날 때까지 응원해준 엄마·아빠 덕에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의지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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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정현진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kim.sang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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