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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기본권|"헌법 따로 현실 따로"가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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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현행 헌법의 기본권 분야를 보는 정계·학계의 시각은 대체로 조항 자체에 대한 가감보다는 운용이 관건이라는데 일치하고 있다.
김철수 교수(서울대)는『현재의 기본권조항 자체는 괜찮은 편』이라고 전제, 『이 분야는 특히 헌법규정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를 제대로 실행하겠다는 집권자의 의지가 보다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기본권분야를 맡고있는 민정당 헌특 제1분과위의 허청일 위원장이나 이한동 의원은『처음에는 무엇인가 대대적으로 고쳐보려고 했으나 실제로 따져보니까 모두 나름대로의 사유가 있더라』고 했다.
김대중 민추협공동의장도『선진국일수록 기본권규정이 엉성하고 후진국일수록 더욱 정밀하게 되어있다』면서 『현 헌법도 기본권은 비교적 잘 돼있어 이대로만 지켜나간다면 상당히 민주적』이라고 언급할 정도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행헌법에서 추가되거나 삭제될 내용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이런 의견들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법 따로, 현실 따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워낙 굴절된 법 환경에 젖어왔기 때문에 특별히 강조되어지는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개정되는 헌법에서 기본권분야는 무엇이 쟁점이 될까.
헌법교수, 정부와 민정당의 관련기구, 또 민정당이 실시하고 있는 지방간담회 등에서 제기된 사안들을 종합해보면 △신체의 자유 △저항권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노동3권 △형사보상 청구권문제 등이다.
이밖에 거론될 수 있는 문제는 △남녀평등 △재산권보장과 제한 △통신 및 사생활의 비밀보장 규정 등이다.
신체의 자유에 있어 우선 논란거리는 보안처분 문제다.
이는 지난해 학원안정법 파동 때 논쟁을 유발시킨 사항이기도하다.
그런 점에 비추어 다시는 논쟁의 소지가 없도록 하자는 의견이 많으나 정부·여당으로서는 현행대로 유지할 방침인 것 같다.
민정당의 이한동 의원은『판사의 판결로만 가능토록 할 것인가, 판사와 같은「자격」을 가진 곳에서도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냐가 문제인데 학설이 대립되어 있는 상태』라고만 언급하고 있다.
헌법학자 문홍주씨는『이 조항은 법률의 운용이 문제』라며『삭제여부는 별 문제가 안 된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변협의 개헌시안은 이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결국 이 문제에 대해서는『보안처분의 실질적 내용이 사실상 형벌에 유사하므로 법원의 판결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도록 하자』는 견해가 많은 것 같다.
두 번째는 구속영장 집행에 있어 방어권을 인정하느냐의 여부다.
즉 영장집행 대상자가 판사 앞에서 방어의 기회를 가진 후에 영장을 발부할 수 있게 하자는 문제다.
신민당의 개헌시안에는 방어권 개념이 없는데 김철수 교수 등과 변협에서는 이의 도입을 강력 주장하고 있다.
현재 검사가 직접 수사를 하는 사건에 대해서는 청구를 못하게 되어있는 구속적부심제도를 확대하는 문제도 쟁점인데 변협과 신민당은 물론, 민정당 관계자도 지적하고 있는 대목이다.
저항권 도입문제도 상당한 논쟁대상이다.
신민당은 이의 채택을 주장하고 있으나 민정당은 고려하고 있지 않은 상태.
다만 이 문제는 저항권을 실정법 적인 권리가 아니라 자연법 적인 권리로 이해하고 기본권의 한 조항으로 규정하기보다는 헌법전문에 묵시적으로 표현하자는 견해가 있다(이택수 변호사).
언론·출판자유의 확보를 위해 허가나 검열금지규정을 헌법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견은 민정당 개헌간담회 때 자주 제기된 사항이고 많은 학자들도 이를 역설하고 있다.
신민당 및 변협은 물론이고 학계에서도『현행 헌법으로도 보장을 받게 되어있지만 하위법에서의 남용을 막기 위해서라도 헌법에 명문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집회·결사의 허가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야권이나 학계에서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에 대한 여권의 태도는 아직 전향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노동3권에 있어서는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제한하는 현행헌법31조3항이 논쟁거리인데 신민당은 이 조항 자체를 삭제하자는 반면 민정당은 이 조항자체는 살리되 다만 단체행동권 제한대상에서「…국민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업체」라는 부분만 제외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무혐의 피의자에게도 보상청구권을 부여하자는 주장은 신민당·학계뿐 아니라 민정당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남녀평등문제는 개헌간담회에서 여성주제발표자나 토론자들이 어김없이 짚고 넘어간 사항이나 현재까지는 크게 이슈화되지 않을 전망.
재산권보상문제는 현행 헌법이 공익과 관계자의 이익을 정당하게 형량하여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지만 신민당이나 학계에서는 완전한 보상을 해주는 정당보상을 주장하고 나서 논쟁이 되고있다.
전화도청의 금지나, 예외적으로 허용할 경우에도 영장에 의해서만 가능케 하는 조항을 명문화하자는 주장도 이슈로 등장할 수 있다.
이밖에도 정당이나 사회단체, 교수들간에 이번 개정헌법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용은 상당히 많다.
신민당은『법의 제한이 없는 한 국민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일반적 행동의 자유원칙」을 선언적으로 포함시키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동수 교수(대구효성여대)같은 이는 사형제도, 특히 정치범에 대한 사형제도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결국 이와 같은 기본권 신장을 위한 논의는 헌법에 명시된 권리를 법률로 제한할 수 있는 한계를 얼마만큼 명확히 하느냐에 귀착된다고 볼 수 있다는 게 공통된 견해다.
김철수 교수는『현행헌법이 유신헌법보다는 진일보했다고 보지만 문제는 유신헌법시절 제정된 각종 법률(집시법 등)이 그대로 존속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이한동 의원은『법률제정에 있어 위헌여부를 잘 짚고 넘어갈 수 있는 실질적인 제도의 운영이 기본권보장의 요체』라고 역설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구속적부심사제도를 헌법에 잘 보장해놓고도 하위법인 형사소송법에서 유보조항을 두게되면 헌법에 규정된 정신은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
따라서 입법자가 자의적으로 법률을 제정할 수 없도록 헌법에서 규정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게 이 의원의 주장이다.
이같이 기본권 분야에 있어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여지는 많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관계자들이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얼마나 잘 운영하느냐에 있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정부형태뿐 아니라 기본권 분야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이 있어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안희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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