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행복한 책읽기] '과학의 시대!'…가슴으로 친해지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8면

지은이 제라드 피엘은 1백5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을 1948년에 구입한 뒤 재창간을 통해 대중 속의 과학잡지로 키운 인물이다. 에디슨의 축음기.모르스의 전신 등이 처음 소개된 곳도 이 잡지였다.

그는 1986년 은퇴할 때까지 이 잡지를 직접 지휘하면서 20세기 과학사를 이끌어왔다. 그 과정에 피엘은 과학 저널리즘을 개척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피엘이 지난 40년 동안 이 잡지에 발표된 굵직한 발명과 발견들을 체계적으로 종합 정리한 것이 '과학의 시대!'이다. 저널리즘 특성상 단편적인 소개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과학분야의 중요한 업적들을 그 발견의 단초에서부터 결말까지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풀어놓았다.

책은 쿼크에서 은하계까지, 빅뱅에서 생명의 탄생까지, 공룡에서 인간까지, 시간과 공간의 영역을 두루 섭렵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물리학, 생물학, 지구과학, 인류학, 고고학은 물론이고 사회학과 경제학도 상당 부분 건드린다. 과학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과학자들은 어떤 영혼의 소유자들인지에 대한 소개도 재미있다.

과학적 성과는 어떤 식으로 인정받을까. 다른 과학자들의 흥미를 불러 일으키지 못하면 일단 허탕이다. 예컨대 지구가 자전하고 달이 지구를,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며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 계절에 변화가 나타난다는 사실은 기원전 3세기에 아리스타르쿠스가 주장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주장이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2천년 후의 일이었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 케플러에 의해 검증되면서 이 학설은 올바른 우주관으로 자리잡게 된다.

지은이는 과학자들에게는 청교도적인 윤리가 요구된다는 입장이다. 이 대목에서는 R.K. 머턴 컬럼비아대 교수의 소신이 인용된다.

"과학자들의 중심 윤리는 '공산주의'이다. 그 윤리에 따라 과학자들은 자신이 생산한 산물 대부분을 공동체의 소유로 돌린다. 과학자들이 자신의 지적 재산을 요구하는 것은 명예를 요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과는 달리 돈보다는 명예가 중요하다보니 과학계에서는 늘 누가 먼저 발표하느냐가 관심거리였다.

유전학의 대가인 멘델에 얽힌 이야기 한 토막. 1900년에 식물학자인 독일의 코렌스와 오스트리아의 체르마크, 네덜란드의 드브리스가 별도 연구를 통해 부모 중 한쪽의 유전 형질이 그대로 자식에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유전 형질은 부모의 다른 한쪽의 유전형질과 섞이지 않았던 것이다.

출간에 앞서 원고를 정리하던 세 과학자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허탈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보다 34년 앞서 이미 이런 내용을 발표한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바로 멘델이었다.

이 예에서 보듯 과학계에서는 같은 주제의 연구가 동시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노벨상에 공동 수상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렇게 볼때 과학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 협력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에게는 또 선각자들의 연구 업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뉴턴은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그것은 내가 다른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 서는 혜택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지은이는 동양과 서양의 과학 수준이 크게 벌어지게 된 기점을 15세기 초로 잡았다.

"15세기 초 명나라의 환관 정화(鄭和)가 3년간 일곱 차례에 걸쳐 태평양과 인도양을 탐험한 뒤 남반구 천체지도를 만들었다. 그 후 이들은 다시는 항해에 나서지 못했다. 중앙집권적인 왕조는 고립된 세계에 만족했고, 그 결과 그들의 기술은 금단의 장벽 안에 머물렀다."

이 책은 과학의 시대에 몸담고 사는 현대인으로서 우리를 둘러싼 우주, 그리고 그 안에 들어 사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전자혁명과 그것이 낳은 컴퓨터 혁명, 인터넷 혁명에 대한 언급이 별로 없어 독자들을 의아스럽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파인먼조차 "양자 역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고 하니, 이 책을 잡는 독자들은 과학을 정확히 이해하려 들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친숙해지려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

정명진 기자

<사진설명>
유리병에 산화수은을 넣고 적당한 열을 가하면 산화수은이 공기 중의 산소를 흡수한다. 그러면 유리병에 연결된 공간에 들어 있던 쥐는 숨쉬기가 힘들어진다(左). 잠시 후 유리병에 높은 열을 가하면 산화수은과 약하게 결합되어 있던 산소가 다시 방출되면서 쥐는 다시 생기를 찾는다(右). 근대 화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18세기 프랑스 화학자 라부아지에가 산소를 발견하는 과정을 쉽게 표현한 그림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